본문 바로가기

[홍병기 칼럼]한·중 FTA를 위한 훈수

중앙선데이 2013.07.06 23:59 330호 30면 지면보기
“FTA는 Farmer Terror Action. 농민들 죽이는 한·미 FTA 협상 중단하라.”(2006년 2월)
 “우리 농촌 다 무너뜨릴 한·중 FTA 협상 즉각 중지하라.”(2013년 7월)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뷰’가 다시 등장했다. 7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때처럼 지난 2~4일 한·중 FTA 6차 협상이 열린 부산 벡스코 앞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어 연일 규탄 시위를 벌였다. FTA 협상이 진행될 때마다 겪는 모습이다. 항상 ‘추진’과 ‘저지’의 상반된 목소리가 맞선다.

 그러나 한국이 FTA를 외면하고 옛날로 되돌아가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은 현재 미국, 유럽연합(EU) 등 46개국과 FTA를 체결해 시행 중이다. 세계 경제의 60%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전 세계 무역의 10.5%를 차지하는 중국은 13억 인구를 가진 매력적인 소비시장이다. 이론적으론 최적의 FTA 파트너다. FTA로 중국 기업·자본이 한국에 많이 진출할 경우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한·중 수교 21년 만에 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만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협상의 진도보다는 내용을 중시해야 한다. 협상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은 타결 시한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다. 2007년 한·미 FTA 최종 협상 당시 우리 정부가 3월 말로 시한을 미리 정해 놓는 바람에 미국 측의 지연전술에 말려 고생한 경험이 있다. 벌써 국내에선 8월이니 9월이니 하며 FTA 타결을 낙관하는 듯한 말이 나온다. 한·중 정상회담의 후속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다가 무슨 국정과제 달성하듯 밀어붙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서둘지 말고 협상 쟁점을 꼼꼼히 따져보며 차근차근 대응 전략을 가다듬을 때다.

 중국은 이미 국제협상 무대에서 세부조항을 자기 쪽에 유리하게 다루는 ‘디테일’의 강자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 공동선언문만 봐도 FTA과 관련해 ‘양측은 공동으로’란 표현을 일관되게 썼다. 반면 북핵 문제에선 ‘한국 측은’ 또는 ‘중국 측은’이란 문구를 각각 구분해 사용하면서 양국의 시각차를 담아놨다. 이런 중국을 상대할 한국 협상단은 앞으로 “상대방의 미소는 나의 패배”라는 말을 되새기며 실리 중시 자세를 지켜야 할 것이다.

 국내외 상황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중국은 한·중 FTA를 지렛대 삼아 일본을 끌어들여 ‘한·중·일 FTA’를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최근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를 선언하자 초조감을 느껴 한·중 FTA 체결을 서두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복잡하게 얽힌 국가 간 이해관계를 협상과정에서 잘 활용해야 한다.
 대외 협상 못지않게 대내 협상도 중시해야 한다. 농어민들은 한·중 FTA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식량을 내주는 대가로 수출기업의 배를 불리는 FTA 추진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이 몇 % 더 올라간다는 숫자놀음에만 빠지지 말고 진정성 있는 설득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FTA는 일종의 시장개방 양허 협상이다. 양허(concession)란 한번 개방한 시장을 뒤로 돌리지 않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하는 조치다. 한번 열린 시장은 여간해선 다시 닫기가 쉽지 않다. 재협상이니 재재협상이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게 초기부터 신중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방중 때 칭화대 연설에서 “중국의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한국의 강은 동쪽에서 서쪽에서 흘러 하나의 바다에서 만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이 한·중 FTA라는 바다에서 이뤄지길 기대한다.
 (사족으로 FTA는 Farmer Terror Action이 아니라 Free Trade Agreement의 약자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