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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비 바짝 마른 청와대 "외부인사 만나기 겁난다"

중앙일보 2013.07.06 03:00 종합 5면 지면보기
# “오늘은 좀 맛있는 걸로 먹읍시다.” 청와대 비서관 A씨는 최근 자신이 대접해야 할 지인들과의 저녁 약속을 앞두고 갑자기 식당을 바꿨다. 10여 명이 나올 줄 알고 청와대 인근 허름한 한식집에 예약을 했다가 참석자가 4명이란 얘기를 듣자 장소를 바꾼 것이다. 이 인사는 “예산이 거의 바닥이라 식사 때만 되면 늘 식당을 정하는 문제로 고민”이라며 겸연쩍어했다.


비서실 예산 10월이면 바닥
긴축 모드에 가외 돈줄도 끊어져
비자금 넘친 5·6공 때와 천양지차

 #또 다른 비서관 B씨는 주변에 “외부 사람 만나려면 월초로 정해야 한다. 월말이면 (판공비) 한도가 다 차기 때문에 밥 먹기도 쉽지 않다”는 하소연을 입에 달고 다닌다. B씨는 “비서관 판공비가 이전 정부 때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털어놨다.



 한 해의 절반을 갓 넘긴 7월 초지만 청와대의 ‘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모양이다. ‘돈 가뭄’을 호소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최근 새누리당 인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대로 가다간 10월께면 비서실에서 쓸 돈이 바닥나게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는 얘기가 여권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 인사는 “옛날엔 청와대 직원들의 업무추진비가 월급과 맞먹을 정도로 나왔다. 국정원이나 각 부처에 숨어있는 돈을 가져다 청와대에서 쓸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게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지난해 여야가 경쟁적으로 청와대 예산을 깎아놔서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어놨다. 외부 사람들 만나기가 힘들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농담조로 “여당에서 밥값이라도 좀 지원해줘야 할 판”이라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정부 들어 청와대 살림이 ‘긴축 모드’로 운영되면서 비서실 직원들의 업무 활동에 쓰는 ‘특수활동비’가 삭감됐다.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청와대의 2013년도 특수활동비(경호실 포함)는 256억9600만원으로 전년도보다 6억원 줄었다. 표면적으론 6억원 줄어드는 정도에 그쳤지만 예산안이 통과된 이후에 국가안보실 등 신설 조직이 생겨 자금을 배분하다보니 직원들이 체감하는 자금 사정은 겉으로 드러난 수치보다 훨씬 안 좋다고 한다. 특히 박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의 예산절약 솔선수범을 강조하면서 직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권 출신의 일부 행정관들은 친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SOS를 치기도 한다.



 청와대가 대기업들로부터 공공연히 정치 헌금을 거둬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굴렸던 5·6공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다. 김영삼·김대중 정권 때만 해도 선거 때 대기업의 음성적 자금지원이 있었고, 국정원 등 각 정부 부처에 산재한 특수활동비를 청와대가 마음대로 가져다 써 돈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정치자금 문화가 개선되고 특수활동비에 대한 국회와 여론의 감시가 계속 강화되면서 지금은 청와대조차 예산 부족에 쩔쩔 매는 상황이 됐다.



 여권 일각에선 청와대의 업무추진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정보나 여론수집을 위해 청와대가 여당은 물론 야당 쪽 인사들도 만나야 하는데 실탄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무추진비 현실화는 희망 사항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 본인이 청와대가 예산 절감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한 데다, 청와대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것을 야당이 달갑잖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소아·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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