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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제한상영가 등급 논란,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2013.07.06 00:36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가 지난달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으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4일 정부가 제한상영가 영화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갑론을박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제도 자체를 두고 “사전 검열이 아니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반론이 부딪치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상영관 확보하면 될 일 … 사전 검열 아니다



조희문
인하대 교수
영화평론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검열의 한 수단인 것처럼 연결하는 것은 과장이고 억지다. 지금 한국에선 특정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처벌하지 않는다. 등급을 받기 전에는 상영을 할 수 없도록 하지만 이는 등급분류를 위한 일시적 행정절차일 뿐이다. 사전 검열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등급분류가 영화 제작을 제한하거나 상영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은 논란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국내의 영상물 등급분류는 법률에 따른 공적 결정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민간자율 방식과는 다르다. 1996년 헌법재판소의 영화 검열 위헌결정 이후 검열제도가 폐지되고 현재와 같은 등급분류 방식이 도입됐다. 새로운 제도하에서는 어떤 종류의 영화든, 어떻게 만들든 제작과정을 제한하지도 않고 감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만든 영화에 대해 등급을 분류할 뿐이다. 그것도 일반 상영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만이다. 극장 유통을 하지 않고 비상업적인 한정 상영을 하겠다면 등급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일반 상영 과정에서 심각한 명예훼손이나 사실 왜곡 등 다른 법률에 저촉되는 경우가 있다면 개별 사안으로 위법 여부를 가릴 수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사실상 영화계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특정 장면의 삭제, 등급 보류 등 조치가 적용되던 당시 영화 표현의 범위를 보장하면서 관객들의 관람을 일정 수준 한정하는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제한상영가 등급 신설이었다. 논의 과정에서 ‘등급외 등급’ ‘등급외 전용관’ 등 용어가 나왔지만 개념의 모순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제한상영가’ ‘제한상영관’으로 확정된 것이다.



 2004년 5월, 대구를 시작으로 광주 등 몇 개 지역에서 제한상영관이 등장했으나 영화공급의 불안정, 수익성 저조 등의 문제로 곧 사라졌다. 표현의 자유도 살리고, 흥행도 키울 것이라던 영화계의 기대는 실현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낸 셈이었다. 제한상영관 설치를 앞장서서 주장했던 한국영화제작가협회나 감독조합 같은 단체들에서 ‘표현의 자유’ ‘관객들의 볼 권리’를 주장하며 영상물등급위의 결정을 비난하고, 등급 존재 자체까지 거론하는 것은 상업적 계산이거나 기회적인 편들기, 운동 수단으로서의 의도를 희석하기 위한 명분 세탁처럼 보인다.



 분명한 건 제한상영가 등급분류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유통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이 배급과 상영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문화에 대한 배타적 독과점을 정당화하겠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내 차 내 마음대로 달릴 테니 신호등, 표지판, 속도제한 모두 없애라고 한다면 타당한가?



 영화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상영 과정까지 확보하겠다면 등급분류를 놓고 시비할 것이 아니라 상영관을 다시 설립하겠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영화 제작을 막지도 않고, 상영관을 세우는 것도 제한하지 않는 상태에서 영화관 운영자들이 1차 검증을 한 사안이다. 다시 세우라고 우기기도 면구스럽지만 어쨌든 민간 차원에서 상영관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 극장 유통 대신 온라인 유료 다운 방식 등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극장 상영만이 유통방식의 전부이던 때는 지난 지 오래다. 한국영화는 권력의 감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공공적 제도와 권위를 흔들 수 있는 문화권력이 된 만큼 책임도 인식해야 한다.



조희문 인하대 교수 화평론가





보고 판단할 기회까지 빼앗아선 안 된다



조광희
변호사
(법무법인 원)
영화 ‘뫼비우스’를 계기로 다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이 입길에 오르고 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영비법이 ‘제한상영가’ 영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규정하면서 “상영 및 광고·선전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고만 규정한 것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사실 헌법이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을 정면으로 비웃는 이러한 조항이 애초에 국회를 통과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 헌법불합치 결정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 조항에 대한 위헌, ‘등급보류’ 조항에 대한 위헌에 뒤이은 헌재의 세 번째 부정적 판단이었다. 그 후 국회는 제한상영가 영화란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고 개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알쏭달쏭하기 그지없는 이 표현이 헌법에 맞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나아가 이제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등급 분류는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지만 헌법이 지향하는 원리와 조화돼야 한다.



 2008년 결정 당시 조대현 재판관은 별도의 위헌의견을 이렇게 밝혔다. “제한상영가 등급제도는 그러한 등급으로 분류되는 영화의 상영을 실질적으로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며, 음란한 영화를 반포하거나 공연히 상영하면 형법에 의하여 처벌받게 되는데, 더 나아가 제한상영가 영화로 분류하여 상영을 극도로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실제로는 제한상영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한상영가로 등급이 분류되면 상영이 금지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한 등급 분류는 사실상 검열로 기능한다. 이때 ‘제한상영관이 없는 현실’과 ‘법률의 문제’는 구별해야 한다는 견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국가는 단순히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것이 초래하는 실제적 결과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몇몇 현자들이 다른 성인들이 관람하고 판단할 기회를 처음부터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시스템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최근 정부가 제한상영가 영화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힌 것은 고무적이나 속단하기엔 이르다. 법률 개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구체적 내용에 따라선 유명무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몸에 밴 생각과 감수성을 교란하는 낯선 표현에 대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근거로 낯선 것의 출현을 금지시키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많은 훌륭한 생각과 감수성은 애초에는 유령처럼 불온한 모습으로 공동체에 등장한 것들이었다. 그것들과 직면하는 것을 기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과거의 세계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 인간성과 세상의 새로운 대륙을 탐구하려는 노력들은 억압되고, 진리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말과 행동은 권력의 비호 아래 활개 치고 있다. 낯설지만 깊은 생각들은 배제당하며, 익숙하지만 졸렬한 생각들은 공공연히 배양되고 있는 우울한 현실. 우리 사회가 미래가 아닌 과거로 계속하여 떠밀려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광희 변호사 법무법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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