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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중공군 유해 송환과 '킹핀' 효과

중앙일보 2013.07.06 00:29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2005년 3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국방장관회담. 안건으로 올라온 중공군 유해 송환에 대해 우리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입을 떼자 중국 측에선 “객사자는 집에 들이지 않는 게 관습”이라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중국은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돌려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묻힐 뻔한 사안이 한·중 정상회담 차 중국을 찾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이런 반응은 한국과 등거리 외교를 펴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 때문이다. 한때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으나 병사들의 유해를 직접 주고받을 정도가 되면 인도주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 간, 그리고 양국 국민 간 유대 효과가 커진다. 이번에 유해 367구를 보낸다고 끝이 아니다. 중공군 유해는 철원·양구·화천 등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 휴전선을 따라 수만 구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해에서 확보한 DNA를 중공군 유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등록해 놓고 중국의 유족들과 연결하기 시작하면 유학과 관광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중의 인적 교류는 질적으로 도약하게 된다. 이는 국군·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대 중국 인민해방군·북한 인민군으로 나눠 대치하고 있는 정전 구도를 정조준한다. 북·중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지진파가 될 수 있다. 한·중 간 포스트 정전 시대가 새롭게 태동하게 된다. 한·중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북한 노동당 고위 인사가 득달같이 달려온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캐나다 산림지역에서 벌목된 통나무들은 강물에 띄워져 하류로 이송된다. 강폭이 좁아져 유속이 빨라지면 통나무들이 엉켜 병목현상을 빚는다. 이때 어떤 통나무를 집중적으로 가격하면 병목이 풀리면서 통나무의 행진곡이 다시 시작된다. 주변에 연쇄 파급 효과를 일으키는 이 통나무를 ‘킹핀(king pin)’이라고 부른다.



 킹핀처럼 중공군 유해 송환 카드는 냉전 해체 이후에도 고착돼 있던 남북한과 중국 간의 정전 질서를 허무는 폭발력이 있다. 중국 지도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강조했듯 먼저 친구가 되고 사업을 논했어야 하는데 그간 한·중 관계는 경제적 이해관계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이익이 충돌할 땐 친구고 뭐고 없이 으르렁댔다. 유해 송환은 양국 국민이 친구가 되는 중요한 이정표다. 이번에 양국 정상이 합의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내실화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애국 교육을 담당하는 류옌둥(劉延東) 부총리가 “‘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멀리 가더라도 반드시 조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고 한 말이 들불처럼 중국 인터넷에서 번지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킹핀을 때릴지도 모를 일이다.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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