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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 입고 바닷속 출근 … "직원 90%가 다이빙 자격증 땄어요"

중앙일보 2013.07.06 00:23 종합 18면 지면보기
5월 말 양태선 이사장(왼쪽 세번째)이 울릉도 앞 바다숲과 바다목장 조성 예정지를 둘러본 후 직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바다 사막화로 주변에 석회질 성분의 바닷말류가 많이 보인다. [사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한 달에 한두 번 사무실 대신 바닷속으로 출근하는 남자가 있다. 정장을 벗고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뒤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잠수부다. 해양레저를 즐기는 게 아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공공기관의 각종 사업이 바닷속에서 추진되는데 그 성과를 직접 눈으로 점검해보기 위해서다.

공공기관 평가 꼴찌서 1위로, 양태선 수산자원관리공단 이사장



 양태선(59)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이사장. 그는 지난 2년간 동해·서해·남해 30여 곳 바닷속 40m까지 들어갔다. 일반인은 깊어야 4~5m 잠수하는 정도. 그러니 그의 스쿠버 실력은 프로급이다.



 그렇게 깊이 들어가는 이유는 지어 놓은 물고기 아파트를 살피기 위해서다. 수산자원관리공단은 바닷고기들이 살 수 있는 인공 집을 짓는다. 물고기들의 산란장·먹이터·피신처가 되는 바다풀(해초류)과 바닷말(해조류) 같은 것을 인공구조물에 심어 바닷속에 넣고 관리한다. 이게 바로 바다숲·바다목장 조성사업이다. 바다목장은 서해와 남해, 동해에 모두 128곳이 있다. 양 이사장은 그 현장에 직접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 서류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점과 해답을 찾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경남 거제시 남부면 다포마을 선착장에서 양 이사장을 만났다. 잠수복을 입은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인근 바다숲을 점검하고 막 물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구릿빛 얼굴에 키 1m80㎝가 넘는 건장한 체격의 그는 평생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 같았다. 양 이사장은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 출신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현역으로 복무하다 집안 사정으로 전역한 뒤 공무원이 됐다. 2010년 10월 수산자원관리공단 이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바다와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다.



 - 바닷속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바닷속에서 사업을 하는 조직의 장이 바다를 몰라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에 잠수를 배웠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관리공단 출범 첫해인 2011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았다. ‘나부터 바뀌어야 조직이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직접 바다로 들어갔다. 지금은 바다가 또 다른 사무실이 됐다.”



 - 초보자가 수심 40m 잠수를 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겠다.



 “2011년 초 일주일 정도 교육을 받고 현장에 나갔다. 잠수를 하면서 안 쓰던 근육을 쓰다 보니 근육통에 몸살이 겹쳐 한동안은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살았다. 잠수하러 배를 타고 나가면서 배멀미도 했다. 처음 교육을 받고 들어간 제주도 차귀도 앞바다에서는 갑자기 빠른 조류를 만나 휩쓸려 갈 뻔했다. 간신히 배와 연결된 밧줄에 매달려 있다 나왔다. 어찌나 꽉 붙잡고 있었던지 팔이 빠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 그런 이야기 들으면 가족들 걱정이 많겠다.



"처음에는 바다속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도 못했다.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된 뒤로는 걱정을 많이 한다. 그래서 오늘도 사실 바다에 들어간다는 말을 안 했다. 이렇게 출장을 나올 때면 휴대폰도 꺼 놓는다. 그런데 이거 신문에 나가고 나면 한동안 또 잔소리 좀 듣겠다.(웃음)”



지난달 26일 양태선 이사장이 거제시 다포마을 앞 바다숲 조성현장을 둘러본 후 물속에서 직접 가져 나온 감태와 미역을 보여주고 있다. [송봉근 기자]
 - 바다에 나오면 말단 직원이 된다던데.



 “사무실에서는 조직의 수장인데 바다에 나오면 저 사람이 대장이다(양 이사장이 가리킨 이는 최임호 수산자원공단 생태환경실 기술원이었다). 2년 전 제주도에 갔을 때는 최 박사한테 소라로 머리를 맞기도 했다. 최 박사는 다이버 20년 경력에 해양생태학 박사인 전문가다. 바닷속에서는 저 사람 말대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내가 바다에 처음 들어가다 보니 호기심에 최 박사에게 집중을 안 하고 다른 곳을 쳐다보다 맞았다. 지난해 5월 백령도에 들어갔을 때는 수온이 너무 낮아 저체온증이 왔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배 위에 있던 최 박사가 어떻게 알았는지 급히 바다 위로 끌어올렸다. 이러니 제가 말단 직원이 될 수밖에 없다.”



 - 우리나라 바닷속을 대부분 들어가 봤겠다.



 “온난화로 바다 사막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해조류나 해초류는 수온이 낮은 곳에서 잘 자라는데 수온이 상승하면서 녹색 해조류 등이 급격히 사라졌다. 대신 석회질 성분의 다른 바닷말류가 퍼지면서 바다 밑바닥이 하얗게 변하고 있다. 갯녹음 혹은 백화현상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걸 막는 일이 중요하다. 해조류와 해초류는 물고기 산란장으로서의 역할 말고도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₂)를 흡수하고 산소를 뿜는 역할을 한다. 해조·해초류가 만드는 산소량은 육지 나무가 생성하는 것의 3~4배에 이른다. 인공적으로라도 해조류를 심고 키워 바다 사막화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공단을 ‘바닷속 산림청’이라고 부른다. 육지의 산림청과 근본적으로 비슷한 일을 한다는 뜻이다. 아예 ‘바다 식목일’을 제정해 올해 5월 10일 첫 행사를 했다.”



 - 바닷속 현장을 직접 둘러보면서 거둔 성과가 있다면.



 “보통 해조류는 햇빛이 들어와야 잘 큰다고 하는데, 직접 서해에 들어가보니 햇빛이 별로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도 2m 가까이 자라는 해조류가 있었다. 그런 종류의 해조류를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바다숲에 심도록 했다. 바다숲을 꾸미는 구조물(인공어초)이 햇빛을 잘 받도록 방향을 바로잡기도 했다. ”



 -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사장의 현장 방문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다.



 “중간간부들이 나를 따라 바다에 같이 들어가야 해 힘든 점도 많을 것이다. 하루 이틀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도 했을 듯하다. 그렇지만 함께 물속에 들어가 작업을 하고, 대화도 많이 하면서 신뢰가 쌓였다. 사실 나 스스로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보지 않았다면 우리 직원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지 몸으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 보험사가 직원들 보험 가입을 안 받아 준다고 들었다.



 “임직원 대부분이 해양생물학이나 해양공학 석·박사 학위가 있는 엘리트다. 그러면서도 바닷속에서 ‘막노동’을 한다. 바다숲이나 목장을 조성할 후보지를 찾고, 인공어초를 설치하고, 폐그물을 제거하는 일 등이다. 임직원 248명 중 80~90%는 1년에 보통 40~100일, 횟수로는 120~300회 바닷속에 들어간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나 밤중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하다 보니 보험회사에서도 일이 위험하다고 보험 가입을 안 받아준단다.”



 - 직원들에게 스쿠버 다이빙 교육을 의무화했던데 반발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그러나 바닷속 사업을 하는 기관 임직원이 바닷속을 제대로 모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직원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취득, 행정부서 직원들은 다이빙 및 구조·구난교육을 의무화했다. 인사혁신도 했다. 성과를 기준으로 승진하는 ‘승진 포인트 인사제도’를 도입했고, 자연스럽게 성과연봉제로 연결됐다. 공공기관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월급이 똑같이 나온다는 안일한 태도가 뿌리내릴 수 없는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 앞으로도 바다속에 들어갈건가.



"사실 체력적으로 무척이나 힘들지만 해마다 동·서·남해에 한번씩은 들어가고 싶다. 이 조직을 맡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직의 초대 이사장이 아니라 바닷속에 울창한 숲을 만든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꿈이 이뤄질 때까지 바다에 대한 애착은 놓지 못할 것 같다.”



 이사장이 바닷속 현장을 누비면서 임직원들도 하나 둘 변했다. 현재는 공단 전 직원의 90%가 다이빙 자격증이나 교육을 수료했다. 직원들이 일하는 목적의식도 뚜렷해지고 자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공단은 공공기관 경영평가 E등급을 받은 이듬해 A등급으로 뛰어올랐다. 공단 황재윤 기획조정실장은 “기관장이 몸소 사업현장을 챙기고 평가도 철저히 성과 중심으로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조직이 됐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양 이사장은 중학교 때 수재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가정형편 때문에 남들처럼 대도시로 유학을 가지 못하고 지역고교에 진학했다. 그는 “고교 입학식 전날 아버지가 ‘미안하다. 돈이 없어 대도시로 보내주지 못했다’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는 어느새 눈자위가 붉어져 있었다.



 일반 대학 대신 육사를 택한 것도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형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곁에서 부모를 봉양하려 대위로 전역하고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이날 현장 점검을 마치고 횟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성게가 나오자 양 이사장은 이를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많이 먹어 치워야 한다. 해조류를 죽이는 주범 중 하나니까.”



부산=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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