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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면 우르르 몰려나와 거리 점령한 '담배부대'

중앙일보 2013.07.06 00:23 종합 19면 지면보기
정부가 실내 금연을 강화하자 거리로 흡연자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물 앞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일제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①). [강정현·신혜원 기자]


“아저씨! 불이요, 불!”

이달부터 식당·술집도 금연 '풍선효과'
기업들도 검색대 설치해 흡연 규제
회사 눈치 보느라 외진 곳 찾아 피워



 지난달 14일 오후 3시쯤 점심을 먹고 정비공업사에서 한창 일을 보고 있던 반재열(67)씨는 화들짝 놀랐다. 지나가던 오토바이 기사가 큰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공업사 뒤편에 모아 둔 중고 타이어 더미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때마침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바람 탓에 타이어는 더 활활 타기 시작했다. 반씨는 급하게 타이어를 빼려다 고무가 눌어붙는 바람에 오른손 넷째 손가락을 데었다. 소화기를 찾아 한 통을 다 쓰고 나서야 불씨는 사그라졌다. 반씨는 “조금만 늦게 조치했다면 큰 화재로 번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고 말했다.



 반씨는 이번 화재의 원인이 인근 기업 사원들이 버린 담배꽁초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의 공업사는 A기업 사옥과 가깝다. A기업의 흡연자들이 회사 눈치를 보느라 회사 앞보다는 반씨의 공업사가 있는 외진 골목까지 걸어와 담배를 피운다. 반씨는 “우리 가게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는 것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 이후 ‘담배꽁초 버리지 마. 쓰레기 버리지 마’라고 종이에 써 붙여 놓기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반씨는 “차라리 지정된 장소에나 버렸으면…” 하는 마음에 쓰레기봉투를 갖다 놓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담배꽁초가 바닥에 수북이 쌓인다. 그는 “고육지책으로 커다란 화분을 가져다 놓았더니 흡연자들이 골목 더 안쪽으로 옮겨 가더라”고 했다.



 기업들이 실내 흡연을 전면 금지하면서 인근 상인과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중구의 B기업 사옥 뒤편 건물의 관리인 김모(70)씨는 “화단에도, 하수구에도 온통 담배꽁초투성이”라며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자기네들 건물에서만 안 피우면 다냐”며 “주변에서 이렇게 피워대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고 지적했다. 동네 주민 천모(59)씨는 “여기서 51년을 살았는데 B기업 직원들의 흡연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회사에 항의도 하고 구청에 민원도 넣어 봤지만 소용없더라”고 말했다.



 2010년 12월 개관한 이 사옥은 B기업이 속한 그룹 내에서도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을 시행하는 곳이다. 지난해 7월 금연정책을 강화하면서 건물 내부에 있던 흡연실 두 곳을 폐쇄하고 사옥 반경 1㎞ 내에서의 흡연을 금지했다. 직원들이 담배 연기를 뿜으면 고객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였지만 되레 더 큰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강남구청과 협의해 대치동 사옥 인근을 아예 금연거리로 지정한 C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택시기사 황모(72)씨는 “건물 앞은 금연구역이지만 인도 아닌 차도로 내려가 피우면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며 “우르르 차도로 내려오는 흡연자들을 보면 아찔하다”고 위험성을 지적했다.



회사서 차 타고 나와 담배 피우기도



문화재인 서울 성곽②과 주변 가로수 틈새·공중전화 부스 ③④ 에선 담배꽁초가 자주 눈에 띈다. 이달부터 면적 150㎡ 이상 식당·술집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되면서 거리 흡연자들은 더 늘 것으로 보인다⑤. 담배 반입을 금지한 한 기업 사업장 인근 편의점에는 담배 보관함까지 등장했다⑥. [강정현·신혜원 기자]
 “더 이상 담배 보관함을 운영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25일 찾은 D기업 사업장 후문 인근 편의점. 이곳에는 이런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담배 보관함은 D기업 전 사업장이 강제금연 장소로 지정된 지난해 4월 이후 흡연자들이 짜낸 묘책이다. 당시 주차장·기숙사·체육관 등도 준사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소지품 검사까지 시행됐다. 그러자 직원들이 아예 담배를 편의점에 맡기고 다니는 새 풍속도가 생겨났다. 컵라면 등을 먹을 수 있는 간이탁자 양쪽에 아크릴 사물함이 놓였다. 여기엔 주인 이름과 부서명이 적힌 담배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편의점 주인은 “요즘엔 근처 아파트 단지에 사는 고등학생들이 사물함에 꽂힌 담배를 훔쳐가는 바람에 아주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보관료를 따로 받는 것도 아닌데 담배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애꿎게 나만 입장이 곤란해졌다”며 “이달 중 보관함을 없애 버릴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점심을 먹고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찾은 이 회사 직원 김모(33)씨는 “어차피 여기까지 내려와야 담배를 피울 수 있어 맡겨 놓은 것인데 이마저도 없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흡연자는 아예 담배를 차에 두고 다니기도 한다. 이 회사 직원 남모(40)씨는 “여기까지 걸어 나오려면 40분은 걸리니 차가 편하다”며 “검색대를 지날 때 담배·라이터 등 금지품목이 적발되면 사유서까지 써야 하는데 어쩌겠느냐”고 한탄했다. 직원 진모(34)씨는 “은박지가 없는 담배는 검색대에 잘 안 걸린다”며 “그래서 ‘더 원’ 같은 담배가 인기”라고 귀띔했다.



 이 회사 맞은편에 위치한 아파트 주민 정모(37·여)씨는 “회사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단체로 우르르 몰려와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며 “그쪽으로 지나다닐 때마다 담배 연기에 불쾌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기들 근무 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면 그만이냐”고 따졌다.



 흡연구역마다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도 별로 효과가 없다. 결국 이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달 말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회사 직원 김모(52)씨는 “우리는 담배를 안 피우면 일을 할 수가 없다”며 “금연정책도 좋지만 주민들 고통을 감안해 회사 안에 흡연공간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쓰레기통 가져다 놨더니 흡연구역 돼”



 이달 1일부터 면적 150㎡ 이상 식당·술집·카페에서도 전면 금연이 실시되고 있다. 그로 인해 흡연자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서울 중구의 한 빌딩은 대로변으로 모여드는 흡연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건물 방재팀장은 “지난해까지는 입주해 있던 E기업이 금연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좀 나았다”며 “최근 입주사가 여러 곳 바뀌면서 인근 사무실 직원 분들까지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단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임시로 쓰레기통을 가져다 놨더니 아예 흡연구역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달 건물 주위를 빙 둘러 ‘노 스모킹(No Smoking)’ 스티커 25개를 붙였다. ‘금연 CCTV 녹화 중’이라고 쓰인 입간판을 3개나 세워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건물 2층에서 일하는 김모씨는 “담배 연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을 수가 없다”며 “흡연자들이 모여 너구리굴을 만드니 일부러 피해 지나간다”고 털어놨다.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금연정책의 1차 목적은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건물 출입구 등 많은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은 건물 안과 마찬가지로 금연구역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흡연자들을 무조건 길거리로 내몰 게 아니라 적절한 흡연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성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도입된 금연정책들이 흡연자를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헌법상 행복추구권에 속하는 흡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실외 공공장소와 사업장에 흡연구역을 설치하는 등 분리형 금연정책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의 이연익(43) 대표는 “우리도 금연정책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비흡연자들이 겪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음식점·공공장소 등에 흡연실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한 해 1조7000억원에 달하는 건강증진부담금을 활용해 흡연실을 설치하면 비흡연자와 흡연자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채수운 강남구청 건강생활팀장은 “건강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금연건물이라 해도 실내의 밀폐된 공간에 환기시설을 갖추거나 옥상 및 옥외에 흡연실을 설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2011년부터 식당·호텔 등에 흡연실을 설치할 경우 비용의 25%를 국가에서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민경원·신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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