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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상인의 재탄생 … 3000년 걸린 명예 회복

중앙일보 2013.07.06 00:08 종합 23면 지면보기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파워가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상인들은 오랜 세월 차별받았으나 그들 스스로 사회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수백 년 전 중국 상인들의 모습. [그림 행성:B]


상인 이야기

이화승 지음

행성:B 잎새

383쪽, 1만8000원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의 조어대(釣魚臺)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 양국 경제인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유창한 중국어로 마무리를 장식했다. “시엔쭤펑요우(先做朋友) 허우쭤성이(後做生意).”



 ‘중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먼저 친구가 되라’는 이 말에 포럼에 참가한 중국 경제인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갈채가 쏟아진 건 박 대통령이 꼭 중국어를 사용해서만은 아니다. 중국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기 위한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흔히 중국 사업은 어렵다고 한다. 중국 상인의 생각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과의 거래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필독서다. 중국의 상인이 어떻게 탄생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역사의 궤적을 따라 훑고 있다.



 자연히 중국의 상인이 무엇을 고민했고 무엇을 중시했는지가 드러난다. ‘나를 알고 남을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하지 않았던가. 중국 상인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중국 사업에서 성공한 셈이리라.



 상인(商人)이란 말은 어떻게 나왔나. 고대 상(商)나라 사람들에 근원을 두고 있다. 상은 농업 민족인 주(周)나라에 의해 망했다. 나라가 깨지자 상의 후예들은 곳곳을 떠돌며 장사를 했고 주나라 사람들은 그 일을 ‘상업(商業)’, 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상인’이라 불렀다.



 상인이라는 용어의 비극적 탄생이 암시하듯 중국 역사 속의 상인은 천대를 받았다. ‘간사하지 않은 상인은 없다(無商不奸)’거나 ‘이익에 끌려 의리를 잊는다(見利忘義)’ 등 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 입장에선 국가 재정의 주요 세원(稅源)인 농민이 최고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도망갈 수 없는 농민은 꼬박꼬박 세금을 바친다. 황제의 입에서 ‘농민은 천하의 근본이다(農者天下之大本也)’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 여기저기 돌아다녀 세금을 걷기 힘든 상인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전국시대의 거상(巨商)여불위가 “농업의 이익이 10배라면 상업의 이익은 100배”라고 했지만 상업의 이익은 결국 농민에 대한 착취에서 나온다고 봤다.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의 배경이다.



 특히 유가가 사상을 통일한 한(漢)대 이후 농업이 추구하는 의로움(義)과 상업이 추구하는 이익(利) 사이엔 대립 구도가 확정되며, 상인은 의를 찾는 군자가 아닌 이익을 쫓는 소인(小人)이 됐다. 당(唐)대의 상인은 ‘잡류(雜流)’로 분류돼 관리와 함께 밥조차 먹을 수 없었다. 옷 색깔도 차별을 받았다. 고위 관리가 자색, 일반 백성이 흰옷을 입은 반면 상인은 검은색 옷을 입어야 했다.



 상인의 신분에 대한 반전은 송(宋)대에 시작된다. 과거에만 몰두하다 살림이 파탄 난 사대부들이 장사에 나서 상인으로 변신하면서다. 상인이 된 사대부는 상인의 행동양식에 성현의 가르침을 접목하고자 했다. 사대부가 책을 읽는 것이나 농부가 곡식을 생산하는 것, 장인이 호미를 만드는 것, 상인이 물건을 파는 것 모두 천하사무(天下事務)의 하나가 된다고 주장했다. 사대부와 상인이 만나고, 유학과 상업이 만나는 ‘사상합류(士商合流)’가 시작된 것이다.



 명(明)대의 상권을 양분한 후이저우(徽州) 상인과 산시(山西) 상인은 상업에 유가의 혼을 불어 넣었다. 후이저우 상인은 자신의 고향 출신인 주희의 가르침을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산시 상인 역시 현지 영웅 관우를 재물과 충성의 신으로 모시며 유가 사상의 지표인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오상(五常)을 상업 활동에 접목시켰다. 이제 돈을 번 상인들이 유가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자선사업을 펼치거나 교육사업을 하는 건 청(淸)대에 이르러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다.



 상인은 상나라 멸망 이후 30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명예를 회복한 셈이다.



 이 책이 아쉬운 건 내용 자체를 청나라 때까지로 한정해 중국의 전통적 상인 정신이 현재의 중국 기업인들에게 어떻게 전승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돈을 번 뒤엔 토지에 투자하라”는 사마천의 충고 등 중국 상인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팁을 주고 있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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