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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13> 마칼루(상)

중앙일보 2013.07.05 12:30 Week& 6면 지면보기
1 투투라에서 바라본 마칼루. 가운데 뾰족한 봉우리가 피크7, 오른편 구름에 가려 있는 봉우리가 마칼루 정상이다.


세계 4위봉 마칼루(8463m)는 원시림을 간직한 자연의 보고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와 이웃해 있고 해발 4000m 근방까지 삼림이 우거져 있다. 이곳은 히말라야 고산에서 위용을 떨치는 ‘등반 셰르파’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산에서 태어난 셰르파는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히말라야 전역을 누빈다. 그러나 외지인에게 밀림은 공포의 대상이다. 특히 산거머리가 출몰하는 우기 때는 더욱 그렇다.

[중앙일보·밀레 공동기획] 쥐도 새도 모르는 산거머리의 습격 … 바지 걷어 보니 온통 핏물



2 툼링타르 공항에서 눔으로 가는 길. 우기 때는 길이 망가져 트랙터를 타기도 한다.


트럭 타고 덜컹덜컹 … 5시간 만에 숙소 도착



마칼루로 가기 전에 걱정거리 세 가지가 우리 일행을 괴롭혔다. 10여 년 전 마오이스트가 정권을 잡은 뒤로 네팔은 수시로 ‘번다’라는 총파업이 벌어지곤 한다. 그 파업 여파로 마칼루 지역에 있는 고산마을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소문이 돌았다. 차를 얻어 타지 못한다면 40㎞ 산길을 걸어가야 하고, 일정이 사나흘은 더 길어질 터였다. 올해 눈이 많이 내려 마칼루 베이스캠프(4800m) 주변은 무릎까지 눈에 빠진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주카’라고 불리는 산거머리였다. 예년보다 우기가 빨리 찾아와 해발 3000m 아래는 산거머리가 창궐한다는 정보였다. 트레킹을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3 산 거머리가 등산화를 타고 기어 올라오고 있다.
4 전형적인 네팔 고산족의 민가. 여행자 숙소는 2층에 있다.


그래도 출발은 해야 했다. 지난 5월 8일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약 200㎞ 떨어진 툼링타르(Tumlingtar·400m)로 갔다. 툼링타르 공항 활주로는 달궈진 프라이팬처럼 뜨거웠다. 카트만두에서 입고 온 재킷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벗어젖혔다. 공항 주변은 온통 짙푸른 밀림뿐 설산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마칼루 베이스캠프까지는 고도차 4400m.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트럭 두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 마칼루 베이스캠프를 찾은 인원은 기껏해야 100여 명이라고 했다. 손님이 귀한 이곳에서 현지인이 돈벌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트럭에 오르자마자 첫 번째 걱정은 이내 거짓으로 판명났다. 툼링타르에서 트럭에 몸을 싣고 눔(Num·1500m)까지 다섯 시간을 달렸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대신 잦은 비로 길이 망가져 도중에 트랙터로 갈아타야 했다. 한나절 동안 엉덩이를 혹사한 끝에 가까스로 로지(Lodge)에 닿았다. 눔의 로지에 몸을 뉘었을 때는 치골이 닳아 없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눔에는 베이스캠프에서 하산하는 외국인 트레커가 한 팀 있었는데, 이들로부터 ‘베이스캠프 주변의 눈은 발목에 차는 정도’라는 정보를 들었다. 두 번째 걱정도 별 게 아니었다.



5 30㎏의 짐을 지고 이동하는 현지 짐꾼.
그러나 세 번째 공포는 이튿날 길을 나서자마자 현실로 다가왔다. 눔에서 세두와(Seduwa·1500m)로 가려면 마칼루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는 바트가리(Batgari·750m)를 넘어야 한다. 산거머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긴 바지와 두꺼운 양말을 챙겨 신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거머리는 풀잎이나 나뭇잎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나 동물이 잠시 멈춰선 순간 신발에 달라붙은 다음, 체온을 감지하고 발목 부위로 기어올라 쥐도 새도 모르게 피를 빨고 사라졌다. 세두와의 로지 주인은 “촉수 부위에 마취 성분이 있어 빨대를 꽂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영락없이 그랬다.



바트가리 계곡을 넘어 점심을 먹기 위해 로지에 멈춰 서서 바지를 걷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양말은 핏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발목 부위에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두 시간 남짓 걷는 동안 세 방이나 물렸지만 로지 주인의 말처럼 마취 성분 때문에 전혀 알지 못했다.



이곳 산거머리에 물리면 약도 없다고 한다. 게다가 피부에 붙은 거머리를 억지로 잡아떼면 촉수가 그대로 박혀 오히려 감염의 우려가 크다고 한다. 피를 빨고 얌전하게 떨어져 나간 거머리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지경이었다.



셰르파 마을 장수 비결은 노동과 소식



무시무시한 ‘주카 정글’은 해발 3000m까지 계속됐다. 세두와에서 하루를 걸어 타시가온(Tashigaon·2100m)의 로지 마당 풀숲에도 거머리는 귀신처럼 숨어 있었다. 그러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현지인은 모두 반바지에 슬리퍼나 맨발 차림으로 풀숲을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산거머리는 여름이면 으레 찾아오는 일상이었다.



타시가온은 셰르파(Sherpa)의 마을이었다. 현재 히말라야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는 등반 셰르파의 상당수가 타시가온 출신이다. 해발 2000~3000m에서 태어난 이들은 3000~4000m 고산을 제 집 드나들 듯이 나다니며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로 거듭난다. 히말라야를 누비는 등반 셰르파는 스스로 ‘설표(Snow Leopard)’에 비교하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마을에는 하의를 벗은 채 풀숲을 돌아다니는 사내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히말라야 고산으로 돈벌이를 나간 등반 셰르파의 아들이었다. 저 아이들도 머지않아 ‘히말라야의 설표’로 성장할 터였다.



타시가온은 장수 마을이기도 했다. 보통 네팔인의 수명은 예순 살을 넘기지 못한다. 힘든 노동과 태부족한 의료시설, 더러운 식수가 단명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셰르파는 평균 수명 이상을 사는데, 특히 이 마을에는 일흔 살을 넘긴 노인도 있었다.



치링 셰르파와 파상 옹추 셰르파는 일흔일곱 살 동갑으로 마을의 대표적인 장수 노인이었다. 타시가온에 들른 날 밤 치링의 아들·며느리·손자 등 여남은 명과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아침엔 어김없이 라마교 사원에 들러 기도를 드린다. 아침엔 밀크티나 찌아(차)를 마시고, 점심은 다시 찌아나 비스킷으로 간단하게 하고, 저녁은 보통 ‘달밧’을 먹는다.” 치링의 여섯 번째 아들의 둘째 아들, 즉 손자인 파상 셰르파(27)가 말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된 일일일식(一日一食)인 셈이다. ‘달밧’은 밥과 채소와 감자, 고기를 한 데 볶은 ‘떨까리’를 접시에 한데 담아낸 네팔의 전통음식이다.



셰르파에게 노동은 곧 삶이다. 노인도 죽기 전까지 가축을 돌보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노동과 소식(少食), 그리고 라마교에 기반을 둔 욕심 없는 삶이 이 마을의 장수 비결인 셈이었다.



타시가온에서 콩마(Kongma·3500m)까지 고도차는 1400m였다. 길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아 우리 일행은 서너 시간 만에 올랐다. 여기서부터 히말라야였다. 콩마에서 베이스캠프로 가려면 투투라(Tutu la·4100m)와 세툼라(Setum la·4000m)를 연달아 넘어야 했다. 이곳에서부터 설산이 시작됐다. 5월 10일 투투라에 올랐다. 마칼루 정상과 피크7(6758m) 등 6000~8000m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었다. 제트기류에 휩싸인 마칼루 꼭대기는 초승달 모양의 설연(雪煙)을 뿜어냈다. 우기 때는 어김없이 산안개가 몰려왔지만, 이른 시간이라 시야는 맑았다.



베이스캠프로 가기 위해서는 투투라와 세툼라를 넘어 해발 3000m 계곡으로 떨어진 뒤 다시 1800m를 올라가야 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험한 길이다. 앞으로 나흘을 더 가야 한다.



●마칼루 트레킹 정보=봄·가을이 트레킹하기에 적합하다. 5월에는 네팔 국화(國花)인 랄리구라스가 오색 창연하게 만발한다. 우기가 오기 전이라 대기가 맑고 거머리나 날벌레도 피할 수 있다. 가을에는 잎갈나무 잎이 곱게 물든 경치가 아름답다. 베이스캠프 왕복 트레킹은 보름 정도 걸린다. 마칼루 북쪽을 반 바퀴 도는 ‘마칼루 라운딩’은 네팔 트레킹 중에서 가장 험한 코스로 악명이 높다. 빙하 내원으로 들어가면 남극에 온 듯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단 로프와 등반 장비가 필요하다.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M투어(02-773-5950)’ 에서 상품을 판다.



마칼루(네팔)=김영주 기자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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