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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회담 못해도 원칙대로" 장소·의제·일정 관철

중앙일보 2013.07.05 00:57 종합 3면 지면보기
개성공단 문제를 다룰 남북 당국 실무회담 개최 합의 과정은 이전과 확 달라진 정부의 대북접근 방식을 생생히 드러낸다. 4일 하루 동안 판문점을 무대로 벌어진 남북 간의 줄다리기에서 남측은 회담 날짜와 장소·의제 등 회담의 3대 핵심 요소를 모두 우리 제안대로 관철시켰다. 북한이 한때 ‘개성공단 내 회담 개최’를 주장했지만 불과 3시간30분 만에 거둬들이고 남측 방안을 수용했다. 현재까지 모양새만 보면 협상 전초전에서 우리 측이 승기를 잡은 셈이다.


개성공단 당국회담 합의까지
제안 → 수정제안 → 역제안 줄다리기
북 "개성서 회담" 주장 결국 접어

 정부는 4일 오전 대북 제안에서 실무회담 장소로 판문점 통일각(북측) 또는 평화의 집(남측)을 제시했다. 전날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업체의 방북 허용 방침을 밝힌 데 대한 역제의였다. 그러자 북한은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 회담을 열자고 수정 제안했다. 우리 당국과 기업인들을 공단지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였다. 동시에 정부가 북한이 일방적으로 문을 닫아건 공단지역에 들어가는 걸 꺼리는 점도 겨냥했다. 하지만 정부는 공단 내 회담 불가 입장을 밝히고, 판문점 개최 또는 경기도 문산의 경의선 남측 출입사무소 가운데 선택하라며 배수진을 쳤다. 당국자는 “북측이 수용하지 않아 회담을 열지 못하더라도 개성공단 내 회담은 없다는 입장이 확고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당국회담 개최 논의 과정에서도 이런 단호한 대북 입장을 엿볼 수 있다. 개성공단 가동이 멎은 4월 초 류길재 통일부 장관 명의의 대북성명에서 당국회담을 제안한 정부는 이후 일관된 입장으로 북한에 회담을 촉구했다. 결국 두 달 만인 지난달 6일 북한이 호응해나왔고, 정부는 장소와 의제 등을 선점했다. 북한이 수석대표의 급(級)을 놓고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이자 미련 없이 회담판을 접어버렸다. 북한의 입장을 가급적 받아주던 김대중·노무현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남북관계의 당국회담 틀을 만들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정부의 입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단호한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한 직후인 4월 9일 국무회의에서 “실망스럽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겠나”라고 한 이후 공단 문제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대응해 왔다. 5월 초 남측 관계자의 전원철수 결정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우리 측 잔류 인원 7명의 귀환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측은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등의 미지급금(1300만 달러)을 먼저 지급해달라고 요구했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등 두 명을 제외하고 참석자 전원이 북한의 요구대로 먼저 미지급금을 주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라며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잔류 인원 7명이 귀환한 후 돈을 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결국 잔류 인원 7명의 귀환과 미지급금 지급은 같은 날 이뤄졌다.



 박 대통령의 ‘뚝심’은 지난달 6일 북한의 당국회담에 대한 호응을 이끌어낸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당국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핵·미사일 도발 위협 국면에서 유화 국면으로 전환하려던 북한은 자신들의 시도가 박근혜 대통령의 뚝심에 막히자 당혹스러워했다. 최근 북·미대화 시도는 물론 중국 지도부를 상대로 한 특사외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북한은 다시 남북대화의 문을 두드리고 나섰지만 이번 대화 기회를 놓치면 언제 국면전환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회담 개최가 합의됨에 따라 개성공단 입주 123개 업체는 분주해졌다. 유창근 개성공단 정상화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번에는 당국회담이 중간에 좌초되지 않고 결실을 보길 바란다”며 “남북관계를 재정립해 앞으로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권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실무 협의가 신속하게 마무리돼 장마가 더 심해지기 전에 공장 설비 관리를 할 수 있길 바란다”며 “거래를 중단한 바이어에게 다시 주문을 받으려면 북측의 재발 방지 약속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주 기업인들은 당장 방북하더라도 설비를 재가동하려면 2주에서 한 달은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입주 기업들은 오는 9일 방북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조속한 당국 간 합의를 압박하고 있다. 옥성석(나인모드 대표)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20~30명으로 구성된 1차 방북단이 개성에 가 공단 설비 등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학권 재영솔루션(전자업체) 대표는 “설비점검·부품교체·시운전 등 정상가동까지 1개월가량은 필요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빨리 점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영종·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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