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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박인비 스윙은 말한다

중앙일보 2013.07.05 00:33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박인비 효과가 폭발적이다. US오픈 우승 이후 연일 미국 유력 방송에 등장했다. 인기의 불쏘시개는 놀라운 기록이다. 메이저대회를 세 차례나 우승해서만은 아니다. 올해 LPGA 13개 대회에 나와 여섯 차례 우승했다. 이런 승률은 하루 만에 1등이 10등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골프계의 파란(波瀾)이다. 미국 언론이 그에게 ‘평온의 여왕’ ‘포커페이스’를 넘어 ‘평온의 저격수’ ‘침묵의 암살자’같이 자극적인 별칭을 붙여준 이유이기도 하다. 최상의 정신·육체가 스윙·퍼팅 자세에 녹아들어 지속적인 평온을 만들어내야만 가능한 기록이다.



 대개 주간·월간 골퍼는 최정상 프로선수의 스윙을 보면 주눅이 든다. 그런데 다른 프로들과 달리 박인비의 스윙을 보면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폼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백 스윙은 느리다. 클럽은 어색하게 수직으로 선다. 멀리 보내기 위한 손목 꺾기(코킹)도 거의 없다. ‘머리 처박기 3년’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공을 때릴 때까지 고개를 들지 말라는 금과옥조도 지켜지지 않는다.



 독특한 자세는 왜,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여러 해 박인비를 취재한 J골프 이지연 기자는 손목과 유연성의 핸디캡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박인비의 손목은 짧고 뻣뻣하다. 잘 젖혀지지 않는다. 몸의 유연성도 다소 떨어진다. 반면에 손목의 힘과 어깨 회전력은 좋다. 이런 단점·장점을 잘 이어붙여 박인비표 맞춤스윙을 완성한 것이다.” 박인비는 짧은 손목이라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었다. 손목을 적게 놀리면 공의 방향성이 좋아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파워는 더 살리고 손목은 덜 쓰는 자세를 개발해낸 것이다. 백스윙은 적지만 조금 일찍 머리를 움직여 체중 이동을 쉽게 하기도 했다.



 이런 폼은 인내의 산물이다. 박인비는 2008년 스무 살의 나이에 US오픈에서 우승하지만 그 후 4년 동안 부진의 늪에 빠진다. 골프를 그만둘 생각을 할 정도로 그 늪은 깊고 가혹했다. 어릴 때부터 세계적인 골프아카데미를 돌며 기본기를 익혔는데 도무지 실전에서 통하지 않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기계적인 메커니즘에 얽매였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다. 바닥에서 자신의 문제를 직시한 그는 오랫동안 유지해 온 폼을 버리고 자신의 단점·장점을 고려한 맞춤자세를 고안해낸 것이다.



 요즘 맞춤이라는 표현을 정책에서 자주 쓴다. 최근 일주일 사이에 발표된 정책만 모아보자. 국무총리실 : 정부는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에 대응하기 위해 저소득층·하우스푸어·서민 등 계층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 실습 위주의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복지부 : 장애·질병·노령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을 보호하고 재산관리를 해주는 맞춤형 후견인제를 도입한다. 안전행정부 : 어린이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연령별 맞춤형 안전대책을 세워 추진한다….



 맞춤 홍수는 시대 상황의 반영이다. 총량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사회의 그늘은 여전히 넓게 퍼져 있다. 좌절하고 궁핍한 이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선진국의 좋은 폼을 그대로 베껴서 먹고살던 시절도 저문다. 쾌속 성장이 멈추면서 예전처럼 모든 분야에 흥청망청 재원을 뿌려줄 형편이 못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맞춤형 정책은 불가피하다. 맞춤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우선은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기존 자세를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새로운 궤적을 그려내야 한다. 성찰과 결단, 창의가 맞춤의 성공조건인 것이다.



 맞춤의 수식(數式)은 흥미롭다. 1점의 장점과 -1점의 단점이 잘 맞아떨어질 때 그 합은 0이 아니라 2나 4가 된다. 이런 식의 맞춤이어야 스포츠든, 인생이든, 정책이든 빛을 발한다. 박인비 스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지혜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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