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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서비스업 육성책, 알맹이가 빠졌다

중앙일보 2013.07.05 00:17 경제 1면 지면보기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4일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정책 합동 브리핑’에서 추진 방향 및 1단계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현 부총리,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뉴시스]


2010년 6월 싱가포르는 복합 리조트인 마리나베이샌즈를 개장했다. 아직 태형(笞刑)이 집행되는 엄격한 나라지만, 중국인 관광객을 빨아들이기 위해 ‘죄악산업’으로 불리는 카지노를 허용한 것이다.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 관광객은 2009년 970만 명에서 2010년 1160만 명으로 20%가량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1440만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 세금 등 제조업과 차별없애
● 전기료도 제조업 수준으로
● 도시공원 바비큐 시설 허용



앞서 가는 싱가포르·필리핀



 같은 해 11월 25일 필리핀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옆 파사이 시티에 복합 카지노 리조트인 ‘리조트월드 마닐라’를 개장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가기 쉬운 이곳은 개장 직후 아시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며 필리핀 관광 활성화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이 카지노는 중국인은 물론 한국인도 많이 이용한다.



 아시아 각국이 카지노산업에 앞다퉈 진출하는 건 서비스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다.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와 고용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각국은 관광·의료·교육 분야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 분야에선 후진국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대편을 설득하는 데 번번이 실패해왔다.



영리병원·카지노 반대론에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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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미래창조과학부·문화체육관광부가 4일 합동으로 내놓은 ‘서비스산업 정책 추진방향 1단계 대책’도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에도 여러 대책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포괄적이고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도록 큰 방향성을 갖고 추진했다. 규제, 기술, 사람에 중점을 뒀다”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이날 대책에는 서비스산업 육성과 고용창출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치는 의료·카지노·교육 분야는 쏙 빠졌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야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시범적으로 송도에 위치한 인천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병원을 도입하려던 시도는 국회에서 의료민영화 논란으로 번지면서 무산됐었다.



 기재부는 국회의 협조를 얻기가 어려워지자 지난해 경제자유구역법의 시행규칙을 바꿔 외국 의료기관이 들어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역시 병원 설립 허가권을 갖고 있는 인천시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는 외국의 의료관광 활성화와 대조를 이룬다. 싱가포르 래플스병원은 한국어를 포함한 11개국 언어로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체 환자의 35%가 100여 개국에서 온다. 카지노와 의료관광이 서비스산업을 키우는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보다 고용효과 훨씬 큰데 …”



 한국에선 카지노 설립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천시는 최근 영종도에 카지노 유치를 추진했지만 문체부가 부적합 결정을 내렸다. 백령도와 중국 산둥반도 간 쾌속선 항로를 개설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카지노를 설립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있지만 역시 진척이 없다. 선진국 사립학교의 한국 내 진출도 교육 종속과 계층 간 위화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제동이 걸려 있다.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 때부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도입을 추진했으나 이 법안이 투자개방형 병원의 설립 근거가 된다는 반대론에 막혀 국회에서 3년째 낮잠을 자고 있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병원·관광·교육 분야는 제조업보다 고용유발 효과가 훨씬 크다”며 “서비스산업은 저성장 탈출과 고용률 70% 달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실제 1990년 이후 지난해까지 서비스업 종사자는 844만 명에서 1718만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제조업은 499만 명에서 410만 명으로 감소했다.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는 “서비스업이 유일하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생산성이 낮고 대외경쟁력도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뜨거운 감자’를 피하려다 보니 이번 대책의 초점은 정부가 쉽게 손댈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맞춰졌다. 우선 중소기업 분류기준 등 서비스업에 불리한 것들을 고치기로 했다. 제조업은 업종을 불문하고 중소기업 기준이 300인 미만이지만, 서비스업은 100~200명으로 제한된다. 고형권 기재부 정책조정국장은 “서비스업은 이런 규제에 묶여 추가고용과 매출 증대를 기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강 둔치 등 도시공원에서 바비큐 시설 설치가 허용되지만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수질 및 환경 오염과 교통체증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속적으로 각종 불합리한 규제를 폐지해 서비스산업을 저성장 탈출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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