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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vs 그리니치빌리지

중앙선데이 2013.06.29 22:52 329호 31면 지면보기
여름방학이 되자 지난해 미국 뉴욕에 갔던 게 생각난다. 마지막 날, 난개발 반대 시민운동으로 유명한 제인 제이콥스가 살던 집을 찾아 그녀의 명작인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묘사한 그리니치빌리지를 천천히 산책했다.

 관광객 입장에서 산책하면서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서울 북촌 생각도 났다. 그리니치빌리지는 북촌처럼 도시 한복판에 있으면서 역사적 전통이 깊고 20세기에 개발 압력으로 없어질 뻔했던 동네다. 역사적 경관이 보존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부촌이 됐고 관광객이 많아진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북촌과 그리니치빌리지엔 큰 차이가 있다. 그리니치빌리치 보존의 계기는 제이콥스가 주도한 고속도로 건설 반대 운동이고, 북촌은 전문가와 관(官)이 주도한 계획 때문에 보존이 됐다. 즉, 그리니치빌리지는 풀뿌리에서 보존 요구가 강했던 반면, 북촌은 관의 의지가 강했다. 당시 그리니치빌리지 주민은 오래된 다가구주택과 벽돌길을 좋아했고 그 동네의 생활방식을 스스로 선택했지만, 북촌의 많은 주민은 한옥을 헐고 수익성이 더 높은 현대식 건물을 짓고 싶어 했다. 아파트 생활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

 지금도 북촌 관련 정책을 논의할 때면 풀뿌리보다 ‘관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북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보이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제이콥스에게 배울 것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 참여’다. 제이콥스는 도시계획 전문가가 아니었고 활동을 시작할 당시엔 주부여서 뉴욕시청에서 무시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과 계속 이야기하면서 공감대를 넓혀 나갔다. 곧 주민 외에도 그리니치빌리지를 아끼는 유명인사와 뉴욕시민도 그의 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제이콥스는 테마파크처럼 ‘예쁜 동네’보다 ‘살아있는 공동체’를 꿈꿨다. 동네엔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복합 용도’인데, 동네에 다양한 사람과 상업이 있어야 동네가 활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50년대부터 도시계획에서 주거와 상업 용도를 엄격히 구별한 미국에선 매우 도전적 개념이었다.

 제이콥스는 물론 신이 아니다. 그는 미 대도시 인종갈등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부동산 가치 급등에 따라 원주민이 쫓겨나면서 지역을 ‘귀족화’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제이콥스의 사례가 북촌에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시사점은 있다. 시민 참여와 복합 용도는 열린 도시공동체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점이다. 시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새로운 대화체가 필요하다. 사업계획 과정에서 서울시, 종로구, 시민들이 서로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풀뿌리에서 여러 생각이 올라오면서 관과 소통하고, 대다수가 찬성하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북촌의 복합 용도를 위해선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관광 지원보다 주민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해 둘 사이의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니치빌리지처럼 상업시설이 있는 길에는 사람이 많아도 주거지 골목이 조용하다면 주민과 관광객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 중심인 ‘대량 관광’보다 관광객들이 알아서 찾아오도록 하면 지역주민에게도 부담이 덜할 것이다.

 북촌 문제는 결국은 모든 동네의 문제다. 북촌처럼 개발 압력이나 관광 문제를 겪지 않는다고 해도 풀뿌리에서부터 시민의 참여가 이뤄지거나 균형 잡힌 복합 용도가 잘되는 지역은 거의 없다. 그 공백은 민원과 갈등, 경우에 따라선 증오로 채워진다.

 그래서 북촌은 또다시 역사의 길목에 서 있다. 북촌은 사상 처음으로 재개발을 포기하고 역사적 경관 보존의 길을 걸었다. 이제 북촌은 열린 도시공동체의 실험장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할 때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가고시마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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