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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빅브러더보다 더 무서운 ‘리치 엉클’

중앙선데이 2013.06.29 23:17 329호 28면 지면보기
일본의 공포만화가 이토 준지의 단편 중에 ‘길 없는 거리’라는 것이 있다. 주인공인 여학생이 오랜만에 이모를 찾아갔는데, 이모가 사는 동네가 이상하게 변해 있다. 새로운 집들이 기존 집들 사이 길에 마구 들어서서 길이 없어졌고, 돌아다니려면 남의 집을 통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가면을 쓰고 다니지만 그러면서도 일상적으로 이웃을 엿본다. 사적 공간을 지키기 위해 집의 문을 걸어잠근 사람들은 길을 막았다는 이유로 끌려 나와 몰매를 맞는다. 간신히 마을 한가운데서 만난 이모는 옷을 죄다 벗은 채 살고 있다. 어차피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없게 됐으니 아예 다 드러내놓고 살겠다면서.

공간 소멸 사회

이 단편은 이토 준지 작품치고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덜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섬뜩했던 만화로 기억에 남는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길 없는 동네’가 온라인에서 현실이 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개인 블로그나 SNS 계정은 서로서로 맞붙어 있으며 통로 구실을 한다. 사용자들은 얇은 가면을 쓰고 있지만 진정한 프라이버시는 결코 없다.

프랑스의 문화이론가 폴 비릴리오(81)는 운송과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모든 것의 속도가 증가하면서 지점들 사이의 실질적 거리가 좁혀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속도로 인해 공간이 재편되고 결국에는 (유의미한) 공간이 사실상 소멸한다고 보았다. 그가 말한 것은 물질적·자연적 공간의 소멸이지만, 특히 사적 공간은 물질적·비물질적으로 모두 소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속화된 시대에는 전쟁이 터져도 피란 갈 실제적 공간이 없으며, 소위 ‘신상 털기’에서 달아날 사이버 공간도 없다. 블로그나 SNS 계정의 개인정보는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공개한 것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노출되고 있다.

판옵티콘에 가까운 쿠바의 원형감옥(현재는 쓰이지 않음). [사진 Friman]
최근 미국과 유럽을 들끓게 하고 있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사건이 그 예다. NSA가 테러방지를 위해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페이스북 등의 중앙 서버에서 이용자 개인정보를 수집해 온 것이 폭로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 사건에 대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중앙일보 2013년 6월 19일자 30면 ‘빅브러더, 왜 한국은 조용한가’ 참조> 왜일까?

‘국내 현안이 많아서’ 등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미 개인정보 유출이 일상적이어서도 그럴 것이다. 바로 어제도 필자에게 어느 알 수 없는 금융회사에서 대출상품을 안내해 주겠다는 전화가 휴대전화로 걸려왔다. “제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물으니 전화가 뚝 끊긴다.

또 필자는 몇몇 포털에서 뉴스를 볼 때 옆에 뜨는 온라인서점 광고를 보고 신기해한 적이 있다. 대중적 인기가 별로 없을 전문서적들이 광고에 뜨는 것이었다. 그 일이 반복되자 비로소 그 광고는 내가 그 서점에서 했던 책 검색을 바탕으로 한, 내게 특화된 광고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나의 개인적인 관심 정보는 잘도 여러 기업에서 공유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 최근 뉴스위크는 “당신의 프라이버시는 NSA 이전에 애당초 그런 데이터를 수집했던 페이스북 같은 기술 대기업들에 침해당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개인정보를 수집해 이윤을 창출하는 ‘리치 엉클 rich uncle’이 ‘빅브러더’ 정부보다 더 무섭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편리를 위해서, 특히 “빠름 빠름 빠름”의 속도를 위해서, 개인정보를 기업들에 쉽게 내주었다. 가게에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에 개인정보를 기입했으며, 페이스북에 여행사진 올릴 때 장소를 따로 쓰는 시간과 수고를 덜기 위해 장소 추적을 허락해 자동으로 올라가게 했다. 물론 여기에는 소비자가 자초한 것뿐 아니라 개인정보 약관을 일부러 복잡하게 서술한다든가, 굳이 개인정보가 필요 없는 서비스까지 정보 기입 없이는 못 쓰게 한다든가 하는 기업의 꼼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것들에 맞서려면 일단 우리는 불편과 감속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이 흐름에 몸을 맡기다가는 비릴리오가 예언한 공간이 소멸된 사회, 전자적 판옵티콘(모든 것이 감시되는 원형감옥)의 암울한 미래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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