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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자신만을 위한 ‘사흘 휴가’

중앙선데이 2013.06.29 23:23 329호 27면 지면보기
부스스한 얼굴로 잠을 잘 못 잔다며 하소연하는 이들이 있다. 그 고민의 실체를 접해보면 잠이 안 올 법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항하는 자식 때문에 시름하고, 남편과의 불화에 괴로워하며, 직장 내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까지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인생이 꼬여도 한참 꼬였다. 그렇게 걱정과 고민이 많으니 잠이 올 리 만무하다.

한때는 내게도 밤이 오는 게 무서우리만치 불면증에 시달리던 시간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과의 직면 때문이다. 가까운 이들이 한꺼번에 여럿 떠났다. 그 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식과 49재, 뒤처리를 해가며 논문을 쓰고 바쁜 일정에 책까지 냈다. 그러고 나니 내 몸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멍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문밖 출입이 줄어들었으며,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났다. 길을 걷다가도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기 일쑤였다. 어둠이 내리면 뭔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와주기를 청하고 또 청했다. 수면제를 먹고도 몇 시간이 지나도록 머릿속은 쉼이 없었다. 잠들었다가 알람 소리에 깨면 또다시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움켜쥐고 빈 배 속에 두통약을 털어넣었다. 이런 생활이 서너 달쯤 계속됐다. 죽음의 환영은 몽롱한 상태를 만들었다. 당장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불면증과 우울증을 넘어선 증세였다. 마치 바다 위를 표류하는 무기력한 배처럼 몽롱했다.

그러면서 가려웠다. 머리도 가렵고 머릿속도 가렵고 온몸이 가려웠다. 시도 때도 없이 벅벅 긁어댔다. 원래 피부가 남들보다 민감해서 조금만 건드려도 붉어지는 편인데, 무심코 긁어대던 것이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하더니 한번 긁기 시작하면 피가 맺힐 정도였다. 그렇게 긁다가 짜증이 나 이를 악물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잠을 못 자는 것은 단순히 내 생체리듬을 무너뜨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어느덧 삶을 파괴하고 있었다. 내게 불면증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하는 이들의 생활도 이전의 내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자신의 괴로운 삶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파괴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누구보다 자신이 스스로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때 내가 택한 방법은 의식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었다. 나는 생체리듬이 자리 잡을 때까지 억지로 자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잠이 안 오면 자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일을 했다. 명상과 염불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켰으며 책을 읽고 바느질을 했다. 휴대전화도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졸고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 방법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근심·걱정을 줄이는 방법부터 찾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면 편안해져서 생활이 훨씬 수월해질 거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역할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존재 가치만을 생각하며 살라고 해도 대한민국 여성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믿고 말씀드린다. “주위 사람들로 인해 생긴 근심·걱정일랑 잠시 잊고, 오직 자신을 위한 휴가를 딱 사흘만 줘 보세요. 의식의 흐름이 바뀌고 나면 두려움으로 가득하던 불면의 밤은 어느새 평온하고 시원한 한여름 밤의 꿈을 선사할 겁니다.”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 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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