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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책 읽는 인간] 로마가 무너진 이유 … 분열 탓인가, 번영 때문인가

중앙일보 2013.06.29 00:56 종합 22면 지면보기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샤를 드 몽테스키외는 “풍요는 부에 있지 않고 도덕 속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로마의 끝없는 정복과 번영이 온갖 분란을 일으키고 민중의 소요를 격화시켰다고 해석했다. 그림은 `카이사르의 죽음`(빈첸초 카무치니·1798년). 카이사르는 로마 공화정 말기에 1인 지배자로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으나 원로원 옹호파에 의해 암살됐다. [그림 사이]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김미선 옮김, 사이, 336쪽

1만5400원




몽테스키외(1689~1755)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물론 학창 시절이었다. 까까머리 시절 나에게 이 어려운 이름은 그저 ‘삼권분립’이라는 낱말과 더불어 암기해둬야 할 항목에 불과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각자 독립된 권력기관으로서 서로 견제한다.’ 서슬 퍼런 박정희 시절에는 삼권분립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하지만 현대국가에서는 행정부에 더 많은 권한이 부여된다”는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1734)는 『페르시아인의 편지』(1721), 『법의 정신』(1748)과 더불어 몽테스키외의 3대 저작으로 꼽힌다. 암스테르담에서 가명으로 출판됐음에도 이 책은 당시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몽테스키외를 일약 지성계와 사교계의 총아로 만들어 주었다. 이 책에서 그는 장쾌한 필체로 반도의 일개 도시국가에서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포괄하는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한 로마의 대서사시를 펼쳐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로마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이다. 근대 이전의 역사는 연대기나 이야기에 가까웠다. 로마사의 여러 장면, 가령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이야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계기가 된 루크레티아의 자살,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 공화정을 무너뜨린 사건 등은 서구의 지성인에게 주로 문학이나 조형예술의 제재로 더 잘 알려진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다르다. 이 책의 원제는 ‘로마인들의 위대함과 그들의 몰락의 원인에 관한 성찰’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몽테스키외는 로마사에서 어떤 미덕의 실례가 될 만한 도덕적 훈화를 찾거나, 조형예술의 제재가 될 만한 비장한 설화를 찾으려는 게 아니다. 그가 찾는 것은 로마의 흥망성쇠를 가져온 ‘원인’이다. 이는 역사에 대한 그의 접근방법이 ‘도덕적’ 혹은 ‘예술적’이 아니라 철저히 ‘과학적’임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몽테스키외는 마키아벨리를 닮았다. 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는 군주의 덕성에 관한 도덕적 담론을 권력 기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으로 바꾸어 놓았다. 몽테스키외가 로마사에서 찾는 것 역시 어떤 ‘법칙’, 즉 제국의 성쇠를 좌우하는 구조적 원인이다. ‘카이사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그와 똑같은 일을 했을 것’이라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몽테스키외는 역사가 위인이 아니라, 초인격적인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이런 분석의 결과 그는 로마의 패망에 관해 알려진 통설과는 사뭇 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저술가들은 로마를 패망케 한 것은 분열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 분열이 로마에 필연적이었고, 그런 분열은 늘 있어 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는다. 얄궂게도 로마에 해악이 된 것은 바로 공화국의 번영이었다. 그 번영이 온갖 분란을 일으켰고, 민중의 소요를 내전으로 격화시켰다. 사실 로마에는 분쟁이 있어야 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책이 비록 로마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주요한 관심은 실은 이상적 ‘정치체제’의 모색에 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13년 전에 쓴 『페르시아인의 편지』와 14년 후에 쓸 『법의 정신』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페르시아인의 편지에서 그는 이방인의 시각으로 전제군주제를 신랄히 비판한 바 있다. 그가 로마사에 주목한 이유는 로마 융성의 원천이었던 공화제에서 근대국가의 모델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로마 정부를 보면 진정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탄생 이래로 민중의 정신에 의해서든, 원로원의 힘에 의해서든, 아니면 정무관의 권한에 의해서든 간에 어떠한 권력 남용도 언제나 그 구성에 의해 바로잡혔다. 카르타고가 패망한 것은 그들이 권력의 오남용을 시정해야 할 때 한니발의 개입조차 받아들이지 않아서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14년 후에 『법의 정신』에 전개할 ‘삼권분립’ 이론의 맹아를 본다.



  『법의 정신』에서 몽테스키외는 정체를 세 가지로 분류하며, 공화정의 원칙은 ‘미덕’이고, 군주제의 원칙은 ‘명예’이며, 독재의 원칙은 ‘공포’라고 말한다. 이 분류에서 우리는 ‘왕정’에서 ‘공화제’를 거쳐 ‘제정’으로 변모해 간 로마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몽테스키외가 이 세 정체 중에서 어느 하나를 절대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서술은 규범적이라기보다 차라리 기술적(記述的)이다. 어느 정체가 적절하냐는 국가공동체의 규모에 달려 있다.



  특정한 규모에 작동하던 기제는 규모가 달라지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작동하는 정체는 국가를 번영시키나, 그 번영을 통해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 기존의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크게는 군주정에서 공화제를 거쳐 제정으로 정체가 변하는 과정, 작게는 원론원이나 호민관 제도 등의 변천은 결국 로마가 규모의 변화에 따른 위기에 맞서 다시 자기 조절 시스템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조절에 실패했을 때 로마는 결국 멸망하고 만다.



 풍부한 일화는 이 책의 백미다. “콘스탄티노플의 민중은 청색당과 녹색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분열의 기원은 극장에서 어떤 배우를 더 좋아하는가에서 비롯되었다.” 노골적인 인종적 편견도 보인다. “투르크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흉측하게 생긴 민족이고, 그들의 여자들 또한 남자들만큼 끔찍한 용모를 지녔다.” 프랑스혁명과 현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하나, 그 역시 흘러간 시대의 아들이었으리라.



●진중권 동양대 교수. 문화비평가. 미학자.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미학과 언어철학을 공부했다. 저서 『생각의 지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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