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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7월의 주제 - 여름, 소설의 유혹 

중앙일보 2013.06.29 00:47 종합 24면 지면보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7월 주제는 ‘여름, 소설의 유혹’입니다. 국내 스릴러 문학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해온 정유정, 예리하고 빛나는 문장이 일품인 제임스 설터,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을 골랐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와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소설의 매혹적인 세계에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전염병이 밀려왔다, 그 공포의 끝은 …



28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496쪽, 1만4500원




‘동물에게 마음이 있는가.’ 마크 롤랜즈의 책 『동물의 역습』은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정유정의 소설 『28』을 읽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질문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과연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정유정은 이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을 해준다.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말이다.



 소설 『28』에서 동물의 마음은 허구적 결론이 아니라 서사의 전제이다. 동물의 마음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이 소설은 아예 읽을 필요도 없다. 『28』의 주요 화자 중 하나가 바로 늑대개 ‘링고’이니 말이다. 정유정은 링고의 내면을 사람들의 목소리와 다를 바 없이 서술한다. 아픔을 느끼고 상실감에 허덕이는 동물, 영혼을 가진 개들, 그들은 이 소설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시작은 인간이다. 알래스카의 역사적 개썰매 경주인 아이디타 로드에 출전한 최초의 한국인 머셔(개썰매꾼) 서재형은 화이트 아웃 상태에서 길을 잃고 만다. 설상가상, 굶주린 늑대들이 나타난다. 겁에 질린 두 부류의 동물 중 판단을 내리는 건 인간이다.



 인간 서재형이 내린 결정은 썰매개들을 미끼로 던져두고 혼자만 살아남는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동물의 세계라지만 서재형은 개들의 복종심을 이용해 생존한다. 인간과 동물의 도덕이 역설적으로 뒤집혀 버린 것이다.



 치명적 상처에서 회복된 서재형은 유기견들을 돕는 수의사로 살아간다. 이는 그의 속죄 행위이기도 하다. 그 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 개가 하나 둘씩 발견된다. 개들이 개들을, 인간이 인간을 그리고 개와 인간이 서로를 공격하는 인수공통감염의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이다. 화양이라는 가상의 도시는 광기에 빠진 개와 사람들에 의해 함락된다. 인간과 개의 구분도 모호해진다.



 그렇다면 이 질병은 어떻게 발생하게 된 것일까. 작가 정유정은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28』이 추적하는 것은 질병의 역학관계가 아니라 질병의 스펙터클이다. 질병이 인간의 통제력을 넘어서는 순간 이성은 휘발되고 증상만이 난무한다. 정유정은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영웅을 추적하지도 그렇다고 가상의 기원을 그려내지도 않는다. 다만 작가는 냉정한 시선으로 사람과 사람, 개와 개들 사이에 발생하는 환란을 박진감 있게 보여줄 뿐이다.



 결승점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썰매처럼 정유정의 문장은 재난 한가운데를 질주한다. 애착하는 인물 주변을 맴돌지도 그렇다고 공포에 결박된 채 재난 앞에 멈춰 서지도 않는다. 수의사 재형은 목숨을 바쳐 속죄를 완결 짓고 살면서 단 한 번도 갑이 되어보지 못했던 선량한 간호사의 육체는 참혹하게 짓밟힌다. 속물 가정이 은닉해왔던 동해의 광기는 재난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분명한 것은 바이러스의 육체적 파괴력보다 공포가 초래한 광기의 폭력이 더 끔찍하다는 사실이다. 아내와 아이를 잃고 반쯤 미쳐 개들을 몰살하는 기준이나 혼란을 틈타 무방비의 여성을 윤간하는 남자들은 야수와 다를 바 없다. 혼란이 시작된 도시를 봉쇄함으로써 사건이 무마되리라고 여기는 행정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정유정은 병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재난의 현장에도 삶이 그리고 생명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책이 선사하는 독서의 즐거움은 기존 한국 문학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정유정은 상처를 봉합하는 숙련된 집도의처럼 명쾌한 문장을 날렵하게 엮어 나간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머뭇거릴 틈은 없다. 독자들이 느끼는 속도감과 긴장도 문장의 탄력에서 비롯된다. 최소한 적게 생각하고 최대한 재빨리 움직이는 정유정식 문장은 유례없는 서사적 활기를 선사한다.



 『28』은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는 서술자의 목소리가 지배적인 작품이다. 내면은 동물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스타(암캐)를 잃은 늑대개 링고의 고통과 슬픔은 가족을 잃은 기준의 고통과 다를 바 없다. 상처 앞에 모든 동물은 고통스럽다. 재난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고통이다. 이쯤 되면 인수공통감염의 생리학적 공포는 부차적 문제가 된다.



 문제는 공포 자체가 아니라 재난 이후 삶이다. 날카로운 비명 가운데서 떠오르는 것은 재난의 공포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질문이다. 생명이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향해 소설은 링고처럼 달려간다. 숨 가쁜 에너지가 헐떡이는 야성의 서사, 정유정의 『28』이다.



강유정 문학평론가



●강유정 문학평론가·영화평론가. 고려대 한국어문교육연구소 연구교수. 저서 『오이디푸스의 숲』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스무 살 영화관』 등.





완벽해서 위태롭다 … 껍질 벗겨낸 중산층의 사랑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444쪽, 1만3800원




불경스러운 이야기다. 책을 덮자마자, 성경의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떠올렸으니. 우리는 태어나 죽고, 성경에 의하면 창조되고 멸망한다. 『가벼운 나날』(원제 Light Years)은 마치 성경처럼 인간 군상의 온갖 이야기를 현미경으로 보듯 풀어놓는다. 태어난 우리가 어떻게 살다 생을 끝내고 있는지.



 작가는 자기가 만든 세상의 신이 되어 허황되고 나약하고, 살고 있음에도 삶을 모르는 세상의 인간들을 지적한다. 흠잡을 데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의 삶을 묘사하고선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기억되지 않을 날들이었다”고 풀이하는 식으로.



 소설은 미국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다. 네드라와 남편 비리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하다. 매력 있는 아내와 경제력 있는 남편, 두 딸과 교외의 큰 집. 그들의 식탁은 함께 한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와 맛있는 음식으로 풍성하다. 모든 것이 정돈된 듯하지만, 권태롭고 그렇기에 위태롭다.



제임스 설터
 아내는 자유롭고 싶고, 남편은 위대한 건축가가 되고 싶다. 늘 동심 속에서 살길 원했던 두 딸은 성장할 수밖에 없고 방문한 친구들은 떠난다. 실제 욕망은 부부가 보내는 완벽한 하루와 어긋나 있다. 그들은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 연기자가 된 듯한 위기감을 느낀다. 작가는 주인공이(우리가) 모르는 그들(우리)의 현재 상태를 정밀한 언어로 진단한다.



 “완벽한 하루는 죽음 안에서, 죽음과 유사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완전한 굴복에서.”(66쪽)



 “붕괴는 시작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국면에 이르러야만 벽에 균열이 보이고 기둥이 쓰러지고 건물의 앞면이 내려앉는다.”(129쪽)



 소설의 많은 단락은 계절과 그 계절의 날씨·생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봄·여름·가을·겨울에 따라 가족의 활동 범위는 달라지지만, 영원할 것처럼 반복하는 계절 앞에서 변화는 미비하다. 사람들은 먹고 마신다. 작가는 “삶은 날씨고 삶은 식사”라고 했다.



 이 가벼움에 가슴을 치는 절망감이 엄습한다. 생의 시작과 함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준비만 하다 끝내는 형벌을 받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성경처럼 위안은 있다. 만족스럽지 못한 어제, 답답한 오늘, 불안한 내일을 반추하게 한다. 암호 같은 코드가 가득한 미로를 나만 헤매고 있지 않다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왜 가볍지 않은 소설 제목을 ‘Light Years’라고 지었을까. 소설 속의 아내는 남편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잠깐 멈춰선 차 안에서 매니큐어를 칠하면서. 작가는 남편의 생각을 한 문장으로 대변하고, 왜 가벼움이라는 단어를 택했는지를 내비친다. “그는 행복했는가? 너무 진지한 질문이어서 오히려 가벼웠다”고.



한은화 기자





중학교 뒤뜰에 남학생 시신 … 꼬리에 꼬리 무는 진실 찾기



솔로몬의 위증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693쪽, 1만4800원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맛깔 나는 밥상을 차려내는 이가 진정한 고수다.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의 대모인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는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이란 익숙한 소재로 긴장감 가득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002년부터 9년간 문예지 ‘소설 신초(小說新潮)’에 연재한 대작의 면모가 느껴진다.



 사건의 뼈대는 단순하다. 도쿄의 조토 3중학교 뒤뜰에서 크리스마스 날 아침 2학년 남학생 가시와기 다쿠야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전날의 폭설 탓에 온몸에 눈을 뒤집어 쓴 상태. 등교를 거부하는 등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다쿠야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자살로 결론 난다.



 하지만 오이데 슌지 등 교내 불량학생들이 다쿠야를 살해했다는 의문의 고발장이 날아들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 부모와 자식, 형제 관계, 오해와 피해 의식 등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맞물리고 얽히며 사건은 복잡하게 꼬여간다. 방송사의 보도는 사건을 둘러싼 혼란을 더 부추긴다.



 총 3부로 이뤄진 신작 중 ‘사건’에 해당하는 1부는 본격적인 서술을 위한 사전 포석의 성격이 강하다. 사건과 관계된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팽팽하게 맞물린다. 인물들의 속내가 마치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드러나면서 독자는 섣부른 예단에 빠지지 않게 된다.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파문이 또 다른 학생의 자살과 죽음 등으로 이어지자, 동급생은 자신들의 힘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불량학생이 오이데 슌지를 피고로 한 교내 재판을 열기로 한 것이다. 중학생의 당돌한 시도인 셈이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은 녹록하지 않다. 교내 재판 계획을 밝힌 중학생에게 해당 사건을 취재한 방송 기자가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밝히려 들지 않아. 죄가 있는 인간일수록 더더욱 그래”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 이야기는 닷새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교사와 학생, 학부모, 형사, 기자 등 모든 관계자가 모인 교내 법정으로 옮겨간다. 2부 결의와 3부 법정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대장정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춘기 아이들의 소리 없는 전쟁, 그리고 엇갈린 진술 속에서 진실의 광맥을 더듬는 이들의 노력을 생생하게 그려낼 것이다. 기꺼이 동참할 만큼 기대되는 여정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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