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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오늘 박 대통령 방문, 시안의 숨은 코드

중앙일보 2013.06.29 00:19 종합 14면 지면보기
“구중궁궐의 대문이 활짝 열리고, 모든 나라에서 의관을 갖추고 황제에게 절하네(萬國衣冠拜冕旒·만국의관배면류).”


외교 코드 레이건·사르코지·메르켈도 '진시황릉 병마용' 관람
통치 코드 시진핑 권력 기반으로 떠오르는 ‘산시방’의 본거지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시다. 8세기 당 제국의 심장이던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에는 쇄도하는 외국 사신들로 가득했다. 동로마제국의 사신이 7차례, 일본의 견당사(遣唐使)가 15차례, 아랍제국이 36차례 사절단을 파견했다. 『당육전(唐六典)』에 따르면 당은 300여 나라와 사신을 교환했다. 개혁·개방 이후 수백 명의 외국 정상이 시안을 방문했다. 세계 제국의 모양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시안을 찾는다. 천년고도 시안에 숨겨진 비밀을 살폈다.



김일성도 1982년 병마용 찾아



시안(西安)시 북쪽 60㎞ 떨어진 푸핑(富平)현 타오이춘(陶藝村)에 조성된 시중쉰(習仲勛) 전 부총리의 묘역에 세워진 추모석상. ‘투쟁하며 살아온 한평생, 즐겁게 살아온 한평생(戰鬪一生 快樂一生) 매일매일 치열한 투쟁, 매일매일 유쾌한 나날(天天奮鬪 天天快樂)’이란 부인 치신(齊心) 여사의 말이 새겨져 있다.
 1998년 6월 25일 오후 7시14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에어포스원(전용기)이 시안 셴양(咸陽) 비행장에 착륙했다.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현직 미국 대통령의 첫 방중이었다. 중국은 긴장했다. 미국 내 ‘중국위협론’을 잠재우고, 위안화 평가절하 압력을 막기 위해서 클린턴의 환심을 사야 했다. ‘세계 최고의 환영 의례[天下迎賓第一禮]’가 준비됐다. 명(明)대에 개축한 시안 고성의 남문에서 황제의 입성식(入城式)을 재현했다. 펑쉬추(馮煦初) 시안시장이 성문 앞에서 클린턴에게 길이 15㎝, 폭 6㎝에 비룡(飛龍)과 영어와 한자로 ‘중국 시안’을 새긴 황금열쇠를 선물했다. 펑 시장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논어』 구절을 인용해 환영했다. 클린턴은 “니먼하오(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며 중국어로 인사했다. 그는 “중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내일의 희망을 축복한다”며 “미국인들은 당신들의 성취, 경제, 근면, 창조성과 비전에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어 “쎼쎼(감사합니다)”로 연설을 마무리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클린턴은 이어 당나라 복장을 한 무사와 춤추는 무희들의 안내를 받으며 성루에 올랐다. 마치 황제가 천하를 굽어보듯이 시안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감격을 맛봤다. 중국은 ‘황제 코드’로 클린턴을 유혹했다. 클린턴 이후 중국은 시안을 방문한 주요 국빈에게 황제의 입성식을 제공했다. 이후 시안의 입성식에는 ‘비공식적인 공식 국가 환영식’이란 별칭이 붙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튿날 진시황릉인 병마용(兵馬俑)을 찾았다. 중국은 ‘병마용 외교’를 이어갔다. 1974년 발견된 병마용은 중국이 국빈의 격에 맞춰 대접하는 수많은 의전도구 중 하나다. 외교장관급은 일반 관람대보다 한 층 아래 병마용과 가깝게 마련된 플랫폼에서의 관람이 제공된다. 부총리급 이상은 여기에 붉은 카페트를 깔아 성의를 표시한다. 국가원수나 정부수반은 병마용 대열 안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하기도 한다. 1984년 병마용을 방문했던 레이건 대통령 부부와 마찬가지로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부인 힐러리, 딸 첼시, 장모 도로시 로드햄과 함께 병마용 사이에서의 특별 관람이 허락됐다. 그는 “책에서 본 것과 실물은 큰 차이가 있다”며 배려에 감사를 표시했다.



 병마용을 찾은 1호 외국 수반은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였다. 1976년 5월 14일 병마용을 방문한 리콴유 총리는 "병마용 발견은 세계의 기적이자 민족의 자랑”이라고 극찬했다. 중국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자크 시라크 프랑스 총리는 1978년 9월 병마용을 찾아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는 진정 이집트에 간 것이 아니고, 병마용을 보지 않고는 진정 중국을 본 것이 아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북한의 김일성 노동당총서기도 1982년 9월 23일 병마용을 방문했다. 중국은 후야오방(胡耀邦)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병마용까지 직접 안내하며 환대했다. 1972년 중국을 방문해 ‘죽의 장막’을 연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85년 9월 진시황릉을 찾았다.



‘병마용 외교’는 해외서도 이뤄진다. 중국은 미국, 대만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에 병마용의 해외 전시를 허용한다. 병마용은 현지에서 ‘중국열’로 이어진다. 병마용은 중국 소프트파워의 첨병이다.



 클린턴의 방중은 8박9일 동안 계속됐다. 시안, 베이징, 상하이, 구이린(桂林), 홍콩으로 이어진 여정은 클린턴이 직접 결정했다. “시안에서 중국의 빛나는 과거를 보고, 베이징에서 선명한 현재를, 상하이와 홍콩에서 중국이 약속하는 미래를 보겠다”는 취지였다. 클린턴은 중국을 존중했고, 방중은 성공했다.



시진핑 부자와 시안의 인연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부인 낸시 여사와 함께 병마용 사이에서 포즈를 취했다(왼쪽). 2010년 생일에 병마용을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말띠라는 설명을 듣고 말 조각상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가운데). 1993년 산시(陝西)성 량자허 마을을 찾은 시진핑 당시 푸저우시 서기(오른쪽).▷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올랐던 시안의 성곽은 1950년대 철거될 운명이었다. 마오쩌둥이 베이징 성곽을 허물자 시안시정부가 여기에 동조해 시안의 성도 없애기로 했었던 것. 이를 지켜낸 사람이 바로 시진핑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1913~2002) 당시 국무원 비서장이다. 시안의 역사학자 우바이룬(武伯倫)은 철거 계획 소식을 듣자 베이징의 시중쉰에게 철거를 막아달라는 편지를 썼다. 시안에서 북쪽으로 60㎞ 떨어진 푸핑현(富平縣)에서 태어난 시중쉰은 관련 부처에 “시안 성벽은 중요 문화재다. 보호해야 한다.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이 지시와 함께 시안 성벽은 전국 제1차 문물보호단위에 지정됐다.



 산시 출신 시중쉰의 별명은 ‘서북왕(西北王)’이다. 그는 1934년 산간변구(陝甘邊區·산시성과 간쑤성 변경지대) 소비에트정부 주석으로 공산혁명을 이끌었다. 1935년 마오쩌둥의 홍군은 산시성 북부의 옌안(延安)에서 대장정을 마쳤다. 시중쉰이 마오쩌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혁명기 마오쩌둥은 중국을 다섯 권역으로 나눠 국민당과 대결했다. 서북국은 시중쉰, 서남국은 덩샤오핑(鄧小平), 동북국은 가오강(高崗), 화동국은 라오수스(饒漱石), 중남국은 덩쯔후이(鄧子恢)가 지휘했다. 옌안의 서북국은 1949년 시안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1949년 마오쩌둥이 신중국을 세웠지만 변방의 살아있는 권력이 딴마음을 품을까 두려웠다. 1952년 가을 류사오치(劉少奇)가 이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자고 건의했다. ‘오마진경(五馬進京)’으로 불리는 조치다. 베이징에 초치(招致)된 시중쉰에게는 중앙선전부를 맡겼다. 시진핑이 이듬해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이름을 진핑(近平, 당시까지 베이징은 베이핑·北平으로 불렸다)으로 지었다.



 1993년 푸젠성(福建省) 상무위원 겸 푸저우시(福州市) 서기이던 시진핑이 혁명의 성지 옌안에서 동북으로 80㎞ 떨어진 옌촨현(延川縣) 량자허(梁家河)촌을 방문했다. 18년 만의 방문이었다. 시진핑을 잘 아는 촌로들은 그에게 동부콩과 참깨, 좁쌀로 만든 국수를 선물했다. 푸젠으로 돌아가서라도 옛 고향의 맛을 잊지 말라는 정을 담았다. 시진핑은 답례로 집집마다 알람시계를 선물했다. 자녀들을 늦지 않게 학교에 등교시키라는 배려였다. 시진핑 주석은 16세부터 22세까지 7년간 량자허의 토굴에서 지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은 베이징의 지식청년 2만여 명을 옌안의 황토고원으로 보냈다. 시진핑과 왕치산(王岐山) 정치국 상무위원도 그 무리에 속했다. 시진핑은 훗날 “(나의) 성장과 진보는 산베이(陝北·산시성 북부) 7년에서 시작됐다”며 당시 두 가지 수확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하나는 실제와 실사구시(實事求是), 군중이 무엇인지 알게 해줬다. 평생 잊지 못할 수확이다. 둘째 나에게 자신감을 배양해 줬다.” 시진핑은 “산시성은 뿌리[根], 옌안은 혼(魂)”이라고 말한다.



루하오 헤이룽장 성장 ‘떠오르는 별’





 시진핑 정권의 등장 이후 중국 정계와 군부에 산시방(산시성과 관련 있는 정치인)이 약진하고 있다. 그 면면은 화려하다. 시진핑(60) 중국 국가주석, 자오러지(趙樂際·56) 중앙조직부장, 팡펑후이(房峰輝·62) 총참모장, 장요샤(張又俠·63) 총장비부장, 장바오원(張寶文·67) 전국인대 부위원장 등은 모두 고향이 산시성이다. 시진핑과 왕치산(65) 정치국상무위원, 왕천(王晨·63) 전국인대 부위원장 겸 비서장은 베이징 지식청년 신분으로 산시에서 활동했다. 지난 11월 평양을 방문한 리젠궈(李建國·67) 정치국위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자오러지 부장은 산시성 당서기를 역임했다. 리잔수(栗戰書·63) 중앙판공청주임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산시성 상무위원으로 일했고, 시안(西安)시 당서기도 1년간 맡았다. 그밖에 저장(浙江) 샤오싱(紹興) 출신으로 알려진 위정성(兪正聲·68) 정치국 상무위원도 산시방에 속한다. 올 3월 신화사가 위정성 상무위원의 전국정협위원장 당선을 보도하면서 1945년 4월 옌안(延安) 출생으로 보도해서다. 총 정치국 상무위원 3인, 정치국 위원 4인,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3명, 전국정협 부주석 1명이 산시방으로 분류된다.



 혁명의 성지 옌안이 산시에 위치한다. 중국 정계에서 산시 출신은 ‘붉은 혈통’의 보증서로 통한다. 여기에 든든한 후원자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산시방의 젊은 피로는 루하오(陸昊·46) 헤이룽장 대리성장이 있다. 시안에서 태어난 루하오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문혁 후 시안시 첫 고교생 당원(18세), 문혁 후 첫 베이징대 직선 학생회장(20세), 베이징 최연소 국영기업 총수(28세), 최연소 베이징 부시장(35세), 최연소 장관급 간부(41세), 최연소 성장(省長, 46세)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산시 사람들은 인정과 의리를 중시한다. 2005년 자매결연을 맺은 전남 박준영 지사의 초청으로 당시 시진핑 저장성 당서기가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해 4월 박준영 지사가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면담을 신청했다. 시진핑 주석은 흔쾌히 박준영 지사를 만났다. 시진핑 주석에게 과거의 인연을 중시하는 산시 사람의 피가 흐른다는 설명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의 권력기반은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관료 출신)이었다. 양저우(揚州) 출신으로 상하이에서 잔뼈가 굵어서다. 그밖에 고위 관료를 대거 배출한 푸젠방(福建幇), 산둥방(山東幇)에 비해 산시방의 숫자나 규모는 아직 미약하다. 하지만 시진핑과 함께 산시방은 향후 10년 중국 정계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중국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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