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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1호 국회의원, 이자스민의 1년

중앙일보 2013.06.29 00:08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자스민 의원이 27일 본회의 시작 전 방청석에 잠시 올랐다. 카메라 앞에 서자 금세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완득이 엄마’가 국회의원이 된 지도 1년이 넘었다. 이자스민(36) 새누리당 의원. 영화 ‘완득이’에서 이방인 엄마로 분했었지만, 실제로도 완득이만 한 아들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에 중학교 1학년 딸까지 키우고 있는 워킹맘 의원이다.

[사람 속으로] "금배지 달고 처음으로 기념식 갔더니 통역 붙여줘 황당" …
"다문화 정책, 지금은 달릴 때 아니라 한 사람씩 설득할 때"



 헌정 사상 최초의 귀화인 국회의원이란 타이틀을 달기 전 그는 ‘러브 인 아시아’ 같은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한 방송인이자 영화배우였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됐을 땐 그를 ‘얼굴마담’ 정도로 간주하는 시선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이자스민 의원은 한 해 동안 13개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한 달에 한 번꼴이다. 이 중 3개가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국회엔 국회의원이 없다’는 대한민국 정치현실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의원이 활동하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다음 총선 땐 우리 당이 공천을 줄 테니 한 번 더 일해보자”는 말도 하고 있다. 새누리당 안에서도 안정적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이 의원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27일 그를 종일토록 지켜봤다.



6·25 행사 가는 귀화인 국회의원



출근하며 회의 자료를 점검하는 모습(①)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장면(②), 지난해 11월 처음 본회의장 발언대에 올라 법안을 설명하는 이 의원을 찍어 액자에 담았다(③).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7일 오전 9시50분. 이 의원이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들어섰다. 보통 오전 7시부터 시작하는 조찬모임이 많지만 이날은 마침 일정이 없어 오랜만에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길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의원회관 복도 게시판에 붙은 토론회 포스터들을 확인하던 그는 기자에게 “지금은 안 그런데 처음엔 내게 한국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의원도 있었다”고 했다.



 국회 개원 직후인 지난해 5월. 가정의 달 기념식에서의 일이었다. 이 의원이 자리에 앉자 행사 주최 측이 옆자리에 통역을 앉혔다. “황당했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니 이 사람들은 한국어가 안 되는 사람을 자신들의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으로 뽑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때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고 했다. “6년간 방송에 출연했고, 영화에도 나왔으니 제 능력도 잘 알고 다문화에 대한 인식도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거죠.”



 그래서 ‘어쩔 수 없다. 일단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나를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동행 취재 전 25일 이자스민 의원을 잠깐 만났다. 오전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있었던 6·25 전쟁 63주년 기념식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가슴엔 보훈처에서 준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귀화인이지만 6·25라는 역사를 자기 것으로 새기고 있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는 “2010년에 한국전쟁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참전 군인들과도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기념식엔 국회의원은 자신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 4명만 참석했다고 했다. 그래서 유승민 국방위원장이 “의원들이 많이 못 왔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다시 27일 오전 10시. 이자스민 의원의 사무실인 의원회관 936호에서 새누리당 가정행복특별위원회의 가정폭력분과 회의가 열렸다. 그는 분과위원장이었다. 박근혜정부가 ‘4대 악’ 중 하나로 지목한 가정폭력에 대한 집권여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이다. 8월 말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 회의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낮 12시10분쯤 끝났다.



 회의 중 이 의원은 한글로 메모를 했다. 독학으로 배운 한국어는 번역을 할 수 있을 정도지만 한자로 된 법률 용어는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물어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주변 의원들에게 물어봐요. 그러면 그들도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의원이 오늘 회의 도중 물어봤던 단어는 ‘대한민국재향교정동우회’였다. ‘재향군인회’ 할 때의 ‘재향(在鄕)’이나 교도소 재소자의 잘못을 바로잡음을 의미하는 ‘교정(矯正)’ 같은 말은 아직 그에게 낯설었다.



 회의가 끝나자 또 회의였다. 이번엔 그가 참여하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오찬 회의였다. 오후 1시25분엔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국회 246호에서 열렸다. 이날 세 번째 회의였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담록 공개에 대한 발언이 이어졌다. 이 의원은 옆자리에 있는 원내대변인 강은희 의원과 간간이 대화를 나눴다.



 성격이 활달한 편인 그는 당은 다르지만 인재근 의원, 박병석 국회부의장 등 민주당 의원들과도 친하다고 한다.



 이 의원의 지난해 후원금 모금액은 380만원이었다. 뒤에서 4등이다. 한 사람당 최대 500만원씩 후원을 할 수 있으니 한 명에게만 제대로 받아도 작년보다 많았다. 이 사실이 보도된 후 올해는 다른 중진 의원들이 후원금을 보내줬다고 한다. “저한텐 도와달라는 사람만 많더라고요. 그렇다고 무작정 돈을 드릴 순 없고, 제가 정책을 잘 만들어야죠.”



 오후 2시15분, 국회 본회의가 시작됐다. 네 번째 회의의자 이날의 마지막 회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기간을 연장하는 ‘공무원 범죄 몰수 특별법 개정안’ 등 65개 법안이 처리됐다.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이 의원은 4시50분 산회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부지런함. 그의 비장의 카드 중 하나다. 그는 지난 1년간 모든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회의에 다 참석했다. 기록상으로는 상임위에 한 번 빠진 걸로 나오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출석을 점검해 그렇게 됐다고 한다.



 “초선 의원인데 최대한 모든 회의에 끝까지 있으려 해요. 재미있는 얘기는 항상 마지막에 있기도 하고요.”



 이런 노력 때문에 그는 지난 18일 시민단체가 선정하는 국회 헌정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토론회나 기념식에 가면 이상했어요.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축사 정도만 하고 사라지는 거예요. 끝까지 있으니 행사 주최 측에서 오히려 당황하더라고요. 슬그머니 ‘혹시 식사도 하고 가는 거예요’라고 묻는데, ‘아 국회의원답게 조절해가면서 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래도 자리를 계속 지키는 건 중요하죠.”



 이날 본회의에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인해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했다. 발언 중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런 ‘국회 언어’에는 익숙해졌을까.



 이 의원은 처음 국회에서 질의를 할 때 존대를 안 하는 호칭이 이상했다고 했다. “다른 의원들은 상임위에서 질의할 때 ‘장관, 뭐라고 했나요’라고 하는데, 저는 한국어 배울 때 어른들 많은 집에서 배워서 존댓말부터 배웠거든요. 아이들한테도 반말을 하는 게 힘들었는데 ‘장관’이라고 말하는 게…. 저는 ‘장관님’이라고 불러요. 야유하는 거는 TV에서 보던 느낌과는 다르더라고요. 공식 자리에서는 야유하지만 끝나면 다시 속을 터놓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다른 의견이 부딪치고 수렴하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의원은 지난해 총선·대선, 올해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당의 취약 지역인 호남, 서울 노원구 등에서 지원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지역감정에 대해서도 실감을 했다. “한 시장 상점 주인이 ‘완득이 엄마 왔다’면서 저를 보고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한참을 얘기하다 ‘여기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요. 새누리당 선거 운동 때문에 왔다고 했죠. 그랬더니 갑자기 얼굴색이 싹 바뀌면서 그냥 가라고 하더라고요.”



30대 워킹맘 초선, 부지런함이 무기



이자스민 의원이 27일 새누리당 가정행복특위 가정폭력분과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회의 중 그는 중요한 내용을 한글로 메모했다.
 이자스민 의원이 본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의원실의 보좌관들은 본회의가 열리는 장면을 주시했다. 의원실 936호는 국회에서 가장 여성 비율이 높다. 운전기사를 제외하면 8명 중 남성이 3명, 여성이 5명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도 많다. 아리옹 비서관은 경기도청에서 일했던 몽골 이주 여성이다. 이민정 보좌관도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다. 이 보좌관은 “1960~70년대 여성문제와 다문화 문제가 비슷하다”며 “당시 논란이 컸던 호주제 폐지도 지금 자연스러운 것처럼 다문화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아프리카 가봉 출신 보리스 온도(24) 인턴사원이 처음으로 출근한 날이기도 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그는 실무능력을 쌓을 곳을 찾던 중 이자스민 의원실을 추천받았다고 했다.



 본회의를 마치고 회관으로 돌아온 이 의원은 영어로 그와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 온 지 2년 된 그는 나중에 가봉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후 8명의 보좌관·비서관들이 차례로 의원실을 들락거리며 보고를 했다. 이 의원은 다문화 가정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의원이다. 다문화포럼 ‘다정다감’도 이끌고 있다. 포럼 첫 가입 의원은 강창희 국회의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13개의 법안들은 다문화에 대한 지원금 제도를 새롭게 만든다든지 출입국 정책을 통째로 손보는 정책이 아니다. 결혼중개업 관리 강화, 다문화 정책 교육 의무화와 같이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들이다.



 ‘놀랄 만한 정책을 준비하는 게 있느냐’고 물으니 그는 “그렇게 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내 존재만 해도 큰 진전인데 거기에서 법안까지 급진적이면 사회에 큰 충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지난해 8월 초·중·고 교사·공무원 대상으로 다문화 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냈다. 법안은 논의 끝에 권고조항으로 수정돼 통과됐다.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의무조항으로 두기는 힘들다’는 이유였다.



 “처음엔 다문화 지원법을 새로 만드는 것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려니 걸린 문제가 많더라고요. 외국인 차별금지법안도 제가 발의를 하지는 않으려 해요. 오히려 부정적으로 비춰질 것 같아요. 노련한 의원들이 주도를 하면 적극 도우려고 해요.”



 그는 반대쪽 이야기도 듣고 있다. 지난해 9월엔 다문화 정책에 부정적이던 국제결혼 피해남성 모임(‘국제결혼 피해신고센터’)과 간담회도 했다. 외부 전문가 없이 이 의원과 신고센터 관계자 4명만 만난 회의였다. 4월에는 국제결혼 피해 여성들과 남성 피해자가 모두 모인 간담회도 열었다. 두 단체가 제대로 머리를 맞댄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간담회에 참여한 법무부도 놀랐다.



 원래 이 의원은 소속 상임위로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를 희망했었다. 영화배우이기도 했고, 다문화 정책의 핵심은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외통위로 배정됐다. 문방위의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속사정이 있었다. ‘파이팅’이 약해서였다. 여야 대립이 큰 문방위에 ‘전투력’이 떨어져 보이는 이 의원을 보내기엔 당 지도부 입장에서도 부담이었다.



 이게 전화위복이었다. “외통위 활동 중 만난 교민들이 ‘우리 심정을 다른 의원보다 이주 경험이 있는 이 의원께서 더 잘 안다’고 얘기해요. 북한이탈주민 정책과 다문화 정책이 비슷한 측면도 있고요.” 외통위에서 이 의원이 특별히 애정을 쏟은 정책이 있다. 일제하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소송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그는 이 법안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2일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다. 이날 모습은 의원실에 사진으로 걸려 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면서 의정 목표는 점점 더 분명해졌다. “내가 할 일은 달리는 게 아니라, 한 사람씩 설득해 나가는 것이죠.”



이주여성들 받는 데 익숙해져선 안 돼



 이날 일정은 오후 7시에 마쳤다. 일찍 들어가는 날엔 자녀들과 보낸다. 가족들은 쉼터다. 든든한 지원자들이기도 하다. “작년 총선 때 제가 학력을 위조했다는 논란이 있었잖아요. 어느 날 아들이 SNS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싸움을 하고 있더라고요. 혼을 냈죠. 그러나 한편으론 팔불출처럼 내 편만 들어주던 남편의 얼굴이 오버랩되더라고요.”



 이 의원은 필리핀에서 선원이던 남편을 만나 1995년 결혼했다. 연애 결혼이었다. 아이가 생긴 98년에 필리핀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했다. 아이를 키우던 중 ‘의사가 되고 싶었던 꿈 많던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들이 주로 하는 고민이었다. 결국 2006년부터 방송 일을 시작해 워킹맘이 됐다. 팔불출처럼 그의 편만 들어주던 남편은 2010년 세상을 떠났다.



 지난주 집에 들어가니, 남편을 오버랩시킨다는 아들이 “혹시 군 가산점 반대했어?”라고 물었다. 이 의원이 속한 여성위원회는 군 가산점 부활에 반대 입장을 냈다. “그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연희동 자택은 항상 시끌시끌하다. 시어머니와 시동생 가족까지 9명이 함께 지낸다. 최근엔 찾아보기 힘들어진 대가족이다. 그런 게 너무 좋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잖아요. 결혼 이주 여성이라 힘들게 산다고. 그런데 저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우리 어머님이 그러세요. ‘내가 너를 모시는 거지’라고요.”



 23일 오후 대전 중구 대전외국인복지관. 결혼이주여성의 정치학교 ‘꿈틀’에서 특강을 하고 있던 이 의원에게 한 이주여성이 물었다. “우리에게 다문화 가족이라 지원받는 게 많다고 비판하는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우리가 뭘 많이 받느냐’는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있지만 받는 데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지금은 수가 적어서 감당할 수 있지만 다문화 인구가 늘면 지원이 없어지겠죠. 자립을 해야 해요. 결국 다른 국민들과 같은 선에서 경쟁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2011년부터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도 군대를 가게 됐다. 당시 국방부에서 이 의원에게 “이들을 따로 나눠 부대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왔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전쟁 나면 따로 싸울 거냐.”



글=이상화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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