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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신 신데렐라 스토리

중앙일보 2013.06.28 00:41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5~6년 전 일본에서 만들어져 한국에서도 유행한 말 중에 ‘건어물녀’(일본어로 ‘히모노 온나’)라는 게 있다. 직장 생활에 지쳐 주말엔 집에서 혼자 맥주를 홀짝이는, 연애세포가 건어물처럼 말라버린 20~30대 싱글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세월이 지나 그 ‘건어물녀’들은 ‘오야지 온나(おやじ女子)’가 되었단다. ‘오야지’는 한국어로 아저씨, ‘온나’는 여자란 뜻이니 합치면 ‘아저씨 같은 여자’쯤 될까? 외모 가꾸기와 연애를 포기하고 남성화되어 가는 일본 30~40대 여성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한 사이트에 뜬 ‘오야지 온나’ 자가테스트를 보니 이런 게 있다. ‘휴일에는 종일 파자마’ ‘화장실에 갈 땐 신문을’ ‘예쁜 여대생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 등등.



일본 드라마 ‘라스트 신데렐라’. [사진 후지TV]
 일본 후지TV에서 지난주 종영한 ‘라스트 신데렐라’는 ‘오야지 온나’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다. 10년째 연애휴업 중인 39세의 싱글녀 사쿠라.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난데없이 수염이 한 가닥 돋아나 있다. 위기를 감지한 사쿠라는 더 늦기 전에 연애를 시작, 여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해 보기로 결심한다. 때마침 그의 앞에 열다섯 살이나 어린 청년 히로토가 등장하고, 친구처럼 지내던 남자 동료마저 이성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는 ‘허황된 전개’의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가 된 비결은 주인공을 맡은 시노하라 료코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있었다. 이 언니, 한국 드라마 ‘직장의 신’의 원작인 ‘파견의 품격’에서 ‘일본판 미스 김’으로 활약한 바 있다. 이번에도 맨 얼굴에 몇 벌 안 되는 옷으로 연명하며, 식사 후에는 반드시 이를 쑤시는 털털한 싱글녀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상대는 한국으로 치면 김수현 레벨의, 요즘 가장 잘나가는 일본 남자 배우 미우라 하루마다. 그가 “저랑 사귀어 주세요”라며 달려드는 판타지라면, 어찌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 30~40대 미혼 여성들에게는 재벌 2세도, 억대 연봉 전문직도 아닌 ‘연하의 꽃미남’과 맺어지는 게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열 살 가까이 어린 남자들과 결혼한 아나운서·가수·배우에 대한 부러움의 탄식이 끊이질 않는다. ‘30대 여성 6명 중 1명이 연하 남성과 결혼한다’는 통계를 들며 “희망을 잃지 말라”는 분들도 있다. ‘라스트 신데렐라’ 역시 마지막 대사로 격려한다. “믿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신데렐라.” 결혼 시장에서 ‘어린 여자’ 못지않게 각광받게 된 ‘어린 남자’, 평등의 징조로 읽어야 하나.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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