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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한국바둑 위기 뿌리는 지나치게 '좁은문'

중앙일보 2013.06.28 00:10 종합 27면 지면보기
세계어린이국수전에서 실력을 겨루는 바둑 꿈나무들. 신진서·신민준도 이런 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대다수는 입단이 어려워 중도에 바둑을 포기한다. [사진 한국기원]


한국바둑이 사면초가다. 팬이 줄어들고 바둑 지망생이 줄어들더니 유일한 버팀목이던 ‘실력’마저도 중국에 현저히 밀리기 시작했다. 지난주 중국의 춘란배 결승전에 앞서 기자회견에 나선 이세돌 9단은 중국기자들이 ‘LG배 16강전에서 한국기사들이 모두 져 8강에 한 명도 들지 못한 사건’에 대해 묻자 “우연”이라고 답했다. “요컨대 나는 이번 결과를 우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보면 최근 한국기사들의 칼날이 많이 무뎌졌다.”

어릴수록 성공 가능성 높지만
연간 12명만 프로 자격 획득
18세 넘으면 기회 없어 초조
승부 집착하다 창의성 잃어



 이세돌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사이기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춘란배 결승에서 이세돌이 천야오예 9단에게 무너지면서 설마 하던 우려가 드디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올해 치러진 네 번의 세계대회 결승전은 모두 중국 차지가 됐다. 앞선 세 번의 대회와 달리 춘란배는 최강 이세돌이 결승에 나섰음에도 졌다. 한국바둑은 이대로 쓰러지는 것인가.



 중국은 인구도 많고 바둑열도 뜨겁다. 국가 지원도 풍부해서 프로기사가 되면 대학을 선택해서 갈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이 중국을 이기기 힘든 이유다. 또 하나 있다. 중국바둑은 한국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이런 문제들은 아무리 애써도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기에 여기서는 접어둔다. 가장 시급하고 해결 가능한 문제가 바로 한국기원의 입단제도다. 현재 남녀 합해 연간 12명(남자 7명, 여자 2명, 영재 2명, 지방 1명)이 입단하는데 이 숫자가 너무 적은 것이다.



 프로기사는 나이가 어릴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다. 머리가 굳어지기 전에 승부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을 펼쳐야 바둑의 지평이 넓어진다. 조훈현(9), 이창호(11), 조치훈(12), 이세돌(12) 등 한국을 빛낸 초일류 기사들의 입단 나이는 다 어리다. 한국기원도 이를 잘 알기에 연구생들이 18세가 넘도록 입단하지 못하면 자격을 박탈한다. 현대바둑은 18~28세가 전성기다. 바둑은 몸을 쓰는 일반 스포츠보다 조금 빨리 개화하고 조금 빨리 진다. 올해 세계대회를 휩쓴 중국 기사들은 ‘90후’(90년 이후 출생자)가 주축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입단 문턱이 너무 높다 보니 입단 연령은 자꾸 늦어진다. 오래 전부터 ‘입단’은 모든 바둑 지망생들의 ‘악몽’이 됐다. 18세는 다가오고 우선 이기고 봐야 하므로 바둑은 오직 승부 위주가 된다. 만 18세에 겨우 프로가 되어도 속말로 “바둑이 꽁꽁 굳어” 몇 년 반짝 하다 시들고 만다. 한국기원은 지난해 처음으로 영재 입단대회를 도입해 신진서(13), 신민준(14) 두 명의 영재를 입단시켰고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바둑팬들의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다. 왜 이런 제도를 일찍 시행하지 않았는지 후회막급인 상황이다.



 우수한 인재를 키우려면 입단 문턱을 대폭 낮춰야 한다. 영재 입단도 늘려야 한다. 재능을 타고난 인재들에게 머리가 굳기 전에 더 많은 세계를 섭렵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게 마인드 스포츠인 바둑과 일반 스포츠의 차이점이다. 프로기사들은 입단연령을 낮추는 문제에 대해서만은 기득권을 떠나 신중히 고려해야 옳다. 세계대회에서 자꾸 지면 팬들보다 스폰서들이 먼저 떠난다. 꼴찌 일본은 그 많던 세계대회가 다 사라졌고 중국에선 많은 대회가 생겨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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