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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피커' 버리고 우수 고객에 집중, 파격 실험

중앙일보 2013.06.28 00:06 경제 6면 지면보기
현대카드가 2003년 최초로 선보인 투명카드.
“현대카드는 10년 전에 고객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카드를 처음 선보였다. 향후 10년 새로운 카드 포트폴리오로 다시 업계의 룰을 바꾸겠다.”(6월 24일 기자간담회)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수십 가지로 구분돼 있는 상품
포인트·캐시백 두 종류로 분류
카드 실적 50만원 넘어야 혜택

 카드업계에서 ‘파격’의 대명사로 통하는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스티브 잡스’식 단순함. 카드 포트폴리오를 총 10종류로 단순하게 재편해 고객이 쉽게 카드를 사용하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그의 실험이 또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정태영 사장
 27일 현대카드에 따르면 정 사장은 향후 10년 현대카드를 끌어갈 시스템으로 ‘포인트(+)’와 ‘캐시백(-)’ 두 가지를 제시했다.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수십 가지로 구분돼 있는 상품군을 크게 포인트 적립에 특화된 카드(M·M2·M3·T3)와 할인·캐시백 혜택이 큰 카드(X·X2·ZERO) 두 종류로 분류하겠다는 것이다. VIP(초우량 고객) 상품인 블랙·퍼플·레드를 제외한 알파벳 카드 시리즈의 신규 발급은 다음 달부터 중단된다.



 다음 달부터 출시되는 현대카드의 혜택은 당월 실적이 최소 50만원을 넘어야 누릴 수 있다. 대신 사용액이 많을수록 혜택이 늘어난다. 혜택을 받는 문턱까지만 카드를 사용하는 ‘체리피커’ 고객을 과감히 버리고, 실적이 우수한 고객군에 마케팅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정 사장은 “고객은 포인트를 쌓을지, 할인을 받을지만 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현대카드다운 실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현대카드는 2001년 현대·기아차그룹이 인수할 때만 해도 국내 시장 점유율이 1.8%로 업계 최하위권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쟁사들이 카드론 이자율이나 서비스 한도에 집착할 때 현대카드는 고객의 변화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탐색했고, 2003년 ‘현대카드M’을 선보였다. 알파벳·숫자·색깔의 3가지 축으로 상품 체계를 재편한 현대카드는 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2~3위권으로 끌어올렸다.





  2005년에는 연회비가 100만원(현 200만원)인 VVIP카드인 ‘블랙’을 출시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카드의 무리수’라며 평가절하했지만, 블랙은 단시간 내 VVIP들의 금융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가입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기존 카드에서 볼 수 없었던 프리미엄급 서비스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카드가 뭐 다를 게 있겠느냐’던 경쟁사들도 현대카드의 이런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결국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현대카드의 실험이 카드 시장의 판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이다. 이달 현대카드가 던진 새로운 ‘승부수’에 업계의 시선이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드업계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일단 수익성 악화 우려가 불거진 카드업계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한 전업계 카드사 관계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카드상품을 구조조정하면 각종 부가서비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혜택을 실적이 좋은 고객에게 몰아주면서 충성도 높은 우량고객을 확보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은행계 카드사 관계자는 “완전히 새로운 컨셉트의 기능을 내세운 게 아닌, 기존 카드 기능을 재분류한 것에 그쳤다”며 “여러 카드를 쓰던 사람을 현대카드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인데, 다른 카드사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카드 관계자는 “현대카드M이 나오기 전 국내 카드 시장은 ‘획일의 시대’였고, 다양한 카드가 난립한 지난 10년 동안은 ‘기계적 선택권의 시대’였다”며 “이제는 고객이 단순하고, 고민 없이, 편리하게 카드를 사용하는 ‘유동적 선택권의 시대’라는 화두로 새로운 업계 표준을 제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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