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건국신화 뿌리 품은 땅, 태평양 보며 호젓하게 노닐다

중앙일보 2013.06.28 00:05 Week& 6면 지면보기
1 일본 건국의 전설이 깃든 아오시마는 물결이 층층이 누운 모양의 바위들이 에워싸고 있다. 미야자키에서는 이 이색 해안지형을 ‘도깨비 빨래판’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네 개 큰 섬 중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섬이 규슈(九州)다. 규슈는 한국과 가까워 한국인 방문객이 유난히 많다.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규슈를 찾는다. 지난해 일본에 간 한국인은 200만여 명이었는데, 그중에서 규슈를 여행한 한국인이 60만 명을 훌쩍 넘었다. 규슈에는 모두 7개 현(縣)이 있다. 현은 우리나라의 도(道)와 비슷한 개념의 행정구역이다.

일본, 이곳 ③ 가족여행 강추 미야자키



규슈의 7개 현 중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덜 알려진 곳이 미야자키(宮崎)다. 규슈 동남쪽에 있는 미야자키는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온화한 기후의 지역이다. 일본에서도 해외여행 붐이 일기 전에 신혼여행지 일번지로 통했던 관광 명소가 미야자키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미야자키는 여전히 낯선 곳이다. 교통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규슈의 관문 후쿠오카(福岡)에서 자동차로 4시간 가까이 걸리고, 2011년 3월 개통한 규슈 신간센(新幹線)도 미야자키는 통과하지 않는다.



규슈관광추진기구에 따르면 미야자키를 방문하는 한국인 수는 후쿠오카의 4분의 1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외려 미야자키는 매력적인 여행지가 된다. 규슈 어디를 가도 한국인을 마주치는 요즘, 한국인이 드물다면 그만큼 호젓한 여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관광컨벤션협회의 도움을 받아 미야자키 가족여행 코스를 짰다. 오붓하고 아기자기한 여행 코스였다.



2 사가이아 리조트가 자랑하는 온천 내부 모습.
3 우도신궁 정문. 해안 동굴 안에 신사 본전이 숨어있다.
4 142m 높이에 떠 있는 아야 현수교.


신사 입구에 물 받아놓은 까닭은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신사(神社)를 들른다. 신사는 일본을 세운 신을 모신 사당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사찰과 같은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우리가 절에 들어가면 부처님께 세 번 합장을 올리는 예법을 따르는 것처럼, 일본에 가면 신사에 입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 나라의 문화를 익혀야 그 나라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신사 입구에 나무로 만든 바가지와 약수터처럼 물을 받아놓은 곳이 있다. 이 물은 마시는 물이 아니다. 신사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닦는 물이다. 바가지에 물을 담고 먼저 왼손에 물을 뿌려 왼손을 씻은 뒤 다음에 오른손을 씻고 끝으로 오른손에 물을 담아 마지막으로 입을 헹군다. 여태 일본을 여행하면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번 미야자키 여행에서는 실수 없이 절차를 밟았다. 그만큼 일본은 가까워졌다.



미야자키 남쪽 해안 절벽 아래에 우도신궁(神宮)이 있다. 일본 초대 천황으로 일컬어지는 진무(神武) 천황의 아버지를 기리는 사당이다. 일본 건국신화와 직접 연관이 있는 곳이어서 신사가 아니라 신궁으로 부른다. 그만큼 유명하고, 그만큼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일본을 상징하는 주황색이 칠해진 계단을 따라 절벽을 내려가니 왼쪽으로 동굴이 나왔다. 38m 깊이의 동굴 안에 신사 본전이 들어앉아 있었다. 이 동굴 안에서 바다 신의 딸이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진무 천황의 아버지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출산에 얽힌 얘기여서, 일본 사람들은 이곳에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고 믿는단다.



동굴 입구를 둘러싼 난간 아래에 널따란 바위가 연방 파도를 맞아가며 누워 있었다. 그 바위 위에 옴폭 홈이 나 있고 홈 주위로 새끼줄이 쳐져 있었는데, 그 줄 안으로 흙구슬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다. 100엔을 주고 흙구슬 5개를 샀다. 조건이 있었다.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는 오른손으로 던져야 했다. 5개를 던져 2개나 홈에 들어갔다. 왼손잡이라서 다른 남자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았다. 아무튼, 소원 두 개는 벌어놓은 셈이었다.



물결 모양 바위가 층층이 ‘도깨비 빨래판’



5 미야지키 동물원에서 코끼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일본인 가족 관광객.
아오시마(靑島)는 아주 작았다. 둘레가 1.5㎞밖에 안 됐다. 아오시마로 들어가기 위해 작은 다리를 건넜다. 섬을 둘러싸고 특이한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바 ‘도깨비 빨래판’으로 불리는 지형이었다. 파도 물결 모양의 바위들이 층층이 바다와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미야자키 남부 해안에서만 발견되는 특이 지형이라는데,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감각만큼은 인정했다.



아오시마는 미야자키는 물론이고 일본 전체에서 유명한 관광명소다. 일본 건국신화를 기록한 『일본서기』와 『고사기』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일본에는 신이 하도 많아서 헷갈리지만, 아오시마에도 일본 건국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우도신궁이 출산과 관련해 신통한 곳이라면, 아오시마는 승리를 기원하러 찾는 곳이었다.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이 해마다 미야자키로 동계훈련을 와서는 굳이 아오시마까지 들러 기도를 한다고 했다. 섬 안쪽에 신사가 숨어 있었는데, 신사 벽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과 선수들의 소원을 적은 에마(繪馬)가 걸려 있었다. 혹시나 해서 이승엽 선수 이름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오시마가 신의 섬이라면, 선멧세 니치난(サンメッセ日南)은 신의 언덕이었다. 태평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언덕에 칠레 이스터 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석상이 우뚝 서 있었다. 일종의 조각공원이라 할 수 있었는데, 칠레 정부에 로열티까지 내며 높이 5.5m, 무게 18t의 ‘짝퉁 모아이 석상’을 모셔놓은 일본인의 극성이 더 놀라웠다.



미야자키 내륙 깊숙한 국유림 지대에 있는 아야 현수교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곳이었다. 142m 높이에 매달려 있는 다리는 길이가 250m나 됐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다리를 건넜다. 다리 중간에 다다르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구멍 뚫린 바닥 사이로 까마득하게 강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야 했지만, 몸은 진즉 얼어붙은 상태였다. 지금도 어떻게 그 다리를 건넜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해안 따라 11㎞, 일본 최대 리조트 시가이아



미처 몰랐다. 일본에서 가장 큰 리조트가 규슈에, 그것도 미야자키에 있었다. 시가이아 리조트. 바다(Sea)와 대지(Gaia)를 합친 이름만큼 리조트는 정말 컸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리조트 단지는 길이가 11㎞나 됐다. 객실은 1500개가 넘었다. 리조트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에게 이 어마어마한 리조트가 어떻게 미야자키에 들어섰는지 물었더니, 이내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왔다. “거품경제의 흔적이죠.”



리조트 역사를 훑어보니 1990년대 중반 리조트가 세워졌다. 일본 경제가 한창 잘나가던 때였다. 일본이 세계 1위 강대국을 꿈꾸던 시절, 초대형 컨벤션센터와 화려한 온천을 갖춘 호화 리조트 하나 짓는 것쯤이 무슨 대수이겠나 싶었다.



리조트 안에는 없는 게 없었다. 리조트를 둘러싼 소나무 숲은 여느 소나무 군락지 부럽지 않은 규모였다. 온갖 종류의 레저 활동을 리조트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었고, 지금은 미야자키시에 운영권을 넘겨준 동물원도 리조트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다녀올 수 있었다. 특히 미야자키 동물원은 인상에 깊이 남았다. 100종이 넘는 동물 1200여 마리가 동물원에 살고 있었는데, 사람과 동물의 거리가 여느 동물원보다 가까웠다. 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동물을 손으로 만지거나 동물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었다.



무엇보다 온천이 훌륭했다. 그윽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물이 좋았다. 지하 1000m에서 길어 올린 해수온천이라고 했다. 물에서 소금기가 느껴졌다. 미끈거리는 감촉이 좋아서 아침이고 저녁이고 짬이 날 때마다 온천에 들어갔다. 일본에 있을 때만 해도 피부가 부드러웠는데, 지금은 도루묵이 됐다.



미야자키에서 나흘을 머물렀다. 여러 일정을 소화했지만, 허공에 매달린 다리를 건넌 일 말고는 고되거나 험한 건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번 여름 가족여행을 오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미야자키에서 머무르는 나흘 동안 한국인은, 리조트 직원 말고 마주친 적이 없었다.



●여행정보=아시아나항공이 수·금·일요일 주 3회 미야자키 직항 노선을 운행한다. 수요일과 금요일에 출발하면 2박3일 여정이 나오고, 일요일에 출발하면 3박4일 여정이 가능하다. 아시아나항공 일정에 따라 여행박사(www.tourbaksa.com)가 미야자키 가족여행 패키지 상품을 운영한다. 2박3일 일정은 51만6000원부터, 3박4일 일정은 59만6000원부터. 시가이아 리조트에서 숙박한다. 070-7017-2236.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