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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열 중 여덟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거나 더 나빠"

중앙일보 2013.06.28 00:00 경제 3면 지면보기
롯데마트는 27일 ‘낱개’로 판매하는 봉지라면과 캔맥주를 내놓았다. 캔맥주는 2010년 6월 이후 3년 만에, 라면은 2011년 8월 이후 2년 만에 낱개 판매되는 것이다. 낱개 가격도 묶음 상품의 개당 가격과 같게 책정했고 필요한 수량만큼 살 수 있어 장보기 비용 절감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회사 최춘석 상품본부장은 “(낱개 판매는) 가격 부담을 줄여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소개했다.


"먹구름 잔뜩 몰려오는데" … 싸늘한 기업 반응
경기 불안감에 소비자들 지갑 닫아
기업 83% 상반기 경영 목표 미달

 철강 전문그룹인 A사 간부는 최근의 철강업계 상황을 “공포에 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후 내수 부진과 글로벌 경기 침체, 한·중·일 3국의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 3중고를 겪고 있는 철강 시장에 대해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에서만 한 해 3억t가량의 공급 과잉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는 “이에 따라 내년에도 철강 경기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 의견”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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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3월의 2.3%에서 27일 2.7%로 올려 잡았지만 기업 반응은 미지근하다. 오히려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내수 침체, 미국의 출구전략 가시화, 중국 실적 부진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탓이다.



 기업들은 최근 경제 상황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악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7일 매출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하반기 경영환경 전망’을 조사했더니 10곳 중 8곳 가까이(76.9%)가 2008년 금융위기보다 심각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경영상 어려움을 내수 판매 부진(42%)과 채산성 악화(18.7%), 수출 애로(13.7%) 순으로 꼽았다. 하반기 경영에 영향을 끼칠 경제 변수로도 절반 가까이가 국내 경기 침체(43.8%)라고 답했다. 건국대 이장희(경영학) 교수는 “경기 둔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가계가 지갑을 닫고 있다”며 “특히 최근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소비심리까지 무너진 듯하다”고 진단했다.



 경영 실적은 미끄럼을 타고 있다. 전경련이 27일 ‘하반기 세계 경제 리스크 점검’ 세미나에 참석한 기업 60곳을 조사했더니 83.3%가 상반기 경영 실적이 목표에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대형 유통업체 62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45.2%가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대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내수 업종이 급속도로 활력을 잃어 가고 있다. 의류업체 C사는 올 상반기 자사 브랜드를 대형마트에서 철수시켰다. 2011년 입점 이래 17개 점포로 매장을 늘려왔지만 대형마트 영업 규제와 불황이 겹치면서 매출이 10% 안팎으로 줄었다. 2010년 6월 대형마트에 진출한 D의류업체도 최근 브랜드 수익이 악화돼 입점 매장 수를 절반으로 줄였고 결국은 마트 쪽에 ‘자진 철수’를 요청했다.



 세계 경제가 시름하면서 해외 시장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장규 신흥지역연구센터장은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던 중국과 인도·브라질 등 신흥 경제국의 성장률 둔화에 금융시장 불안이 더해지면서 하반기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등 사회·경제 이슈도 걸림돌이다. 기업들은 경제민주화 입법(29.8%), 강화되는 세무조사(28.6%), 갑을 관계 등 약자에 대한 횡포 논란(13.8%) 등을 경영에 부담을 주는 비경제 변수로 꼽았다. 경제민주화 입법 중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21.2%), 중소기업 적합업종 강화(10.6%), 유해화학물질 과징금(10.0%) 등은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하반기 경영 기조는 ‘납작 엎드리기’로 바뀌고 있다. 경영 화두가 생존이 됐다는 얘기다. 기업 10곳 중 6곳 이상(63.5%)은 경영 내실화나 리스크 관리 등 보수적 경영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 경영이 움츠러들면 계획했던 투자·고용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600대 기업 가운데 4분의 1가량(25.5%)은 “연초 계획보다 투자 집행이 축소될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600대 기업은 140조77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집행액은 113조9000억원(80.9%)에 그쳤다. 올해도 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



 명지대 조동근(경제학) 교수는 “2008년 위기가 우리로서는 손쓰기 어려운 외부 변수였다면 이번엔 스스로 만든 불확실성을 키운 ‘자작극’과 다름없다”며 “과감한 규제 완화와 경기 부양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재·구희령·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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