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대도시 돌며 프랑스·미국 와인과 ‘계급장 떼고’ 한판

중앙선데이 2013.06.22 01:34 328호 21면 지면보기
세계 와인사를 장식한 사건 중에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란 게 있다. 1976년 5월 26일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를 지칭한다. 프랑스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비교하는 이 자리에서 예상을 깨고 미국산이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우연히 참석했던 타임지 기자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미국 와인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칠레 와인 ‘에라주리즈’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칠레의 와인 브랜드 에라주리즈(Errazuriz)의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 회장이 자신의 와인 홍보를 위해 떠올린 것도 이 방법이었다. 그리고 기대는 거의 틀리지 않았다.

2004년 1월 독일 베를린 리츠칼튼 호텔에서 개최한 ‘베를린 테이스팅’에서 에라주리즈의 ‘비네도 채드윅(Vinedo Chadwick) 2000’이 1위를 차지했다. 그 뒤 도쿄·토론토·코펜하겐·베이징·모스크바 등 15곳에서 개최한 행사에서도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전 세계 대도시를 돌며 ‘계급장 뗀 싸움’을 걸고 있는 그가 서울을 찾았다. 2008년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위해서다. 당시 에라주리즈의 ‘돈 막시미아노 파운더스 리저브(Don Maximiano Founders Reserve) 2004’는 3위를 했다.

7일 오전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국내 호텔 소믈리에 등 와인 전문가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 12개 와인을 대상으로 시음회가 열렸다. 1위는 에라주리즈의 ‘돈 막시미아노(Don Maximiano) 2009’였다.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칠레 대통령 공식 오찬용으로 쓰였던 와인이다. 역시 에라주리즈의 ‘세냐(Sena) 1997’이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프랑스의 ‘샤토 마고(Château Margaux) 2003’이었다.

“물론 항상 1등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맛과 향으로만 평가해 보자는 저의 의도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한국 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매우 기쁩니다.”

그는 산티아고에서 돈 막시미아노에 의해 1870년 시작된 에라주리즈의 5대 경영인이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지만 부친의 권유로 83년부터 가업을 이었다. 그의 목표는 “칠레에서도 최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30년간의 그의 노력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보르도와 나파 밸리의 유명 양조가를 찾아다니며 양국의 좋은 점을 연구했습니다. 미국 와인을 부흥시킨 로버트 몬다비와 조인트벤처도 만들었죠. 그 첫 결실이 바로 ‘세냐 1995’입니다.”

아버지에게 헌정한 와인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칠레 국가대표 폴로팀 주장까지 지낸 그의 아버지는 집에 폴로 경기장을 갖춰 놓았는데, 이 경기장을 93년 와이너리로 바꿨다. 당초 포도밭이었던 이곳의 토양을 조사해 보니 보르도 최고 와이너리의 토양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

그는 칠레 와인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실험했다. ‘카이(KAI)’는 칠레에서만 나는 품종 카르메네르(Carmenere)로 만든 와인이다. ‘라 쿰브레(La Cumbre)’는 칠레 최초로 시라(Syrah) 품종으로 만든 와인인데 ANA항공 1등석에 납품된다.

2005년 영국의 와인전문지 ‘디캔터’가 뽑은 세계 와인업계 영향력 있는 인물 50에 선정된 그는 “칠레 대표 와인을 고르는 ‘First Chile Recognition Awards 2010’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 품질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는 “성공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떤 하나의 노력으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모두 맡은 일을 잘해야 하고 그것이 잘 연결되어야 한다. 만드는 사람은 잘 만들어야 하고, 파는 사람도 잘 팔아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칠레 와인과 한국 음식의 궁합을 물었다. “블랙베리·검은 후추·생강·코코아의 향과 맛이 감도는 '카이'는 한국의 대표음식 불고기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한국 음식은 대체로 양념이 강한데 그럴 경우 힘이 있는 '돈 막시미아노'를 권하고 싶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