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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길에 옹기종기 다른 듯 닮은 귀농·귀촌 20가구

중앙선데이 2013.06.22 01:42 328호 22면 지면보기
1 16호집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도시생활에 지쳐갈 즈음이면 흙냄새 나는 고향이 물씬 그리워진다. 이도 저도 안 풀리는 인생사가 공기 나쁘고 인심 사나운 도시환경 탓이라 여겨지면 더욱 귀농·귀촌에 솔깃해진다. 1600여 년 전 중국 땅에서 도연명(陶淵明) 선생도 낮은 관직에 매달려 심위형역(心爲形役·마음고생)하다가 때려치우고 낙향하면서 저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겼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구름은 무심하게 산 위에서 피어오르고 / 날다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오네).”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22> 남원 ‘지리산 작은마을’

가족들과 자기 집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과는 달리 낯선 동네에서 새 출발을 하려는 귀농·귀촌인들에게는 집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선택이다.

‘지리산 작은마을’은 통일신라시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 실상사가 있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다. 지리산 북쪽에 경상남도 함양군과 맞닿아 있는 이곳 산내면은 예전부터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을 남향으로 마주하고 있는 길지로서 유명하다. 실상사 도법스님이 앞장서온 귀농학교는 IMF 사태로 온 국민이 어려움에 처했던 1998년 시작됐다. 귀농학교를 마친 이들이 주변 마을에 정착하면서 점차 살 곳과 살 집이 부족하던 차에 2007년 귀농학교 부지 일부에다 농림부와 지자체가 지원해 ‘입주자 주도형’ 전원마을 사업이 출범했다. 입주자 선정 1년, 선정된 입주자들의 준비·교육·계획 및 사업승인 받는 데 1년, 마을 기반공사 및 주택설계 1년, 주택공사 및 입주 완료에 1년가량씩 소요돼 2011년 7월 뒷정리까지 끝내고 ‘지리산 작은마을’이 완성됐다.

2 13호집과 14호 집. 지리산 작은마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작은 내에서 보이는 삼정산이다. 3 19호집 2층 테라스에서 보이는 산내면. 왼쪽의 산이 지리산 자락의 북쪽 끝 산인 삼정산이다.
산내면 큰길에서 백일리 길로 들어서 학교에 이르는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조금은 넉넉하게 펼쳐진 양지바른 마을이 나타난다. 입구에 있는 마을회관과 친환경 처리시설 사이 작은 개천길 따라 좌우로 한두 채씩 총 20가구가 있다. 각자 200여 평의 남향 터에 계단식으로 자리 잡고 있고 끝자락은 나무로 둘러싸여 편안한 풍경이 이어진다. 서룡산(해발 1073m)을 뒤로하고 지리산 줄기의 북쪽 끝 산인 삼정산(해발 1225m)을 바라보면 왼편으로 천왕봉의 도도한 자태가 드러난다.

이곳의 집들은 동시에 지어졌는데도 똑같은 형태 없이 제각각이다. 입주자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심사숙고한 끝에 ‘자유설계’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CM(Construction Management)으로 계약해 건축과정에서 여러 전문가와 폭넓은 소통을 이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같이 공부해 가면서 정한 ‘건축 가이드라인’ -예산에 맞는 35평 규모의 미니 2층집, 서양식 목구조로 하되 한옥의 장점 요소를 접목하기, 친환경 자재의 사용 및 자연 발효식 생태화장실 설치 등-은 각기 다른 형태 속에서도 공통으로 지켜진 룰이다. 시공 또한 건설회사로서는 꺼리는 ‘직영’ 방식으로 계약해 주민 스스로가 직접 참여함으로써 인건비, 간접 노무비 등의 절약은 물론 집 안 곳곳의 공사 상태를 파악하게 되어 추후 집을 손볼 때도 자력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각 가정의 구성과 라이프스타일에다 가족 모두의 꿈을 더해 이루어진 다양한 자유설계 안들은 이곳 ‘작은마을’의 한 집 한 집을 방문하는 즐거움을 준다. 실내에 토방처럼 맨흙바닥을 다져 생태적인 환경을 조성한 집, 옛 방식대로 구들을 깔고 장작을 때면서 음식 조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한 집 등 각자의 개성이 물씬 배어나고 있다. 그런 만큼 주인들의 육성도 구수하다.

“고향에서의 어릴 때 추억이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1호집 조광제), “조금은 불편해도 덜 먹고, 덜 쓰고 간소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불편한 삶 속에 참 내가 있음을 발견하고 싶습니다.”(3호집 조의제), “산을 그리워하고 살다가 그 품에 살 수 있는 때가 온 것”(6호집 고광균), “어울려 가면서 살맛 나는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9호집 윤여정), “있어야 할 곳, 자연과 내가 하나이고 너와 내가 하나인 본연의 삶을 찾고 싶다.”(13호집 윤성호)

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고향을 세우는 일에 다 같이 적극적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귀농 가구 20만 신규 수요 예상
귀농·귀촌 인구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농촌진흥청 통계에 따르면 귀농의 경우 2002년 769가구에 불과했는데 2010년 3000여 가구에서 2011년부터는 급격히 늘어 1만 가구를 상회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에 따른 선택이자 도시화율이 90% 가까이 이를 때 생기는 전원 회귀현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선진국 사례에 따르면 80%대에서 안정되는 경향이므로 우리나라의 경우 향후 10~20년 안에 대략 20만 가구의 신규 수요가 예상된다. 이런 추세와 발맞추어 지난 4월 말에는 ‘농어촌 마을 주거환경개선 및 리모델링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농어촌 주거의 20%에 해당하는 40만 호 정도가 심각하게 노후화돼 주거복지 차원에서 개선해 주는 사업이 중앙정부 주도하에 시작될 것이다. ‘제2의 새마을운동’까지 예상되는 시점이다.

‘도시를 버려야 전원을 얻는다’는 말은 귀농·귀촌인들에게 적절한 문구다. 도시 생활에 대한 미련에 더해 낭만적인 생각만으로는 전원생활이 지속되기 힘들다. 정부의 지원사업을 도맡고 있는 박정승 귀농·귀촌종합센터장은 “인생을 거는 선택인 만큼 벤처창업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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