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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트랜스젠더 180명, 한국 와서 목소리 수술

중앙선데이 2013.06.22 23:52 328호 4면 지면보기
서울 안세병원에서 곽상준 원장(왼쪽)이 통역의 도움을 받아 몽골인 환자(오른쪽)에게 물리치료를 해주고 있다. 이 환자는 지난 10일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최정동 기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중동국가에서 온 환자들을 많이 치료하는 우리들병원에선 환자가 여성이면 의사가 이렇게 서약하고 기도를 함께한 뒤 진료에 임한다. 또 여성환자를 마취할 땐 반드시 여성의사가 한다. 병실마다 메카 방향으로 양탄자를 깔아 환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했고 식사는 이태원 중동음식점에서 할랄푸드를 공수해 온다. 아랍어 통역도 서너 명을 확보해뒀다. 고가의 특실 서비스를 거리낌없이 예약하는 중동 환자들을 유치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공항 픽업부터 숙소·관광안내도 다 해준다. 병원 관계자는 “중동환자는 상류층이 많아 식솔들을 여럿 데리고 온다. 간호사를 불러 음료수병을 따달라거나 아기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등 하인처럼 부리기도 한다. 반면 일본 환자들은 ‘일본에선 간호사가 머리를 감겨준다’며 우리 간호사에게도 같은 서비스를 요구한다. 러시아 환자는 ‘우리나라 의사는 30분 넘게 상담을 해주는데 왜 한국 의사는 5분밖에 안 만나주느냐’고 항의한다”고 말했다.

‘웰빙 외교’ 현장에선 지금

 #요즘 서울엔 ‘여성 목소리’를 얻으려는 외국인 트랜스젠더들의 발걸음이 잦다. 슬로베니아인 M(24)은 2011년 성전환수술로 트랜스젠더가 됐지만 목소리만은 남성 티가 남아 불만이 컸다. 그러다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내시경을 이용해 피부를 째지 않고 성대를 여성 모양으로 바꿔주는 병원이 한국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M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의 예송이비인후과를 찾아 수술을 받았다. 그는 “전신마취 한 번으로 수술이 끝났고 통증·흉터 없이 자연스러운 여성 목소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김형태 원장은 “개를 이용한 내시경 실험을 거쳐 성대 모양을 여성의 것으로 바꾸는 수술법을 개발했다”며 “해외학계에 최초 케이스로 발표됐고 지금까지 23개국에서 온 180여 명을 치료했다. 가격이 미국의 1.5배지만 안전성이 입증돼 꾸준히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의료수출을 하려면 독자적인 치료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한 달 중 절반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살다시피 한다. 병상 수가 1000개로 이 나라 최대 병원인 ‘킹파드 왕립병원’을 비롯해 거점병원들에 한국 의료시스템을 쌍둥이처럼 이식하는 빅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다. 한국 의료정보 시스템 도입, 사우디 의료진의 한국 연수에다 사우디 정부가 외국에 보내는 환자의 한국 의료기관 송출 등이 골자다. 현지 수주액이 병원당 수천억원에서 1조원에 달한다. 이미 정부는 2011년과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아부다비 보건청과 ‘환자송출협약’을 맺었다. 두바이와 아부다비가 자국 환자를 최대 3000명까지 외국 병원에서 치료받게 하는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8개 병원이 지난해 259명의 환자를 받아 4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프로그램이 사우디까지 확대되면 매출은 그 몇 배로 뛴다. 보건복지부의 정호원 보건산업정책과장은 “한국 의료서비스는 가격이 유럽의 30% 선인 데다 IT기술을 활용한 화상진료 등으로 차별화돼 수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IT 활용한 화상진료 등으로 차별화를
외국인 환자는 한국 의료계의 블루 오션으로 떠올랐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 수는 2009년 6만201명에서 2011년 12만2297명, 지난해 15만5672명으로 크게 늘었다. 다국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한국의 의료관광 품질 경쟁력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보다도 더 높았다. 여기에 쇼핑과 관광이 더해진 ‘의료관광’도 붐을 이루고 있다. 알렉세이 예브게니(31·러시아)는 척추뼈가 밀려 디스크가 벌어지는 척추분리증 때문에 지난 3월 서울 청담동 우리들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달에도 12일간 휴가를 내고 한국을 다시 찾았다. 검진도 받고 에버랜드와 부산 등을 찾아 관광도 하기 위해서였다. 예브게니는 “한국이 너무 좋아 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관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중동·중앙아시아 등에 병원서비스와 건강보험제도를 수출해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키우려 한다. 이를 위해 ‘웰빙외교(Well-being Diplomacy)’를 우리 외교의 핵심 테마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2010년 4조6000억 달러에서 2015년 7조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보건시장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웰빙외교가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불법 브로커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는 2009년 외국에서 외국인 환자를 모집해 국내로 들여오는 ‘외국인 환자 유치 업체’를 양성화해 현재 800개가 넘는 업체가 있다. 하지만 실상은 무등록 불법 브로커가 판친다. 등록 유치 업체는 의료수가의 10~15%(대형병원), 20~30%(의원)를 수수료로 받는다. 하지만 불법 브로커들은 외국인 환자들에게 국내 의료수가의 5배에서 20배까지 올려 받고, 수수료를 50% 넘게 챙긴다. 성형외과가 주 타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불법 브로커는 수수료를 벌고, 병원은 치료비를 현금으로 받은 뒤 탈세를 저지르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중국 환자를 쌍꺼풀 수술해주고 100만원을 받았는데 불법 브로커가 ‘환자에게 수술비가 500만원이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알고 보니 그 브로커는 환자에게 1000만원을 받았더라”고 말했다.

100만원 수술에 1000만원 바가지 쓰기도
각종 규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종합병원이 유치할 수 있는 외국인 환자는 전체 병상의 5%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외국인 환자가 국내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생긴다. 태국·싱가포르 등 경쟁국은 의료관광객에 한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외국인 의사의 활동도 허용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도 문제다.

 해외 환자들은 보통 가족 2~5명을 동반한다. 이들을 공항에서부터 맞아들여 병원·호텔에 데려가고, 수술이 끝난 뒤 관광·쇼핑과 연결시키는 프로세스가 체계적이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러시아인들은 동대문시장 등에서 쇼핑을 많이 한다. 의복과 전자체온계 등이 인기 품목이다. 중동인들은 미용실이나 피부 클리닉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들병원 관계자는 “시내 도로 표지판에 영어 안내가 부족하고 택시가 외국인에게 씌우는 바가지요금도 환자들의 불평을 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비자 발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의료비자는 환자가 한 달 이상 장기 체류할 경우만 병원의 초청장을 통해 발급된다. 따라서 체류기간이 1~2주에 불과한 성형외과 등의 환자들에겐 무용지물이다.

 의료 수출도 지금처럼 복지부 관리들이 뛰고 현지 공관이 돕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의 한 전문가는 “정부가 우선 타깃으로 삼고 있는 사우디는 미국·독일·일본 등 의료 선진국들이 군침을 흘리는 큰 시장”이라며 “청와대를 필두로 정부 전반이 지속적으로 의지를 갖고 관여해야만 성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관광’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영리병원 논쟁으로 번지는 현상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의료관광객 숙박시설인 ‘메디텔(meditel)’ 설립을 장려하는 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달 입법예고하면서다. 보건의료단체인연합은 “메디텔은 결국 내국인 환자를 받아 테라피 등 유사의료행위를 하는 상업적 시설이 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메디텔 설립이 결국 영리병원 합법화를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해외환자 유치 사업과 영리병원 합법화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란 입장이다.

 현재 국내엔 영리병원 설립이 금지돼 있다. 의료계는 의료수출 확대를 위해 영리병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의료보험 체계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영리병원 설립은 절대 반대”란 입장이고 여당도 “오해를 사지 않겠다”며 손을 놓고 있다. 다만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일반 법인도 세울 수 있고 ^외국인의 의료 활동을 허용하며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투자 개방형 국제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법안이 지난해 12월 통과됐다. 지난달 중국계인 CSC가 제주도 내에 첫 영리병원 설립을 신청한 상태다. 김필수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단 경제자유구역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을 시범적으로 운영해보면서 영리병원의 허용여부를 판단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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