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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배기 업고 경찰서 찾아온 엄마 "아이가 학대당했다" …

중앙일보 2013.06.22 00:55 종합 14면 지면보기

서울 송파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이 120일째 ‘어린이집 비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 중심에 이용우 지능범죄수사계장(사진 오른쪽)과 민종기 1팀장(왼쪽)이 있다. 지난 20~30년 동안 강력계 형사로 잔뼈가 굵은 두 사람은 돌쟁이 아이 엄마 K씨(32)의 어린이집 고소 사건에 주목했다. 그리고 서울 강남권 등의 어린이집 700곳에서 300억원대 횡령과 일부 아동학대가 저질러진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공동의 적이 된 내막을 추적했다.



지난해 11월 13일 오후 2시쯤 서울 송파경찰서 3층 지능범죄수사팀 사무실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찾아왔다. 여자의 등에는 잠든 아이가 업혀 있었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우리 아이를 학대한 어린이집 원장을 고소하러 왔다”고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에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었다. 학대를 당한 아이는 등에 업힌 한모(1)군. 걸음마를 뗀 지 얼마 안 된 아이였다. 한군이 원장 P씨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과 학대를 당했다는 게 아이 엄마인 K씨(32)의 주장이었다.

[현장 속으로] 어린이집 700곳 비리 파헤친 송파경찰서 지능팀
캐도캐도 끝없는 비리 "강력 사건 못지않은 심각한 범죄"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에는 잘 울지 않는 아이였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고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어요. 처음에는 너무 어려서 그러려니 했는데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엄마의 직감이란 게 있잖아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직접 돌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어린이집 보육교사 몇 분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원장이 상습적으로 아이를 학대한 사실을 알게 됐어요. 얘기를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데….”



 K씨가 언성을 높이자 아이가 잠에서 깨 울기 시작했다. 이용우 송파경찰서 지능계장이 아이를 달래고 어르는 동안 K씨의 얘기는 계속됐다. 보육교사들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은 이랬다.



“원장 P씨가 아이가 운다는 이유로 아이를 방 안에 혼자 두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방치했다. 그것도 모자라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듯 세게 문질렀다. 우유를 강제로 먹이면서 ‘빨리 처먹어 ××야’라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일은 몇 차례 반복됐다.”



지난 4개월 동안 주말도 반납하고 어린이집 비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 송파경찰서 지능범죄수사1팀 팀원들이 주말인 지난 15일 오랜만에 경찰서 인근 어린이 놀이터에 나와 휴식 시간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박준철·민종기(팀장)·이용우(계장)·김영준·김용현·김원충·이주환 수사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원장 "명예훼손 고소” 오히려 으름장 놔



 K씨는 원장에게 당장 항의를 했다. 하지만 원장은 강하게 부인하며 오히려 K씨에게 “명예훼손, 업무방해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K씨는 고소장 작성을 마친 후 “폐쇄회로TV(CCTV)가 없어 증거를 잡기가 어려울 텐데 수사가 잘되겠느냐”며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무고로 처벌받는 게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다 돌아갔다. 이용우 계장은 사건을 지능1팀 민종기 팀장에게 맡겼다. 하지만 수사팀 회의에서는 부정적인 얘기가 많았다.



 “CCTV 화면도 없고, 아이 몸에 상처가 남아있는 것도 아닌데 학대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렵게 기소한다고 해도 재판에서 무죄가 날 가능성도 있다”는 등의 우려였다. 그렇다고 말 못하는 아이와 눈물로 하소연하는 엄마의 심정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원장의 학대 행위를 목격한 보육교사들의 증언 확보가 급선무였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시작했고 며칠 후 진술을 할 수 있는 보육교사 세 명을 찾아내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었다. 이들은 아동학대를 항의하다 원장에게 미움을 사 어린이집을 그만둔 상태였다. 교사들은 원장이 평소 한군을 학대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원장이 또 다른 영아 2명에게도 비슷한 학대를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수사 과정에선 새로운 혐의가 드러났다. 원장이 자신의 딸을 보육교사로 허위 등록한 뒤 인건비를 국고에서 부당하게 지원받아 왔다는 것이다. 교사들에게 지급된 각종 수당 등 인건비와 환경개선비를 원장이 자신의 개인 계좌로 되돌려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원장은 교사들의 구체적인 진술과 계좌추적 등 물증이 나오자 결국 잘못을 인정했다. 수사 3개월 만인 지난 2월 중순 원장 P씨는 아동학대와 국고보조금 편취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어린이집은 폐원됐다.



 “어린이집 한 곳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대로 한번 파헤쳐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이용우 계장)





 지능1팀은 다른 사건을 맡지 않고 당분간 어린이집 문제에만 매달리기로 했다. 서울 강남권 어린이집 700개소에서 국고보조금 등 300억원대의 공금횡령 사건으로 확대된 송파경찰서의 어린이집 수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때부터 수사팀은 전국 어린이집 원장들의 공적(公敵)이 되기 시작했다.



 막상 어디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수사한답시고 아무 어린이집이나 마구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었다. 비리 제보가 구체적으로 들어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상시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는 구청을 설득하기로 했다.



 2월 25일 수사팀은 송파구청에 어린이집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다음 날 구청 측 관계자가 지능1팀 사무실을 방문해 1차 협의를 했다. 처음에 구청 측은 그다지 내켜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수사팀의 끈질긴 설득에 고민을 거듭하던 구청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3월 8일 경찰과 구청의 합동감사 태스크포스(TF)팀이 구성됐다.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돼지고기 한 근으로 40명 반찬 만들어



 예산 심의권을 쥔 송파구 의회 일부 의원들이 수사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비리 집단으로 몰고 가는 이유를 대라. 경찰과 합동감사를 하는 이유가 뭐냐. 합동감사의 법적 근거를 대라. 구청장을 항의 방문하고 담당 국장·과장을 의회에 소환해 따져 묻겠다. 예산 심의 때 두고 보자”는 험악한 얘기가 들려왔다.



 일제점검을 앞둔 일부 어린이집에서도 “당장 문을 닫을 테니 구청에서 아이들을 키우든지 알아서 하라”며 반발했다. 수사팀 주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무슨 대단한 비리가 있다고 어린이집을 대대적으로 수사하느냐. 그렇게 할 사건이 없느냐”는 얘기가 들렸다.



 “며칠 동안은 잠이 오지 않았어요. 구청까지 끌어들였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원장들과 관련 단체들의 집단 반발도 예상됐고요. 솔직히 어린이집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르는 것도 많았어요.”(민종기 팀장)



 수사팀원들은 영유아보육법을 비롯한 각종 어린이집 관련 지침·규정 등을 입시 공부하듯 줄을 치며 들여다봤다. 3월 중순이 지나면서 어린이집·거래업체 등에 대한 계좌추적도 시작됐다. 이즈음 내부 고발자인 어린이집 보육교사들로부터 제보가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교사들의 증언은 수사의 결정적 단서가 됐다. 어린이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받았다.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후인 야간에만 영장 집행을 했다.



 “어린이집 몇십 군데 정도가 걸려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거래업체 30여 곳의 계좌를 살펴보니 불법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이 가는 어린이집이 무더기로 나왔어요. 업체 한 군데 계좌만 봤는데도 부당거래를 한 어린이집이 적게는 수십 곳에서 많게는 150곳까지 나왔으니까요. 불법으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우리도 놀랐습니다.”(이용우 계장)



 3월 말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불량급식 제공, 국고보조금·특별활동비 횡령 등 갖가지 유형의 비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사 대상도 송파구뿐 아니라 강남·관악·서초·강동구를 비롯해 성남·의정부 소재 어린이집으로 확대됐다. 수사 과정에서 송파구의회 현직 의원 이모씨가 어린이집 5개를 운영하며 지난 3년 동안 수억원을 빼돌린 단서도 포착했다.



 수사 초기에 일부 구의원이 합동점검과 관련해 압박을 가한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해당 의원은 과거 6년 동안 관내 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에 나온 엄마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중에는 한 엄마가 “아이를 부실 어린이집에 방치한 내 탓”이라며 울음을 터뜨렸고 수사팀 사무실이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보육교사들은 “시장 바닥에 떨어진 배추 시래기를 대량으로 구입해 얼린 뒤 국거리로 사용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생닭을 껍질만 벗겨 요리하도록 했다. 1L짜리 우유 한두 팩으로 80명의 아이들에게 나눠 먹였다. 500㏄짜리 떠먹는 요구르트 한두 개로 30여 명의 아이들이 나눠 먹고 돼지고기 한 근(600g)으로 30~40명분 반찬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털어 놓았다.



“원장들이 왜 예수님의 기적을 흉내 내나?”



 수사팀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이 행한 오병이어(五餠二魚·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다)의 기적을 원장들이 흉내 내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서울 한복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라며 혀를 찼다.



 5월 27일 송파서 수사팀은 700곳의 어린이집에서 국고보조금·특별활동비 등 공금 300억원을 횡령했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사 입건된 사람은 어린이집 원장 55명을 포함해 86명이었다. 수사 인력 등 물리적 여건을 감안해 지난 3년 동안만 들여다본 결과라 기간을 더 확대하면 횡령액수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이 안 된다고 했다. 수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수사 결과가 신문·방송을 통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 등을 통해 이례적으로 세 차례나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각 지자체는 전국 어린이집에 대한 특별 점검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경찰청에서도 각 지방청에 어린이집 비리에 대한 특별 단속을 지시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더 격하게 터져 나왔다. 일부에서는 자신들이 부담한 특별활동비를 빼돌린 원장들을 상대로 특활비 반환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수사팀에 탄원서를 제출한 엄마들이 100명을 넘었다. 이들은 비리 어린이집과 원장들의 명단을 즉각 공개하고 구속 수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 각 경찰서에서도 송파서의 어린이집 수사에 대한 벤치마킹을 위해 ‘한배단(한 수 배우러 오는 단체)’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마약 사건 등 강력통으로만 20년 가까이 형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내가 어린이집 수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지요. 막상 부닥쳐 보니 강력사건 못지않은 심각하고 중요한 사건이었어요.”(민종기 팀장)



 “1000곳을 조사하면 전부 다 걸릴 것”이라는 한 원장의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는 민 팀장은 “이번 수사가 단순히 형사처벌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계장과 민 팀장은 얼마 전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 초청으로 어린이집 토론회에 다녀왔다. 이들은 토론회에서 “범법자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비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보육정책과 시스템을 보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용우 계장도 경찰 수사만으론 어린이집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몇 개월 어린이집 문제에 파묻혀 살다 보니 전문가가 다 된 느낌입니다. 백서라도 만들어 여러 곳에 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요. 수사는 경찰이 하지만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몫입니다. 수사가 종료되는 시점은 바로 그때가 아닐까요.”



탐사팀 =고성표·김혜미 기자 deep@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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