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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들, 왜 내부고발자가 됐나

중앙일보 2013.06.22 00:50 종합 15면 지면보기
지난달 30일 한 시민단체가 “대구의 어린이집 원장들이 비리를 고발한 보육교사들의 재취업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어린이집의 아동학대나 불량급식은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문제가 있어도 오랜 기간 묻혀 지나간다. 피해 당사자가 의사 표현을 하기 어려운 영·유아들이라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다. 이번 서울 송파경찰서의 수사도 보육교사들의 적극적인 증언이 없었다면 여러 가지 비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혀버렸을지 모른다.


"증빙서류 조작까지 … 그냥 볼 수 없어 당장 살길 막막해도 고발 후회 안 해"

 본지가 지난 5월 초 보도한 ‘대한민국 어린이집 심층보고서’ 시리즈와 이어지는 연중기획 보도인 ‘안심하고 애 키울 수 있는 나라’를 준비하면서 취재팀은 수십 명의 보육교사를 만났다. 이 중에는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에 아동학대나 어린이집 비리를 알렸다는 이유로 쫓겨나 아직도 재취업을 못 한 이들도 있었다. 일부 어린이집 원장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교사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면서도 왜 이들은 어린이집 비리를 고발했을까.



 서울 송파구 A어린이집 교사 박모(32)씨의 말이다.



 “급여가 박하고 노동강도가 세다는 것은 다 알고 들어옵니다. 어느 정도 견딜 각오를 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에는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했고요. 원장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당장 잘라버린다는 얘기도 숱하게 들었습니다. 아무리 을의 입장이라 해도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이라는 게 있어요. 원장으로부터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부당한 지시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어느 순간 폭발할 수밖에 없는 거죠.”



 강동구 B어린이집 교사 최모(29)씨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도저히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했다.



 “아무리 직업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른들도 안 먹는 불량 음식재료로 만든 급식을 제공하는데 그냥 모른 체할 수만은 없더라고요. 게다가 원장 지시로 거래업체와의 증빙 서류를 조작하는 일까지 하다 보니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고요.” 최씨는 “살아갈 일이 막막하긴 해도 불법을 고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양천구 C어린이집 교사 김모(34)씨는 생각이 달랐다.



“2년 전쯤 내가 아는 한 원장이 어린이집 불법 운영으로 구청과 경찰 수사를 받고 문제가 됐었는데 지난해 말께 다른 이름으로 어린이집을 또 열었더라고요.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많이 들었어요. 원래 다 그런 것 아닌가요. 어차피 잠깐 시끄러웠다가 금세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질 텐데 뭐하러 굳이 나서서 일을 만들겠어요. 결국엔 내부고발자인 교사만 피해 보게 돼 있는 것 아닌가요.”



 비리를 용기 있게 세상에 알렸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들을 보호할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못한 듯하다. 최근에야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당국과 정치권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교사 개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더 커 보인다. 취재팀이 만난 보육교사들은 하나같이 “어렵게 공론화된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고, 교사의 권익도 보호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성표 탐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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