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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영원한 재야인사' 장기표

중앙일보 2013.06.22 00:48 종합 16면 지면보기
장기표씨는 본인의 인생을 “실패와 고난의 연속”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선거에 나가도, 정당을 만들어도 번번이 실패했다”면서도 “모든 이가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꿈 하나로 오늘까지 왔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는 전태일을 살아서는 알지도, 만나지도 못했다. 1970년 11월 중순, 노동자 전태일이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했을 때 시신이 안치된 성모병원으로 찾아가 어머니(이소선 여사)를 만났다. 당시 이 여사는 “우리 태일이가 그토록 대학생 친구 갖기를 바랐는데 죽고 나서야 나타나느냐”라면서 서울대 법대 복학생 신분이던 그를 나무랐다. 이후 전태일의 장례식은 서울대 법대학생장으로 치러졌고 전태일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그 복학생이 수배 중이던 장기표(68·현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였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전태일재단이사장이 그다. 이 여사는 “기표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는 첫 사람이자 나에게는 영원한 스승이었다”고 기억했다(‘내가 겪은 장기표’ 중에서).

나는 보수세력보다 훨씬 더 반북이다



 이소선 여사에게뿐 아니라 당시 국내 학생운동·노동운동계 인사들 사이에서 장기표라는 이름 석 자의 상징성은 컸다. 그는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국내 사회변혁운동의 방향을 끊임없이 제시해 왔다. 스스로 ‘운동권 선언문 작성 전문가’라고 칭한다. 현대사의 굵직한 현장이나 배후엔 그가 있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규탄 및 유신독재 반대시위, 긴급조치 9호 위반, 청계피복노조사건, 5·3인천대회 배후조종 혐의 등으로 복역한 햇수만 9년이다. 수배돼 도망 다닌 햇수는 12~13년.



 살아온 길만 놓고 보면 ‘친북좌파’가 돼 있어야 할 법한데 정반대다. 요즘 북한 정권과 지도자 김정은을 정면으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체제유지를 위해 핵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북한 인민이 반기를 들게 도와야 한다” “중국이 북한 정권을 포기하도록 유도해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마치 ‘지식인 반북전사’가 된 듯하다. 진보 진영에 대한 독설도 거침없다.



 장기표가 변절(?)한 걸까? 지난 17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M&B빌딩에서 만난 장 원장은 단호히 부인했다. 3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내내 그는 “내가 한때의 동지들과 달리 대중적으로 성공한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는 건 역설적으로 내가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는 의미”라고 했다. “진보 지식인의 초심을 지켜왔다”는 자긍심이 넘쳤다.  



 - 최근 북한 핵무기와 북한 체제에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보통의 경우 ‘실험’은 어떤 사실을 검증하는 절차를 의미하지만 핵무기의 경우 실험은 핵무기의 보유를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도 플루토늄 핵무기 6~7기, 농축 우라늄 핵무기 3~6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균형은 원천적으로 깨졌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들은 남한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능가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군을 현대화해도 핵무기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깨졌는데도 이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게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정부 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대화를 통해 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 생각은 다르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개혁·개방을 원치 않아서다. 개혁·개방을 하면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들의 생활이 나아지겠지만 자유화·민주화의 물결이 흘러넘친다. 정권유지가 어렵다. 따라서 개혁·개방을 하기 싫은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 착각하면 안 된다. 북한 핵무기로 인한 피해는 남한이 가장 크다. 핵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 돼야 한다. 그런데 미국과 북한의 문제로 방치하고 있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북·미 간의 문제로 만들어 가고 있다. 남북한 간에 비핵화에 합의한 전례가 있다. 그런 합의를 다시 끌어내야 한다. 궁극적 해결책은 민족통일이다. 우선 북한 인민들이 북한 정권의 실체를 알도록 도와야 한다.”



 -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모두 중단시킨 속셈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개성공단은 연간 8000만 달러 소득에 5만3000명 고용 효과가 있다. 25만 명의 개성 시민이 먹고 산다. 북한이 포기 못하고 곧 열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현재 임금 110달러를 150~200달러로 올려달라고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나는 개성공단은 열리지 않을 거라고 본다. 우리 기업이 북한 근로자에게 나눠준 초코파이가 선물로 북한 사회에서 유통되면서 남한에 대한 동경심이 커졌다고 한다. 이른바 ‘초코파이 사태’다. 북한 정권은 체제가 무너지는 걸 걱정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는 몇 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연간 1억4000만 달러를 벌 수 있는 금강산관광도 북한이 안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원인으로 보는 건 단견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은 남한 쪽에서 ‘퍼주기’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북한에 식량 등을 퍼주기 할 수 있다면 북한 동포를 돕는 점으로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나 좋은 일이다. 북한 정권이 퍼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문제다.”



 - 최근 북한이 느닷없이 남북대화를 제의했다가 최종 결렬된 배경은.



 “북한이 제안한 게 6월 6일이다. 그 이전에 모든 남북회담 무효, 개성공단 철수 등 강경조치를 내놓고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던 북한이 느닷없이 회담하자고 했다.



 그건 며칠 사이에 신속하게 결정되지 않고는 나올 수가 없다. 왜 그랬을까. 다음 날 미·중 정상회담이 해답이다. 북한 입장에선 미·중 정상이 북한 핵무기의 폐기를 위해 군사적 조치 등 엄청난 합의를 내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성조 합참의장이 베이징에서 중국 총참모장과 군사회담을 하고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은 것도 그런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 국내의 자칭 진보인사들은 친북성향이 강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의 후신) 부정선거 사건으로 구당권파의 친북성향이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통진당뿐 아니라 진보적 지식인과 시민운동단체 대부분이 친북성향이다. 재야세력이 무능해서다. 진보 진영이 3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북한 콤플렉스다. 대학생이 주장하면 다 따라간다. 지금도 그 콤플렉스는 살아있다. 또 민주노총이 주장하면 따른다. 민주노총은 지금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이득을 대변하는 단체다. 대기업에 정규직 사원이 되는 게 쉽나. 그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또 북한에 반대하면 역으로 보수 동조세력으로 여겨진다. 요즘 진보 진영의 좌편향은 시대착오적인 좌편향이다.”



1988년 공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된 장기표씨가 부인 조무하(왼쪽)씨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감싸안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 북한 정권 비판은 언제부터 했나.



 “1993년쯤부터다. 그때부터 북한에서 아사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진보 진영에선 못사는 것을 맨날 홍수 탓으로 돌렸다. 부산대 강연 때 내가 ‘설사 홍수 때문에 그랬다 해도 국정운영의 제1인 치산치수를 못했다면 북한 정부 책임이다. 그걸로 국민이 굶어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홍수론을 비판했다. 그러자 대학생들이 나를 수구골통이라고 하더라. 그 이전에는 북한이 잘산다고 해서 추종한 측면이 있다. 2000년대 들어 못사는 게 판명이 됐다면 지지를 철회해야지. 진보 진영은 다시 못사는 원인으로 미국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의 미국과 군사적 대결을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다는 거였다.”



 - 북한 정권에 대한 공격이 진보적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 시절, 솔직히 나는 수업을 한 시간도 안 들었다. 학생운동을 직업적으로 했다. 투옥과 수배를 반복하다 보니 6개월 이상 한곳에 가만히 있었던 적이 없었다. 당시 내가 국민대회를 한다고 하면 하고 안 한다고 하면 안 할 정도였다. 그때 운동권 선후배 중에 북한 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이들이 있었는데 간첩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7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이 더 잘살았던 측면도 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 많은 걸 배우긴 했지만 그대로 따른 적은 없다. 사유재산을 없애고 계획경제를 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하자는 주장엔 동조하지 않았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더더욱 아니었다. 주체사상은 독재라고 판단했다. 현재 도지사인 후배도 한때 그랬다. 하지만 나는 국민 대중이 주인이 되는 ‘민중주체민주주의’를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했다고 비난하지만 북한 김일성은 그보다 더 장기집권했다. 이런 비판도 했지만 그 시절에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당국에 자주 잡혀 들어갔다. 심지어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둔 10월 초 국가안전기획부가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발표한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구속되기까지 했다. 안기부와 북한이 짜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사건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 남북 통일에 대한 전망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역설적으로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을 크게 해준다. 지금까지는 한반도 주변 4강, 특히 중국이 반대해서 통일이 어려웠다. 하지만 북한 핵무기 보유는 중국의 국가안보에도 위협이 된다. 특히 북한은 ‘비정상적 국가’다.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에게 갈 수도 있다. 핵무기는 100개가 있으나 1개가 있으나 위험도는 비슷하다. 4강 중 미국은 우방이고 러시아는 푸틴의 동진정책이 통일에 나쁘지 않고, 일본은 반대해봤자 영향력이 없다. 중국을 잘 설득해야 한다.”



 - 중국이 남한 중심의 통일을 지지할까.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국가의 지위를 공고히 해 가는 마당에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되는 걸 원치 않는다. 남한 중심 통일이 북한 핵무기를 없애는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인식이 중국 내부에서 생겨나고 있다. 지난 2월 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중국은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쓴 덩위원(鄧聿文·46)이 대표적이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의 전 부편심(副編審)인 그의 칼럼 내용은 내 생각과 똑같았다. 지인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1인당 10만원씩 걷어서 비행기 삯 110만원을 마련해 줬다. 덩위원에게 e메일을 보낸 뒤 직접 베이징으로 날아가 4시간 동안 대담했다. 덩위원에게 ‘한국을 위해서 그런 주장 하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중국을 위해서 그런다’고 답하더라. 덩위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중국 내부에 많은 건 아니다. 이후 덩위원을 한국으로 초청해 강연을 주선했다. 조만간 덩위원과의 공저를 출간할 예정이다. 통일포럼을 만들고 통일을 위한 국민운동을 펼치겠다.”



 - 좌파 정권 10년 동안 남북관계가 평화로웠다는 시각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 시절에 남북관계가 평화롭게 긴밀하게 이어졌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김대중정부 때 북한은 뒤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02년 6월에는 제2차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6년 10월에 핵무기 실험을 했고 2009년 2차 핵심험을 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도 했지만 그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 시기를 어떻게 평화로웠다고 말할 수 있나.”



 - 현재 매진하고 있는 사회변혁운동의 요체는.



 “80년대 초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을 읽으면서 정보화사회야말로 인간해방을 위한 조건이 이뤄진다는 걸 발견했다. 도래한 정보화사회가 신문명의 토대다. 정보화사회는 물질적 풍요와 대중의 정치사회의식 고양을 가져왔다. 인간의 해방된 삶이 가능해졌으나 잘못하면 대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창한 게 사회민주주의와 생태주의를 결합한 녹색사회민주주의다.”



 - 정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아쉬움은 없나.



 “90년 11월 민중당을 창당했으나 92년 14대 총선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해 해체됐다. 이재오와 김문수는 한나라당으로 옮겨 각각 최고위원과 경기도지사가 됐다. 마지막에 나 혼자 남으면서 ‘마지막 재야인사’라고 불렸다. ‘정당제조기’란 부정적인 닉네임도 붙었다. 나는 많은 걸 해서 실패했지만 고집스럽게 진보정당을 추구해왔다.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보수세력보다 훨씬 더 반(反)북한적이다. 그러나 보수와 다른 건 ‘때려잡자 공산당’이 아니라 북한 동포를 도와주자는 것이다.”



 - 지난 40여 년 동안 외길을 걸어온 비결은.



 “장기표가 별나다. 내 인생을 산다. 이 시대 최대, 최후의 문제는 자기가 없다는 것이다. 천하를 얻어도 내가 없으면 헛것이다. 내가 있는 정치를 하려면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내가 버텨온 건 통찰력 하나다. 통찰력이 있으려면 욕심이 없어야 한다. 내 딴에는 나를 조심한다. 허튼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철저하게 나는 나 위주로 산다. 그게 남을 위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총재도 굉장히 나를 끌어들이려 했다. ‘내가 얼마나 못난 짓을 했으면 나를 오라 하겠나’ 이런 생각도 했다. 국회의원이 돼 정치권 왔다 갔다 했다면 내 생각이 무뎌졌을 것이다. 무뎌지는 게 아니라 없어졌겠다. 정치권으로 간 동지들은 도덕성을 빼면 이념, 정책적으로는 기존 정치인과 다른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못한 경우도 적잖다. 나한테 그걸 고백한 사람도 있다. 그런 정치를 뭐하러 하나.”



 - 대통령 중에선 누구를 좋게 평가하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나한테 해준 건 없지만 한 일이 제일 많다. 하나회 척결도 어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실명제 실시를 잘했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도 그렇다.”



 - 박정희 전 대통령에 평생 반대해 왔는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징역 몇 년 산 것 갖고 억하심정 같은 건 없다. 나보다 더 고통받은 사람이 수두룩하지 않나. 다만 경제발전을 위해 독재가 불가피했다는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불균형 성장, 중화학공업 편중 지원, 재벌 비대, 부정부패 등의 부작용도 엄청났다. 이스라엘이나 대만, 일본, 독일은 2차대전 이후 독재 안 하고도 경제발전 우리보다 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욕먹을 일을 적잖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자기중심성이 심하긴 하지만 대과 없이 하고 있다. 이 정부가 잘하면 공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유능한 사람을 써야 한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 사회정치운동에 매진하느라 가족들을 챙기지 못했을 것 같다.



 “아내 조무하(64)가 고교 교사를 했다. 밥은 먹고산다. 지금은 학생들 독서 지도하는 가정교사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76년 만났다. 딸 둘이 있다. 옛날에는 바깥에서 살다시피 해도 미안하게 생각을 안 했는데 요즘은 미안한 게 아니라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쩔쩔맨다. 집사람이 눈만 똑바로 떠도 주눅이 든다. 집사람이 말만 한마디 붙여줘도 고맙기 짝이 없다. 안 쫓겨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 건강은 어떻게 챙기나.



 “혼자 있었던 시간이 굉장히 많다. 교도소에 가도 혼자였다. 하지만 밥은 혼자 먹는 게 안 좋다. 여럿이 먹어야 한다. 건강이 나쁘진 않다. 눈이 약해서 실핏줄이 자주 터진다. 하루도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일병장수’란 말이 맞다. 몸에 병이 하나 있으면 운동도 하고 조심해서 오래 산다.”



글=조강수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기표는



·마산공업고등학교·서울대 법학과 졸업. 노동운동가이자 민중당 창당의 주역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자살 소식을 접하고 서울대 학생장 제안

·1972년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 5·3 인천대회 배후 조종 혐의 등으로 9년 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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