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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연암과 다산, 극과 극이 통했던 18세기 조선

중앙일보 2013.06.22 00:28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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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 패러독스·해학 가득한 이야기꾼
『목민심서』의 다산 정약용, 부조리한 세상 개혁 의지
경계형 지식인 vs 왕의 남자 … 입장 달랐지만 시대를 빛낸 큰별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431쪽, 2만원




근대 이전의 지성사를 장식한 별들을 떠올려본다.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뇌리를 스치지만,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과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18세기를 울렸던 두 거목을 내세워서 조선 지성사를 종횡무진 여행한다. 한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평전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칫 찬양일변도나 비판일색으로 흐르기 쉬웠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비교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두 인물을 라이벌로 내세워서 그들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논의하고, 이를 통해 조선 후기 지성사를 환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만의 운명을 가지는 것일까. 해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 운명의 길을 예측하기 위해 우리는 더러 명리학에 기대곤 한다. 사주팔자를 가지고 인생역정을 해석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그것이 과학이든 미신이든 혹은 인문학의 영역이든, 그것이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저자에 따르면 박지원은 불을 품은 물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 경계인으로서의 운명을 가진다. 이에 비해 정약용은 물을 품은 불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 곧고 강렬하게 중앙을 향해 도약하는 운명을 가진다. 그 운명의 길은 주변의 다양한 환경과 만나서 삶의 아름다운 결을 만들어냈다.



 25년의 나이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이들은 과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을까. 박지원의 글에는 정약용의 흔적이 없지만 정약용의 글에는 박지원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이들이 만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약용이 30대 초반의 젊은 관리였을 때 정조가 화성 행차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부교(浮橋)를 놓았는데, 그 자리에 임금의 권유로 박지원이 초청된 적이 있었다.



 만약 이 때 박지원이 갔더라면 먼발치에서라도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우리나라 최고의 호학 군주로 일컬어지는 정조를 매개로 그 시대의 지성계에 우뚝 선다.



 사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박지원은 뚱뚱한 편이었지만 정약용은 마른 편이었다. 박지원이 노론이라는 권력 핵심부 가문 출신이면서 과거 시험은 작파하고 오직 글쓰기에 몰두한 인물이라면 정약용은 남인 출신으로 과거 시험을 통해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관료였다.



 박지원이 풍자와 유머 가득한 패러독스의 글쓰기를 했다면 정약용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한 파토스적 글쓰기를 했다. 박지원은 중국을 여행하면서 티베트 불교와 접속하는 지점을 찾았다면 정약용은 서학과 접속하면서 새로운 사유로 나아가는 길을 찾으려 했다. 수평적 윤리라 할 수 있는 우정을 중시했던 박지원과는 달리 정약용은 수직적 윤리인 군신 관계를 중시하였다.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포인트로 정조는 당시의 문체를 주목했다.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공부하는 선비다. 그들의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짓는 글을 보면 된다. 그런데 정조가 보기에 글 속에 명청 시대를 풍미했던 소품문의 문체가 끼어들어있으니 큰 문제다. 결국 그는 문체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기로 마음먹는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 바로 문체반정이다. 주자학을 내용으로 하는 정통 고문이야말로 조선의 이념적 기반이라고 생각하던 정통 주자학자인 정조 입장에서 인간의 사소한 감정이나 생활 속의 소소한 것들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소품문이 달가울 리 없다. 조선 선비들의 문체가 이렇게 변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그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든다. 이 사건을 통해서 많은 문인들이 반성문을 쓰거나 견책을 받았다.



 이옥 같은 선비는 과거 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문제가 되던 서학도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소품문적 문체와 관련이 있다고 정조는 생각했다. 그러니 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문체반정이 꼽힐 만하지 않은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를 읽는 길도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낸다. 정해진 길을 슬며시 벗어나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박지원과는 달리 정약용은 이미 완성돼 있었지만 지키지 않아 먼지가 덮인 규칙들을 깨끗하게 털어냄으로써 진리의 모습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두 권의 책은 그런 사유의 궤적을 온전히 보여준다. 경계인으로 떠도는 사유의 방랑자와 엄정한 매뉴얼로 총애를 받은 왕의 남자,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달랐지만 최고의 지성으로서 빛을 발하였다.



 저자는 두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비교하면서 조선의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정조의 시대가 어떻게 찬란한 문화를 구성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사주팔자로부터 당색, 정치 투쟁, 서학, 북학, 시대 모순, 학맥 등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촘촘한 그물들 사이로 두 사람의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저자는 활달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걸 듣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지성사의 빛나는 두 별과 함께 새로운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ㅊ『옛시에 매혹되다』독서광 허균』 등을 썼으며, 『옥루몽(5권)』 『누추한 내 방』 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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