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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케인스의 빗나간 예언 … 문제는 탐욕이었다

중앙일보 2013.06.22 00:19 종합 23면 지면보기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부키, 376쪽, 1만6000원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온 세상이 있다.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세상, 유토피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 책은 그 인류사적 명제에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진다. 결론은 지극히 도발적이고 담대하다. ‘유토피아는 있다. 그것도 지금, 바로 여기에.’



 도발의 출발점은 요즘 새롭게 재조명 받는 경제학자, 케인스다. 저자들은 1928년 케인스의 강연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는 “100년 뒤 선진국의 생활 표준은 지금보다 4배에서 8배 높아져 있을 것이며, 하루에 3시간만 일해도 충분한 세상이 된다”고 했다. 인간의 물질적 욕구가 충족돼 만인이 ‘충분히 가진’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이른바 ‘케인스식 유토피아’다.



 케인스 전문가로 불리는 경제학자 아버지와 철학자 아들, 두 사람은 부자간 협업을 통해 케인스의 예언을 검증한다.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케인스가 말한 대로 선진국 국내총생산(GDP)은 4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 왜 일하는 시간은 하루 3시간으로 줄지 않았을까. 심지어 최근엔 다시 늘어나기까지 할까. 문제는 ‘탐욕’이다. 탐욕은 ‘끊임없이 더 많이 원하는 불만족 상태’를 말한다. 충분히 가졌지만, 만족하지 못하니 더 일하게 됐다는 얘기다.



 문제를 찾았으니 해법도 나온다. 탐욕만 제거하면 된다. 하지만 방법은 말처럼 쉽지 않다. 탐욕은 목표도 종착역도 없다. ‘누구만큼, 또는 누구보다 더 많이’라는 상대적 좌표만 있다. 모두가 상대적 좌표를 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좌표는 무한히 멀어져 갈 것이다. 근세 들어 강조돼 온 성장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다. 끝없는 경쟁을 부추길 뿐,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들의 해답은 명쾌하다. 탐욕을 없애려면 다른 목표가 필요하다. 바로 ‘좋은 삶’이다. ‘좋은 삶’은 뭔가. 이 지점에서 부자간, 철학과 경제학의 협업이 빛을 발한다. 건강·안전·존중·개성·자연과의 조화·우정·여가의 7가지다. 부자는 이를 ‘기본재’라고 이름 붙였다.



 이 기본재는 그럼 어떻게 얻나. 우선 무한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당장 성장을 멈춰라. 소득의 불평등을 줄여라”라고 외친다. 다음은 일자리 나누기다. 그 중 1993년 덴마크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노동자는 4~7년 마다 안식년을 선택할 수 있다. 상근 직원의 10%가 늘 휴가 중인 시스템을 만든 회사도 있다. 이를 통해 고용을 10% 늘렸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선 ‘기본소득’ 보장이 필수다. 기본소득은 달리 시민소득이라 불린다. 최저임금과 다르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서 일을 할지 말지, 한다면 얼마만큼 할지를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재원은 외환거래세나 자본세·신탁수익 등으로 충당 가능하다. 특히 이 대목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정책 목표로 삼은 박근혜 정부에도 참조가 될 만하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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