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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클리닉] 공황장애 의심된다는 33세 워킹맘

중앙일보 2013.06.19 03:30 강남통신 17면 지면보기


Q: 터널 지나는데 별안간 공포 엄습 그 뒤론 못 지나가겠어요

"불안감 없애려 의지 불 태우지 말고 몸에 힘부터 빼세요"

A: 공황은 마음이 보내는 구조 신호 스트레스와 삶의 피로가 원인 심리 요법·약물 치료로 패닉 증상 없애야



Q 33세 워킹맘입니다. 한 살짜리 딸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돌봐줍니다. 외근이 잦은 광고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운전할 일이 많은데 최근 문제가 생겼습니다. 꽉 막힌 남산 터널을 통과하느라 터널 안에 있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지며 식은 땀이 났습니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가 몰려오더군요. 간신히 터널을 빠져나와 근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정상이랍니다. 문제는 이후로 차를 운전하기가 겁이 난다는 겁니다. 특히 터널은 도저히 못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터널을 우회해 빙빙 돌아다닙니다. 혹시 공황장애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정신과 약을 먹지 않고 나을 방법이 있을까요.



A공황(恐惶)의 사전적 의미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나 공포로 갑자기 생기는 심리적 불안 상태입니다. 갑자기 심리적 공황이 찾아 오는 것을 공황발작(panic attack)이라고 합니다. 공황장애는 공황발작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공황장애는 불안의 문제입니다. 과도한 불안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불안은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마음의 증상 중 하나입니다. 잘 조절되지도 않죠. 애는 쓰는데 쉽지 않으니 스스로의 나약함을 자책하기도 합니다. 남 부럽지 않은 사회적 성공을 이뤘어도 불안이 엄습해오면 내가 성취한 소중한 것들을 즐길 수 없습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행복이 깃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불안이라는 신호는 그 자체로 병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상 신호입니다. 위기 상황에 적절히 울리는 불안 신호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소중한 메시지입니다. 눈앞의 아름다운 꽃 감상에 푹 빠져 옆에서 달려오는 코뿔소에 생명을 빼앗기면 후세를 남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꽃을 앞에 두고도 혹시 코뿔소가 오고 있는 게 아니냐며 항상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조상만이 살아남아 예민한 불안 유전자를 우리에게 물려줄 수 있었죠.



 기업 CEO의 취임사나 신년사를 보면 불안 유전자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임직원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으로 지난 한 해 우리 회사는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위기를 극복하고 목표 이상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경제 위기가 더할 것으로 예상돼 여러분의 노력과 헌신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위기론 없는 신년사를 들은 해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협박은 불안과 공포를 조장해 남에게 억지로 어떤 일을 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불안 사회는 협박을 세련되게 포장해 사람들을 조정합니다. 사실 자녀에게 하는 잔소리도 협박조인 게 많습니다. “이번에 성적 올랐다고 방심하면 안 돼. 밀리면 끝이야”라며 채찍질합니다.



 잘 불안하면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습니다. 생존을 위한 생존만큼 서글픈 일은 없습니다. 삶의 진정한 맛은 생존을 넘어선 가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가 가슴에 채워져야 행복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불안은 내가 가진 소중한 가치를 하찮은 것으로 희석시켜 버립니다.



 공황장애 같은 불안 증상을 가진 사람을 보며 ‘의지가 약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 발생하기 쉽습니다. 내 감성이 원하는 욕구를 뒤로 하고 끝없이 희생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사연 주신 분, 바쁜 광고 회사 생활에 자녀 양육까지 상당한 스트레스가 뇌에 압박을 줬을 겁니다. 보상 없이 끝없이 희생만 요구당할 때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라며 시끄럽게 자명종 알람을 울리는 게 바로 패닉(panic)입니다.



 협박은 상대방이 공포를 느낄 때 힘을 발휘합니다. 협박범 대부분 상대방이 무시하면 ‘깨갱’하고 뒤로 물러섭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겁을 먹으면 더 강하게 협박 수위를 높입니다. 막히는 터널은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어려운 곳을 상징합니다. 스트레스와 삶의 피로로 예민해진 불안 시스템은 실제 위기 상황이 아닌 이런 상상의 위기에도 패닉이라는 알람을 울립니다. 패닉은 실제가 아닌 환상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문제는 그 환상이 현실로 연장된다는 거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한심하다 생각하겠지만 패닉을 경험한 사람은 그 장소를 피하게 됩니다. 공포 영화를 몰입해서 보면 순간 그 공포가 현실로 느껴지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패닉은 회피를 만들고 회피는 삶을 불안하게 만들어 더 큰 패닉을 가져옵니다. 터널에서 패닉을 한번 경험하면 이후엔 터널 생각만 해도 불안 증상이 나타나고 그곳을 피해 운전하게 되는 거죠. 가짜 협박인데 실제 삶에 영향을 미쳐 삶을 더 지치게 합니다.



 패닉을 잘 다스리는 방법은 뭘까요. 강한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몸에 힘을 빼는 겁니다. 몸에 힘을 빼야 타인의 도움을 받기 수월해집니다. 강한 의지에 바탕을 둔 독립심, 훌륭하지만 패닉을 다루는 데는 걸림돌입니다.



 사연 주신 분이 약 먹지 않고 나을 수 있는 방법을 물으셨죠. 이 말은 약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 즉 의지로 고치겠다는 뜻인데 그 내면에는 세상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생존하기 위한 과도한 불안 시스템은 주변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는 말은 위기 관리 측면에선 훌륭한 알고리즘이나 삶을 지치게 합니다. 죽을 것 같은 생각에다 실제 신체 반응까지 일어나는 패닉은 ‘이대로는 더 못 살겠다’는 마음의 강력한 SOS 구조 신호입니다.



 많은 사람이 약물 의존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약물 의존보다 더 문제인 것은 불충분한 치료(under treatment)입니다. 패닉의 경험은 또 다른 패닉 증상을 유발하기에 심리 요법과 더불어 약을 충분히 써서 패닉 증상을 없애는 게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신과 불안의 병이기에 약에 대해 더 복잡한 생각을 합니다. 조금 호전되면 임의로 약을 줄이거나 끊어 버리고 그러다 다시 패닉이 반복되는 경험은 과도한 불안 반응을 만성화하고 고착화합니다.



 많은 세상사가 의지를 가지고 위기 관리를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마음 관리는 거꾸로입니다. 비타민이라 생각하고 평생 약을 먹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환자가 증상도 금방 호전되고 약도 금방 끊게 됩니다. 스트레스 관리하려고 쓰는 약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약 용량이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는 거죠.



 패닉은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불안감에 노출된 채 살고 있습니다. 불안 그 자체는 성취와 생존을 위한 소중한 신호이나 과도한 불안은 삶을 힘들게 합니다. 과거의 불안 대처법은 이처럼 잘못된 생각을 뜯어 고치자는 전략이었으나 그런 전략은 지친 우리 뇌에 불안만 가중시킵니다.



 다음 주에는 불안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최신 마음 관리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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