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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이해 힘든 신조어 점점 많아져요

중앙일보 2013.06.19 03:30 강남통신 14면 지면보기


언어는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는 청소년이 사용하는 단어와 과거 농경사회에 살던 세대의 단어가 같을 리 없죠. 사회 변화에 발맞춰 새로 탄생하는 말을 신조어라고 합니다. 신조어를 잘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 삶이 과거와 어떤 식으로 달라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문과 교과서를 통해 최근 등장한 신조어가 무엇인지, 또 이 신조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우리 삶의 변화된 모습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신문에서 찾은 생각해볼 문제



 
‘1500만의 환호, 1400만의 멘붕’ ‘안방 극장은 찌질남이 대세’ ‘완소남만 찾지 마라 훈남이 대세’ .



 얼마 전 신문에 난 기사 제목입니다. 멘붕(멘털 붕괴의 줄임말·멘털, 즉 정신을 놓을 정도로 충격적인 상황을 뜻함)이나 찌질남(외모나 됨됨이가 찌질한, 즉 형편없는 남자), 훈남(외모나 마음 씀씀이가 훈훈한, 즉 따뜻한 남자)처럼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단어가 눈에 띕니다.



 단어가 새로 생겨난다는 건 사회가 변화했다는 의미입니다. 언어학자들도 신조어를 통해 사회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데 공감합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은 2011년 7월 1일부터 매일 139개 언론매체에 새롭게 등장하는 말을 채집하고 있지요. 이 중 일부는 올해 한글날 전후에 일반에게 선보일 온라인 전용 국어사전인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별칭 우리말샘)에 실릴 예정입니다. 사전에 오르게 될 ‘모두까기’(모든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평가하는 사람)나 ‘돌직구’(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스타일), ‘손주병’(맞벌이 자녀를 대신해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며 생기는 건강 문제) 등에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진짜 신조어가 궁금하다면 청소년의 SNS를 들여다봐야 할 듯합니다.



 “솔까말, 어제 시험 지대 ㅁㅊ. 채점해보니 캐안습~ 성적표 보면 레알 깜놀.” “IBM. 일단 성적표 쉴드. 뽀록나면 파덜어택.”



 이 두 문장에 쓰인 단어 의미를 하나씩 파악해볼까요.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지대는 제대로, ㅁㅊ는 미칠 지경, 캐안습은 안구에 습기가 격하게 돌 정도로 매우 슬픈 상황, 레알은 영어 리얼(Real·정말), 깜놀은 깜짝 놀랄 일입니다. 그럼 IBM은 뭘까요. 이미(I) 버린(B) 몸(M)을 줄인 말이랍니다. 쉴드는 영어 뜻대로 보호 또는 수비, 뽀록은 들통, 파덜어택은 아빠의 공격(father attack), 즉 아빠에게 심하게 혼나는 상황을 뜻합니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바꿔보면 “솔직히 어제 시험 너무 어려웠어. 채점해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야. 실제로 성적표 확인해보면 진짜 놀랄 것 같아” “난 성적은 이미 포기했어. 일단 성적표 감추고 있다가 아빠에게 들키면 혼나야지 뭐”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정제된 글인 신문 기사와 달리, 훨씬 거칠고 속된 표현이지만 말하는 이가 처한 상황과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과서는 언어의 의미와 사용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들여다봅시다.



무조건 쓰지 말라 하기 전에 마음의 문 열어야

언어 순화 훈계하기 앞서 소통의 길 열어야




 
청소년은 유독 자기들끼리 쓰는 단어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어른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암호 같은 단어를 만들어내 은밀하게 의사소통하며 즐거워합니다. 지금은 모두가 그 의미를 알아버려 사용 가치가 없어졌지만, 담임 선생님을 칭하는 담탱이나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를 비하하는 찐따·찌질이 등도 청소년이 만들어 낸 신조어였습니다.



 단어의 의미가 모두에게 알려져 특수성이 사라지면 한층 더 난해한 단어를 만들어냅니다. 놀리는 표현만도 수십 가지인데 안여돼(안경 쓰고 여드름 난 돼지)나 안여멸(안경 쓰고 여드름 난 멸치), 장미단추(장거리에서 보면 미남미녀인데 단거리에서 보면 추남추녀), 찐찌버거(찐따, 찌질이, 버러지, 거지)처럼 외모를 조롱하고 따돌리는 표현이 대다수입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의 이런 언어습관을 언어 파괴라 부르며 “순화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지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누군가를 조롱하는 행위도 불쾌하지만 청소년이 만들어낸 단어가 주는 기괴함과 경박함에 우려를 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못하게 막기 전에 청소년들이 왜 이토록 이상한 말을 만들어내는지 이유부터 살펴보면 어떨까요.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회 집단과 조직’ 단원을 보면 사회 집단은 크게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성원끼리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가질 때 이를 내집단, 그 나머지를 외집단으로 구별합니다. 학교라는 사회에 대입해보면, 강한 결속력으로 묶인 친구끼리는 내집단, 별로 친하지 않은 동급생이나 교사는 외집단이 되는 셈이지요. 내집단 구성원은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자기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곤 하는데 언어도 그 문화 중 하나라는 설명입니다.



 
오른쪽의 QR코드를 찍으면 신조어 관련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는 우리말에 신조어가 유달리 많은 이유를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에서 찾습니다. 자음과 모음이 음절 단위로 묶여 무한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글만의 탁월한 제자원리 덕분에 사회 변화와 동시에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단어가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또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린 신영복의 ‘욕설의 리얼리즘’이라는 작품에서는 일상적인 통념과 달리 비속어나 은어의 긍정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상황에 멋지게 들어맞는 비유나 풍자라든가, 극단적인 표현에 치우친 방만한 것이 아니라 약간 못 미치는 듯한 선에서 용케 억제됨으로써 오히려 예리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 등은 그것 자체로서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신조어의 범람은 우리 언어생활에 큰 장벽을 세웁니다. 끼리끼리 향유하는 문화가 늘수록 소통은 더욱 힘들어지니까요. 오랜 단절로 남북한 언어가 달라졌듯, 우리 사회에서도 기성세대와 청소년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아이들을 향해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라”고 다그치기 전에, 기성세대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의 길을 열어보는 게 어떨까요.



집필=명덕외고 김영민(국어), 최서희(국어), 한민석(사회) 교사

정리=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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