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간과 자연이 만든 골목 도시 젊은이를 매혹하다

중앙일보 2013.06.19 03:30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경북 경주시 신라밀레니엄파크에 있는 국내 최초의 한옥 호텔라궁(羅宮). 이 호텔을 설계한 조정구(47) 구가도시건축사무소 대표는 객실로 쓰이는 ‘ㅁ’자형 한옥 마당에 노천탕을 배치했다. 탕에선 담장 위로 열린 하늘이 보인다. 조 대표는 여름이면 자신의 서울 서대문구 한옥집 마당에 튜브 풀장을 설치하고 초등학생 자녀가 친구들과 함께 놀게 했다. 바로 이 아이들이 놀던 풀장을 라궁에 적용한 것이다.

조정구 구가건축 대표가 말하는 북촌



서울 종로구 가회동, 경북 안동 군자마을 등 곳곳에서 한옥을 건축한 그를 북촌에 자리 잡은 구가건축 사옥에서 만났다. 현대 한옥을 짓는다는 그의 사무실은 한옥을 풍경으로 둔 양옥집이었다. 그에게 북촌은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조 대표에게 먼저 그의 한옥살이에 대해 물었다. 그는 꼭 한옥에 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애들이 놀 마당 있는 집을 찾다 2003년 지금의 한옥집으로 이사했다. 한옥을 여러 채 지은 건축가라 대단하게 고치고 살 것 같지만 화장실과 안방만 손보고 10년째 살고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엔 “돈이 없어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내 “1958년 지어진 이 집 느낌을 두고 보고 싶어서”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혹시 집까지 북촌으로 옮길 생각은 없는 걸까. 그는 “당장 계획은 없지만 만약 북촌으로 온다면 가회동 쪽보다 이웃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옛 가게가 남아 있는 계동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사람들이 최근 주목하는 북촌의 매력이 뭔지 엿볼 수 있었다. 대단한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어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곳이 풍기는 정취에 매혹당하는 것이다. 옛날엔 불편하게만 여겼던 좁고 가파른 골목길, 촌스럽다 여겼던 가게들…. 그 시절 아련한 향수가 있는 구(舊)세대가 아니라 오히려 신세대가 북촌을 더 좋아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이리라.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북촌은 어떤 곳인가.



 “북촌은 양명한 곳, 중심에 놓인 곳이다. 부자들 위세가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북촌에는 팥죽에 새알 박힌 것처럼 곳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데가 많다. 가문을 이어 터잡고 살아온 이들의 땅이다. 북촌에 중산층과 서민도 많지만 원래 권력가들이 있던 곳이란 말이다. 새로 이사 오는 사람 중엔 큰집 짓는 부자가 많다. 권력과 부가 같이 있던 동네 본연의 모습이 북촌이다.”



-북촌 골목이 주말이면 외지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 찬다. 무슨 매력 때문일까.



 “우리도 이제 도시문화가 꽃피우는 것 같다. 젊은 세대부터 인사동, 북촌, 삼청동의 매력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꼭 그곳이 지닌 전통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장소만의 희소성을 즐기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북촌이 강남과 가장 대비되는 점일 거다. 오랫동안 그 장소에 있던 게 많다. 북촌은 1930년대 중반부터 권문세도가가 살던 큰 필지를 잘게 쪼개 도시 한옥이 지어졌다. 그렇지만 조선시대부터 있던 길은 아직 남아 있다. 우리 사무실 건너편 고이 커피숍 옆 계단길(1면 사진)은 18세기 지도에도 표시된 길이다. 가회동 31번지 한옥마을 입구 돈미약국 옆 골목도 그때부터 있었다. 오래된 길은 느낌이 다르다. 북촌 길은 물길과도 겹친다. 물길 따라 생긴 길을 걸으면 풍경이 바뀌는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강남에선 이런 기분을 맛보기 어렵다.”



-북촌 옛길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특별한 걸 느낀다는 건가.



 “북촌 길은 시간과 자연이 같이 만든 것이다. 자연이 있으니 물이 흐르고, 물이 흐르니 길이 나고, 길이 나니 사람이 살고 그 옆으로 골목이 생겨났다. 자연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미리 그걸 알고 가지 않아도 편안함을 느낀다. 인사동도 원래 하천 길이었다. 노루나 사슴 등 짐승이 자연의 길을 찾듯 사람 역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의 질서를 몸으로 읽어낸다.”



-그런가. 사람들은 북촌이라고 하면 옛 길보다 한옥을 먼저 떠올릴 텐데.



 “도시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에 더해 한옥이 있는 거다. 이 시대 사람들이 도시를 즐길 줄 알게 되면서 깊은 맛을 내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론 창신동, 성북동, 혜화동, 명륜동으로 퍼져갈 것이다. 한옥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런 장소가 주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한옥에 살던 사람들이 앞다퉈 아파트로 이주했는데, 다시 과거 동네를 찾아나서는 건가.



 “전통 한옥에 살다 도시형 한옥으로 옮겨가는 것도 실은 아파트행과 비슷한 거였다. 당시 도시한옥 광고를 보면 유리 창호라서 편리하다는 내용이 있다. 1930년대 이후 70년대까지 서울 구도심은 도시한옥 천지였다. 그랬다가 일부 지역에 시민아파트가 들어서고 이후 민간개발로 넘어가면서 강남 아파트가 주류가 됐다. 주택 200만 호 정책을 한다면서 개인 단독필지에 4~5층짜리 다세대 주택을 허용하는 바람에 한옥에는 해가 안 들게 됐다. 새것이 오래된 것을 낡고 초라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골목이 살고 동네가 사는 도시계획을 해야 한다.”



-재계 등 유명인사들이 북촌에 집이나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하는 경향은 왜 나타난다고 보나.



 “우리나라는 부(富)를 자랑하지 못하는 사회라 부자들이 불편하다. 북촌엔 기업 회장과 전문직이 살고, 그 건물에 미장하는 사람도 산다. 북촌 한옥을 투자로 여기는 이들은 이미 초기에 들어왔다 집값이 많이 올랐을 때 팔고 나갔다. 지금은 품격과 관련이 있다. 대중이 그 장소만의 시공의 매력을 찾는 것처럼 부유층도 문화를 향유하고 펼칠 자리가 필요한 것 같다. 한옥이 바로 그런 욕망이 됐다.”



-북촌에 오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장소는.



 “계동길을 꼭 가보라. 길이 아직도 옛길 너비(폭) 그대로다. 옆으로 난 가게와 건물도 마찬가지다. 중앙탕에서 목욕해 보란 말은 호불호가 갈려 못하겠다. 지난해 설날 계동에 있는 서울 게스트하우스 사랑채를 빌려 가족 모두 묵었다. 누마루에서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이더라. 서울이라는 거대한 정원에 있는 느낌이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낮은 집이 깔려 있고 산과 천이 보이는 거대한 분지의 풍경이 있었다고 상상해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건축가라 예민하게 포착하는 건 아닌가.



 “그 풍경을 보는 순간 누구나 깨닫게 된다. 조상들이 짜놓은 장소를 보는 순간 몸으로 아는 것이다. 건축가보다 일반인이 빨리 안다. 도시적인 것, 문화적인 것도 대중이 더 빨랐다. 한옥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 것도 건축계가 아니라 대중이었다. 한옥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들이 나타났어도 건축계는 전통을 베껴서 뭐하냐, 현대적 건물을 지어야지, 하는 타령만 했다.”



-서초구 상문고를 나왔던데, 강남에 자주 가나.



 “고향이 용산구 보광동이다. 강북 아이가 강남 학교 다니면서 그곳 아이들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남은 어색하다. 세련되고 첨단의 느낌이 있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다. 새로 생긴 쇼핑센터에 가면 좋긴 하더라. 그런데 오래가지 않는다. 뭔가 쌓이지 않고 떠있는 느낌이다. 새것이 나오면 소비하고 없어지고 또 나오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강북은 뿌리나 뒷배가 있다고 할까. 하지만 강남도 이젠 오래됐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시간의 형상이 생겨났다. 강남 사람도 전면 재개발하는 것을 무조건 좋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구반포에 살던 이들이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던 추억, 저층에서 지내던 기억을 갖고 있더라. 북촌도 북촌다워지려고 애쓰듯 강남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동네별로 해야 할 단계에 있다.”



-조 대표가 다닐 당시 상문고는 서울대 많이 보내는 명문이었다. 조 대표 본인도 서울대 나왔고. 명문 고교 따라 강남 가서 이렇게 효과를 보면 다들 만족하는 거 아닌가.



 “그런 선택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트라우마가 있다. 교장 차에 인사 안 했다고 반 애들과 땡볕에 2시간 동안 단체기합을 받았다. 명문대 졸업해 돈을 잘 벌어야 한다고 강요받으면서 다들 마음속엔 뭔가 찌그러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지금 돈 잘 벌고 잘 살지 않느냐고, 모두가 좋다고 얘기하지만 진정 자신이 찌그러진 부분은 보여주지 않는 게 아닐까.”



-집이 북촌이 아니라 서대문이더라.



 “독립문 아파트에 살다 첫째가 세살이 되자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과 땅은 주인이 있다. 서대문 집을 보고 너무 좋았다. 부동산 아저씨가 ‘역에서 30초 거리라 좋은데 한옥인 게 단점’이라고 했지만 난 속으로 박수를 쳤다.”



-아내도 한옥을 좋아했나.



 “처음엔 불편해했다. 마당 청소해야 하고 여름에 모기장 치고 겨울엔 커튼 달아야 한다. 지금은 굉장히 좋아한다. 살다 보면 계절을 알게 된다. 마당에 감나무가 있는데 감꽃이 피면 봄이다 싶고, 한겨울 되기 전 홍시가 열리면 따면서 저절로 알게 된다. 아파트라고 치면 어떤 방문을 열자 자연의 방이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① 조정구 대표의 둘째 아들 순우(당시 5세)군이 안방문 창호지를 뚫어 얼굴을 내밀고 있다.
② 집 마당 튜브 풀장에서 셋째 아들 연우군·막내딸 윤우양이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고 있다.
-3남1녀를 뒀더라. 한옥 생활이 자녀를 많이 낳은 데 영향을 줬나.



 “둘째부터 한옥에서 태어났다. 아무래도 그렇다. 남자애 셋은 집안 물건 망가뜨리고 서로 싸우고 난리다. 하지만 마음껏 뛰어놀면서 자연스럽게 잘 크는 것 같다. 우리 집 아이들은 고무총 잘 쏠 수 있는 곳이냐로 좋은 집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공간이 넓으면서 숨을 수 있으면 좋은 집이다. 우리 집은 큰 공간은 없지만 게릴라전에 좋다고 한다. 마당 툇마루에 앉아 라면 먹으면 애들이 ‘오늘은 비가 오네’ 이런 말을 한다. 24절기가 생활에서 접하다 나온 건데 그런 감각을 아이들이 익히게 된다.”



-첫째가 내년 중학교에 가는데 교육 걱정은 안 하나.



 “고민이다. 하지만 강남 갈 생각은 없다. 친구가 중요하기 때문에 별안간 멀리 옮기진 않을 거다. 우리 집 가훈이 ‘같이하자’다.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 작가로 초대돼 서대문 우리 집을 모델로 설치작품을 한 달간 선보였다. 그때 가족도 불러 2주간 함께 있었다. 지난해에도 베니스에 함께 갔다. 제주도에서도 3주 동안 온 가족이 동네 사람처럼 천천히 시간을 보냈다. 강남식 교육보다 그런 게 애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본다.”



-자녀가 고등학생이 돼도 그 집에 살 건가. 특목고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나.



위의 QR코드를 찍으면 건축가가 되기 위한 조언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 갈 길을 고민하고 있다. 그림을 잘 그리면 예술고를 보낸다든지 하는 가능성은 열어둬야 하지 않나. 재능이 있으면 막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심정으론 아이들 중 누가 건축을 하면 내가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아 지켜보는 중이다.”



조정구 대표가 일하는 구가건축사무소는 가회동에 있는 2층 양옥집이다. 그의 사무실 창 밖으론 멋들어진 한옥 풍광이 펼쳐져 있다. 조 대표는 건너편 좁다란 돌계단 길을 가리키며 “18세기 중기 지도에 나오는곳”이라고 설명했다.



조정구(47) 1966년 서울 출생

보광초등학교-단국중-상문고-서울대 건축학과-도쿄대 박사과정 수료

2000년 ㈜구가도시건축사무소 대표

2007년 한국목조건축대전 준공부문 대상·한국공간디자인 대상(경주 한옥 호텔 라궁)



2008년 한국건축가협회 특별상 아천상(안동군자마을회관)

2008년 서울특별시건축상 리모델링부문 장려상(가회동 선음재)

2010년 12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 작가

2011년 대한민국 한옥 공모전 올해의 한옥상(구로구립 글마루한옥 어린이도서관)

2011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가회동 소안재)

2012년 대한민국 한옥 공모전 올해의 한옥상(가회동 양유당)



가족: 아내 김영희(44·전 연극배우)와 3남1녀

사는 곳: 서대문구 충정로 2가 한옥

근무하는 곳: 종로구 가회동 16-3 구가도시건축

장보는 곳: 영천시장(독립문), 동네 수퍼·가게, 언니네텃밭(농촌직거래)

자주 가는 식당: 북촌 대장장이 화덕피자·을지면옥

자녀

첫째 아들: 덕수초 6학년

둘째 아들: 덕수초 4학년

셋째 아들: 덕수초 1학년

막내딸: 덕수초 병설 유치원



글=김성탁·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