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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원장들 표로 위협, 의원 입법도 주저앉혔다

중앙일보 2013.06.19 03:00 종합 5면 지면보기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이하 사법경찰관리법)이라는 긴 이름의 법률이 있다. 일부 공무원에게 제한적으로 경찰과 같은 권한을 주는 내용이다. 예컨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저작권 단속을 하거나 보건복지부에서 공중위생을 단속하는 공무원들에겐 피의자에 대한 출석 요구와 수사, 영장신청 등의 권한을 준다.


보육 공무원에 사법경찰권 법안
항의 빗발쳐 지역구 의원들 몸살
비례의원 서명 다시 받아 재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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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이운룡(초선·비례대표) 의원은 두 달 전 사법경찰관리법 개정안을 냈다. 복지부와 지자체에서 영·유아 보육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에게 경찰권을 주는 내용이었다.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허위 보조금 청구나 보조금 유용, 무허가 운영 등에 한정했다. 5조1512억원의 영·유아 보육료 지원예산을 치밀하게 관리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법안 취지에 동의한 새누리당 의원 12명 이 서명해, 이 의원을 포함 13명이 공동발의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한 달 보름여 만에 이 법안을 철회했다. 지역구에 있는 어린이집 원장들의 항의에 시달린 일부 의원이 철회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만만치 않은 ‘어린이집 원장 파워’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전국엔 3만9842곳(2012년 말 기준)의 어린이집이 있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학부모에게 적잖은 영향력을 끼친다.



 “지역에서 어린이집 원장은 나름 커리어 관리가 된 사람들이다. 소풍 등의 행사를 통해 학부모들과 접촉할 기회도 많다. 조직도 잘 갖춰져 있어 중요한 선거운동 대상이기도 하다.” 익명을 원한 새누리당 재선 의원의 설명이다. 지역구 의원들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법안 발의에 동참했던 한 의원은 지역구 어린이집 원장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며 보좌관에게 역정을 냈다. 이 보좌관은 사표를 썼다 최근에 복직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 의원은 새누리당 원내기획국장과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지낸 당료 출신.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직 사퇴로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했다. 지역구 의원이 아니지만 그의 사무실로도 “의원직을 사퇴하게 하겠다”는 식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일부는 의원실 여직원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등의 협박도 했다고 한다. 이 의원 측은 “어린이집 관련 단체들의 국회에 대한 조직적인 입법 방해 행위”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 “어린이집들이 자정 결의대회도 하는 등 자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잘할 수 있도록 계도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법경찰권을 줘서 범법자로 몰아가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며 “협회 차원에서 조직적인 항의를 벌인 것은 아니고 일부 원장이 자체적으로 항의를 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공동 발의한 몇몇 의원의 요청에 의해 일단 법안을 철회하지만 법안의 근본 취지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며 같은 내용의 법안을 지난 5일 재발의했다. 이번엔 11명이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지역구에서 어린이집 원장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는 비례대표가 9명이고 지역구 의원은 정문헌(속초-고성-양양) 의원과 김동완(당진) 의원 2명이 법안에 서명했다. 정 의원은 4월 최초 법안 발의 때도 참여했었다. 그는 “항의야 오겠지만 어린아이들은 옆에서 정성껏 돌봐 주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로, 어린이집에 대한 엄밀한 관리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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