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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 화끈하다 … 뉴 페미니즘 열풍 아랍까지 영향권

중앙일보 2013.06.19 01:11 종합 19면 지면보기
페미니스트 단체인 피멘 여성활동가들이 지난달 29일 튀니지 법무부 건물 앞에서 토플리스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집회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수감된 튀니지 동료 아미나의 석방을 요구하다 체포돼 최근 4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중앙포토]


지난 1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시내 세계문화의 전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한 행사 참석차 이곳에 도착한 순간 4명의 젊은 여성이 갑자기 티셔츠를 벗고 반라시위를 벌였다. 가슴에는 ‘피멘을 석방하라(FREE FEMEN)’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피멘은 우크라이나에서 처음 조직된 페미니스트 단체다. 종교적 여성 억압과 강요된 매춘 반대, 독재자에 대한 저항, 여성의 권리 향상과 기회 균등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피멘 논란 튀니지서 다시 점화



 이날 독일 피멘지부 회원들은 이슬람의 여성 차별에 항의해 온 튀니지의 아미나 스부이(18)와 그의 구명운동을 위해 토플리스 시위를 벌이다 4개월형을 선고받은 유럽 여성 3명을 풀어 주라고 요구했다. 독일의 요제피네 비트와 프랑스의 마르게리트 스테른, 폴린 힐리에는 지난달 29일 튀니지 법무부 건물 앞에서 아미나의 석방을 촉구하다 풍속사범으로 체포돼 실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피멘이 메르켈 총리 앞에서 반라시위를 벌여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일 독일을 방문한 알리 라라예드 튀니지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을 때도 베를린 총리관저 앞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4월엔 메르켈과 함께 독일 하노버박람회를 참관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독재자라 비판하고 윗옷을 벗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아랍어 도발 튀니지 여성 체포가 발단



상반신에 `내 몸은 나의 것`이라고 새긴 아미나의 페이스북 사진 캡처, 아래 사진은 반푸틴 시위를 벌인 `푸시 라이엇` 공연 모습. [중앙포토]
 페미니즘 운동이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동 민주화를 쟁취한 아랍의 봄에 빗대 ‘페미니스트의 봄’이라 불릴 정도다. 1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페미니즘은 『인권의 옹호』를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제2의 성』 저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 『젠더트러블』의 주디스 버틀러와 같은 사상가들이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했다. 지금의 페미니즘 담론은 젊고,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활동적인 뉴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독일 주간 슈피겔은 전한다.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단체는 2008년 4월 우크라이나에서 설립된 피멘이다. 이후 독일·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등 유럽과 미국·캐나다·브라질 등 미주지역에도 피멘 해외 지부가 속속 결성돼 글로벌단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반푸틴 시위로 유명한 젊은 여성 펑크 록밴드 ‘푸시 라이엇’이 페미니즘의 상징이 됐다. 일부 멤버가 실형을 받고 투옥됐지만 이들의 활동은 여전히 국제적인 관심과 지지를 모으고 있다. 독일에선 올 초 트위터를 통해 조직된 ‘#(해시태그)아우프시라이(절규)’가 피멘 지부와 함께 뉴페미니즘을 이끌고 있다. 메르켈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자민당 라이너 브뤼덜레 원내대표의 여기자 성희롱 발언이 올 초 언론에 공개되면서 페미니즘엔 더 큰 반향이 일어났다.



 장기집권 독재자를 처음으로 몰아내고 아랍의 봄 선두주자가 된 튀니지는 페미니즘 열풍에 있어서도 초점이 되고 있다. 피멘이 국제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튀니지 여성 아미나가 그 중심에 있다. 무슬림 여성인 아미나는 지난 3월 옷을 입지 않은 상체에 아랍어로 ‘내 몸은 나의 것’ ‘빌어먹을 도덕’이라고 쓴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려 튀니지는 물론 아랍과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일로 쫓기는 신세가 된 아미나는 지난달 19일 또다시 뉴스의 인물이 됐다. 그는 카이루안이라는 도시에서 이슬람극단주의 단체인 안사르 알샤리아의 집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살라피스트라 불리는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은 자유와 여성인권, 민주주의에 거부감을 표시해 왔다. 아미나는 시위 도중 옷을 벗으려다 붙잡혔으며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아미나 문제는 페미니스트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아미나의 석방을 위해 벌인 유럽 여성들의 반라시위에 선고된 4개월 실형이 가혹하다며 항의하고 있다. 앞서 스페인 마드리드의 튀니지대사관과 벨기에 브뤼셀의 이슬람센터 앞에서는 아미나를 지지하는 연대 반라시위가 벌어졌다. 피멘은 튀니지와 다른 중동 국가, 유럽 전역에서 아미나 구명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석방하라” 지구촌 곳곳서 피멘 나체시위



 러시아의 페미니즘을 이끌었던 푸시 라이엇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2월 모스크바 크렘린궁 인근 정교회 사원 ‘구세주 성당’ 제단에 올라가 3선에 출마한 푸틴의 재집권에 반대하는 시위성 공연을 펼쳤다. 멤버 5명 중 2명이 ‘종교적 증오에 따른 난폭행위’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후 여성차별 철폐와 낙태 금지 반대, 독재 저항을 내세운 이들의 공연활동은 활발하지 않지만 국제여성·인권단체들은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독일의 #아우프시라이는 피멘과는 성격이 다르다. 공격적인 표현주의 대신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나 방송 토론 등을 통한 페미니즘 확산에 주력한다. #아우프시라이를 이끄는 아나 카타리나 메스머(30)는 독일에서 뉴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여성이다. 경영진에서의 여성 할당비율 같은 것에만 신경 쓰는 소위 ‘엘리트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성 차별을 문제 삼는다.



 #아우프시라이를 비롯한 많은 페미니스트는 피멘의 반라시위 방식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1960년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진부한 시위라는 지적이다. 후기 중세시대의 성모 마리아 그림을 비롯, 터키의 낙태정책에 항의해 가슴을 드러낸 이스탄불 공연에서의 팝가수 마돈나, 프랑스혁명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포클랜드전쟁에서 영국 병사들 앞에 반라로 선 여성 등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될 수 없으며 단지 미디어의 먹잇감이 될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피멘의 이론적 토대 부족과 단순한 개념을 지적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반푸틴 록밴드 ‘푸시 라이엇’도 주목



 피멘 측은 “우리가 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성적 자극을 도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행동양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독일 피멘에서 활동 중인 차나 라마다니(29)는 마케도니아 출신 무슬림 이민자 가정의 딸이다. 자신의 삶 자체가 차별의 연속이었다고 여기는 라마다니는 “계속 지껄이기만 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여성들을 피멘에서 마침내 찾아냈다”고 말했다. 여성 해방을 설명해 주는 사회과학적 이론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피멘에 대한 논란이 큰 만큼 그 파급력도 이에 못지않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피멘식 반라시위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1세기형 페미니즘은 진화 중이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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