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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남자, 동성애 표현 달라졌네

중앙일보 2013.06.19 00:48 종합 23면 지면보기
패러디물에 등장한 이종석(오른쪽)·김우빈 커플. ‘학교 2013’이 종영한 후에도 CF에 함께 출연하며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SBS콘텐츠허브]


대중문화 속 동성애 코드가 진화하고 있다. 2010년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동성애 커플이 나오면서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동성애 금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일일 드라마에도 게이 커플의 커밍아웃이 등장했다. MBC ‘오로라공주’에서다. 막장 논란 속 임성한 작가의 작품답게 “불륜도 모자라 동성애라니, 홈드라마로 심하다”는 반응도 없지 않지만, 동성애 코드가 이제 주류 문화까지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는 설명이 많다.

영화 ‘은밀하게 …’ 드라마 ‘학교’
흥행 숨은 코드로 자주 인용돼
"꽃미남 통해 판타지 극대화" 지적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최근 흥행작들 뒤에 숨은 은밀한 동성애 코드다. 현재 전국 관객 500만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인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하 ‘은위’)와 연초 인기리에 방송된 KBS 드라마 ‘학교 2013’이 대표적이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왼쪽)과 이현우(가운데). 이현우는 김수현에게 은밀한 감정을 품는다. [사진 쇼박스]
 ‘은위’와 ‘학교’의 공통점은 동성애적 취향이 분명함에도 스스로 동성애적 자각이나 정체성이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신분을 위장한 최정예 남파 간첩들의 이야기인 ‘은위’의 이현우는 함께 파견된 선배 간첩 김수현을 동경한다. 롤 모델 선배에 대한 동경이자 은밀한 연정이다. 이현우의 그런 복잡하고 난감한 감정 표현을, 김수현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남한 정보요원들에게 추격당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건물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은근 케미돋는 커플(연인으로 잘 어울린다는 뜻)”이라며 이들의 관계를 주목하는 관람평들이 많다.



 영화 마케팅 전문가인 김종애씨는 “엔딩만 보면 전형적인 퀴어(동성애)영화의 한 장면 같다. 퀴어 코드가 은밀해서, 눈치를 채지 못하고 거부감 없이 넘어간 일반 관객들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인 웹툰에서는 퀴어코드가 보다 본격적으로 그려졌다. 일부 팬들은 최종훈 작가에게 두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춘 퀴어 번외편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학교’의 이종석·김우빈은 종영 후에도 인기가 식지 않는 대표적인 남남커플이다. CF에 동반출연하고, 팬 패러디물이 계속 나온다. 중학교 때 오해로 헤어진 둘이 재회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넌, 나 안보고 싶었냐? 난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며 울부짖다 와락 껴안고, 한 방에서 같이 잠드는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 이상, 연인에 준하는 밀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사이일까”라는 통상적인 질문이 전혀 없다. 주변에서도 이들의 유난한 관계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학교’는 성적·가난·따돌림·일진·폭력 등 사춘기의 모든 문제를 다루면서, 이성애가 전혀 없었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연애와 성 문제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최다니엘, 장나라 커플도 흔히 예상되는 러브라인 없이 쿨한 동료로 그려졌다. 일체의 이성애가 없고, 동성애적 관계가 자연스레 그려진 이채로운 드라마다.



 드라마평론가 공희정씨는 “‘은위’와 ‘학교’의 경우 사춘기를 배경으로 해 본격적인 동성애 코드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 동성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변화된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성애 자체에 대한 실제적 관심보다 꽃미남 커플을 통한 성적 판타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로맨스 코드에 그친다는 지적도 많다. 동성애자를 수용하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성찰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성 관객이 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특성을 반영한 듯 동성애 커플이 주로 남성에 국한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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