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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광주은행 매각, 최고가격 vs 지역정서 충돌

중앙일보 2013.06.19 00:34 경제 3면 지면보기
17일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 우리금융지주 자회사인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매각 방식에 관심이 집중됐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역적 정서 등을 고려하면 주관적일 수가 있다. 최고 가격으로 매각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이슈추적] 우리금융 민영화 딜레마
정부, 정치색 빼려 최고가 원칙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명분도
해당 지방선 "균형 발전이 우선"

 같은 날 국회 의원회관에선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개최한 ‘경남·광주은행 지역환원 분리 매각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강 의원을 비롯해 경남·광주 지역 참석자들은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최고가 매각 원칙은 재고돼야 하며, 해당 지역에 우선협상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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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국회의 두 풍경은 경남·광주은행 매각과, 더 나아가 우리금융 민영화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경남·광주은행 분리 매각은 박근혜정부가 26일 내놓을 우리금융 민영화 로드맵의 첫 단계 조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듯이, 경남·광주은행 매각이 꼬이면 우리금융 민영화도 헝클어진다.



 경남·광주은행 매각엔 경제논리와 정치논리가 정면 충돌한다. 신 위원장의 ‘최고가 매각’ 원칙이 경제논리라면 토론회의 ‘지방은행은 지역의 품으로’ 주장은 지역 균형발전을 앞세운 정치논리다.



 두 지방은행 중 경남은행 문제가 보다 복잡하다. 우선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이라는 변수가 있다.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은 모두 2010년 매각 때 인수의향서(LOI)를 써내며 의욕을 불태웠던 경력이 있다. 두 은행은 2011년 각각 BS금융지주와 DGB금융지주로 전환했다. 2012년 말 기준 자산은 BS지주가 46조3000억원, DGB지주가 37조8000억원. 두 곳 중 경남은행(자산 28조9000억원)을 인수하는 곳이 지방 금융권의 확실한 맏형이 된다. 두 금융사는 오래 전부터 경남은행 인수전을 준비해 왔고, 지금도 의지가 확고하다. 인수전에 쓸 실탄도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다. BS지주 관계자는 “경남은행과 부산은행은 지역 정서가 비슷해 힘을 합치면 시너지가 클 것”이라며 “점포 중복에 대한 우려를 감안해 그동안 경남지역 점포 확장을 자제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 DGB지주 관계자는 “대구은행과 경남은행은 점포가 전혀 겹치지 않고, 기업고객의 업종도 서로 달라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도 시너지를 낼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대구은행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 부산은행은 새누리당 지지세가 탄탄한 부산이 각각 기반이다. 두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역 은행이 경남은행을 가져오기를 원한다. 자칫 여권 내부의 지역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부산은행 관계자는 “경남은행 인수전이 제2의 동남권 신공항처럼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추진됐던 동남권 신공항은 부산지역 정치인과 대구지역 정치인들이 서로 자신들 지역으로 유치돼야 한다며 대립하는 바람에 국론 분열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경남지역 분위기도 주요 변수다. 지역에선 이미 상공인들이 중심이 된 인수추진위원회가 컨소시엄을 준비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경남지역 출신 국회의원들도 “경남은행은 경남지역으로 환원돼야 한다”며 힘을 보태고 있다. 홍 지사는 지난 1월 일본에서 재일교포 경제인들을 만나 경남은행 인수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신 위원장이 제시한 ‘최고가 매각’ 원칙도 이런 고민 끝에 나온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최고가 매각 방식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지역 간 분쟁의 빌미를 차단할 수 있다. 최고가격을 적어낸 인수 후보자가 은행을 가져가는 만큼 “특정 지역을 정치적으로 고려했다”는 식의 특혜 시비에 대한 방어망이 된다.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한다는 명분도 있다. 남상구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공자위 입장에서는 최고가 낙찰제로 가장 비싸게 써낸 곳에 지방은행을 판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지 않으면 배임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최고가 매각 방식엔 함정이 있다. 자금 동원력이 약한 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수조원으로 예상되는 은행 인수 자금 마련은 지역 상공인들에게 벅찬 일이다. 경남과 광주 지역이 이 방식에 반발하는 이유다.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상 ‘산업자본 규제’도 걸림돌이다. 현행 법에는 산업자본이 지방은행 지분을 15%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공자위 관계자는 “지역 상공인들이 자금을 여러 곳에서 모은다고 해도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면 산업자본으로 판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남·광주은행 매각은 복잡한 퍼즐이다. 우리금융 민영화라는 경제적 관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산·대구·경남과 광주·전남의 민심 관리가 달려 있다. 남상구 위원장은 “공자위 차원에서는 정치적인 문제나 지역정서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건 청와대나 정책당국이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지방은행 민영화가 박근혜정부의 정책추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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