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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87> 복마전 서울시

중앙일보 2013.06.19 00:08 종합 27면 지면보기
1989년 11월 1일 서울시청 2층에 공사계약 시민열람실이 문을 열었다. 현판식 후 열람실 운영 방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고건 서울시장(앞줄 오른쪽에서 셋째)과 신학진 서울시정자문위원장(둘째). [사진 고건 전 총리]


서울시장에 임명된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1988년 12월 중순. 권완 서울시 목동지구개발사업소장이 결재 서류를 들고 시장실로 왔다. 목동 신도시 개발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던 시기다. 목동사업소는 그곳에서 이뤄지는 각종 공사를 지휘하는 부서였다. 권한이 막강했다. 그가 건넨 서류를 쭉 훑어봤다. 공구별 공사 발주 일람표였다. 10여 개 공사명과 규모, 예산이 쓰여 있었고 맨 오른쪽 칸은 비어 있었다. 아무리 서류를 들여다봐도 공란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권 소장이 말을 꺼냈다.

"목동 개발 발주업체 정해 달라"는 말에 깜짝



 “시장님, 이 공사들을 발주해야 하는데 어느 업체에 줘야 할지 거기다 써 주십시오. 아니면 직접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황당한 소리였다.



 “아니, 내가 공개행정 한다고 했잖아요. 공개해요.”



 권 소장의 표정이 희한했다.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꼭 떫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장실을 나갔다. 일주일 후 권 소장이 다시 결재 서류를 가지고 시장실에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시장님이 다 정해 주셨습니다. 큰 거 몇 건만이라도 정해 주십시오.”



 내 지시가 먹히지 않았다. 내 얘기를 못 믿어서 그랬나, 아니면 ‘시장이 사업소장을 믿지 않는구나’란 자격지심에서 그랬나. 둘 중 하나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니, 이 사람이. 공개 경쟁하라는데 왜 딴 소립니까.”



 권 소장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가 나가고 시장실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했다. 사실 권 소장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서울시가 굵직굵직한 공사를 그런 식으로 발주해 왔다는 의미였다. 당시 서울시청을 두고 사람들은 복마전(伏魔殿)이라고 했다. 업체와 공무원이 결탁해 온갖 비리를 저지른다는 비아냥이었다. 국정감사가 열릴 때마다 서울시는 국회와 언론으로부터 두드려 맞았다.



 시장으로 취임하며 “서울시가 복마전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내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입찰 경쟁 없이 한 업체와 수의 계약을 맺거나 몇 군데 기업을 사전에 선정한 다음 경쟁을 거쳐 계약(지명 경쟁 계약)하는 방식을 실질적인 공개 경쟁 계약으로 바꿨다. 공사의 특성상 업체의 자격요건을 엄격히 제한해야 하는 경우에만 지명 경쟁 방식을 썼다. 물론 특정업체 한 곳을 사전에 찍어 놓은 다음 ‘나머지 몇 개 업체는 알아서 데리고 오라’는 식이었던 예전의 지명 경쟁 방식은 철저히 배제했다.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수의 계약과 지명 경쟁 계약만 주로 해왔던 시청 담당 공무원들이 우왕좌왕했다. 입찰 경쟁을 붙이려면 시에서 공사 설계서를 공개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민했던 것이다. 인터넷이 없었던 때라 시청에 공사계약 시민열람실을 만들었다. 공사 설계서와 발주 절차 그리고 입찰 결과와 계약서까지 모든 과정을 공개했다. 건설업자는 물론 시민들도 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인사 심의와 정책 결정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특히 이권과 관련된 방침을 결정할 때는 그 과정을 무조건 공개하도록 했다. 시장의 판공비도 공개했다. 시의회가 없을 때였다. 더욱 공개 행정, 참여 행정이 중요했다. 하나하나 고쳐 나가는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1989년 서울시는 커다란 권력형 비리의 중심에 말려 들어갔다. 바로 수서택지 특혜분양 사건이었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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