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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의 대전환 … 성범죄 확인되면 고소 없어도 처벌

중앙일보 2013.06.18 01:40 종합 1면 지면보기
헤어디자이너 박준(62)씨의 미용실에서 근무하던 여직원 A씨는 지난 1월 박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4월 박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가 박씨와 합의한 뒤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이 몇 달만 늦게 발생했다면 박씨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피할 수 없었고, 조사 결과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형법 친고죄 조항 내일 폐지
애초엔 여성 명예보호 장치
범죄 징벌 막는 역작용 불러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나중에 고소를 취하하면 성범죄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친고죄 조항이 60년 만에 전면 폐지되고 이런 내용의 성범죄 처벌법 개정안이 19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3자가 고발하거나 검경이 인지 수사에 착수해 성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국내 형법은 1953년 9월 제정 때부터 성범죄에 대해 친고죄 조항을 뒀다. 피해자인 여성의 명예와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범죄는 사회적 범죄라기보다 개인 문제로 여겨졌다. 가해자들이 재판에 넘겨진다 하더라도 1심 선고 전까지 합의가 이뤄지면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 가해자들이 돈으로 합의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협박하는 등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백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난 3년간 접수한 451개의 상담 사례를 분석해 보니 가해자의 협박이나 종용에 의한 피해가 139건, 수사·재판기관에 의한 피해가 68건 등 2차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국내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이 10%대에 그치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2007년 조두순 사건으로 성폭력 범죄의 친고제 폐지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 결과 2008년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 친고죄가 폐지됐다. 또 2011년 미성년 장애인 성폭행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영향으로 장애인 성범죄 친고죄 역시 그해 폐지됐다.



 그에 더해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친고죄 조항까지 폐지된 데는 국제사회와 정치권, 법조계의 공동 노력이 주효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과 2011년 한국 정부에 친고죄 폐지를 권고했다. 지난해 여성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돼 관련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회 아동·여성대상 성폭력대책 특별위원회(위원장 이미경 의원)가 출범했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친고죄를 폐지해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이슬람권을 빼고 성범죄에 친고죄 조항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다. 법무부 유태석 검사는 “일본에서도 지난해 내각부에 설치된 여성폭력 전문조사회가 친고죄 폐지를 권고하는 성범죄 대책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말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을 지낸 김진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는 가해자뿐 아니라 수사·재판 과정에서도 발생한다”며 “전담 수사관과 전담 재판부를 늘려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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