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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금 1억" … 어린이집 전문 복덕방도

중앙일보 2013.06.18 01:12 종합 8면 지면보기

어린이집을 사고파는 세상이다. 수천만원의 권리금을 회수하려다 보니 부실 보육으로 이어진다. 보육교사 자격증 따기도 쉽다.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어린이집 개설 자격을 엄격히 심사하고, 교사 양성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 송파구 민간어린이집, 원생 28명, 차량운행 안 해도 됨, 권리금 1억1000만원…” “경기도 용인시 아파트 내 가정어린이집, 원생 20명, 권리금 6700만원, 살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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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과 달리 아무나 살 수 있어 … 투자금 뽑으려 편법 유혹에 쉽게 노출



 어린이집 매매 전문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이다. 아이 한 명에 최고 500만원의 권리금이 붙어 있다. 어린이집 관련 사이트에는 이런 매물이 널려 있다. ‘어린이집 전문 복덕방’이 있을 정도다.



 현행법상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실무경력을 채우면 누구나 원장이 돼 어린이집을 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된다. 정부의 전국보육실태 보고서(2012)에 따르면 민간어린이집의 35.6%, 가정어린이집의 30.7%가 개설할 때 권리금을 줬다. 평균 권리금은 민간어린이집 6686만원, 가정어린이집 3223만원이다. 반면 유치원은 사립학교법에 따라 매매를 할 수 없다. 유치원을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하면 학부모와 원생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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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을 차릴 때 들어간 거액의 권리금을 회수하려다 보면 부실 급식이나 회계 조작 등으로 이어진다. ‘어린이집 컨설팅 전문업체’의 상담직원은 “권리금 액수는 어린이집의 1년 순수익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올 들어서야 신규 어린이집 부채비율을 50% 미만으로 제한한 정도다. 서울 구로구청 어린이집 담당자는 “지침에는 고액 권리금 거래가 적발되면 어린이집 정원을 줄일 수 있다지만, 권리금을 확인할 근거가 없고 고액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은 시설 기준과 지역 수요에 맞으면 인가한다. 원장의 교육관이나 자질 등을 따지지 않는다. 정원 20명 이하 가정어린이집의 경우 원장을 보육교사로 인정한다. 그러나 원장이 교사 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울 노원구 가정어린이집 이모(32) 교사는 “원장이 자신이 돌봐야 하는 애 2명을 나한테 맡겨 5명을 봤다. 돌이 지나지 않은 애 5명을 혼자서 어떻게 보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허술한 조항이 어린이집을 쉽게 열 수 있게 한다. 교사 인건비 지원을 늘려서라도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교사들은 지적한다.



 또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어린이집에서 살림을 못하게 돼 있지만 원장 가족이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도 버젓이 ‘살림 가능’이라는 광고가 올라와 있다. 이 경우 전기요금·난방비 등이 어린이집 운영비에 포함된다.



 어린이집이 원장의 가족 사업이 돼버리는 경우도 많다. 원장 남편이나 아들이 차량 운전을 맡고, 딸이나 며느리가 보육교사가 된다. 전국 어린이집의 26%에 원장의 가족·친인척이 참여하고 있다. 가족이 직원이다 보면 긴장감이 떨어지기 쉽다. 서울 송파구 한 어린이집 교사는 “원장 남편이 어린이집 통학버스 운전을 하는데, 가끔 아침에 술 냄새를 풍기지만 항의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 부부는 종종 애들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싸우기도 한다. 김포의 한 어린이집은 며느리한테 물려주려 한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장진환 정책위원장은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일수록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대책 없이 어린이집 원장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어린이집 개설 자격을 엄격히 심사하고, 운영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미순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운영위원장은 “아이들을 맡고 있는 보육시설인데 너무 쉽게 인가를 내주는 게 문제”라며 “교육기관인 유치원 수준으로 인가 절차를 강화하고,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어린이집의 비율을 점차 줄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원여대 이석순(유아교육학) 교수는 “어린이집은 상가가 아니라 교육기관”이라며 “개설 자격을 강화하고 매매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신성식 선임기자, 이지영·고성표·장주영·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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