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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 잠실 주경기장은 도쿄 국립경기장이 부럽습니다

중앙일보 2013.06.18 01:04 종합 12면 지면보기

잠실 주경기장과 도쿄 국립경기장은 한·일 양국 체육의 성지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이보다 24년 앞서 열린 1964년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곳이다. 그러나 이를 관리·활용하는 데는 큰 차이가 있다. 도쿄 국립경기장은 잠실 주경기장보다 26년이나 오래됐지만 더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경기장 이미지, 활용도, 비전 등 모든 면에서 잠실이 도쿄 국립경기장에 배워야 한다.



공사를 알리는 차단물이 잠실 주경기장 앞을 가로막고 있다. 잠실 주경기장은 체육시설보다는 콘서트 무대로 더 유명하다. [김성룡 기자]

[이슈추적] 올림픽 치른 한·일 '체육의 성지' 관리·활용 실태 보니 …
잠실, 체육행사 1년에 58일뿐 … 큰 경기가 연·고전
예산 부족, 장비 낙후해 올핸 육상 공인기록경기 못 치러
한때 중국 자본에 매각설도 … "콘서트장 전락하나"

잠실 종합운동장은 주경기장·야구장·실내체육관·수영장 등을 포괄하는 통칭이다. 야구장은 프로야구 LG와 두산의 홈구장으로 사용된다. 실내체육관도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홈구장이다. 수영장은 시민에게 개방된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주경기장은 활용도가 가장 떨어진다.



 잠실 주경기장을 찾아가 봤다.



잠실 주경기장의 관람석이 훼손된 채로 방치돼 있다. 사용 빈도가 적어 예산이 줄고 시설이 낙후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김성룡 기자]
 ◆활기 잃은 잠실 주경기장=출입문 관리가 제대로 안 돼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관중석 곳곳에 나사가 뽑혀 덜렁거리는 의자가 눈에 띄었다. 몇몇 의자에는 종교단체가 행사를 하면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아직 붙어 있었다. 2008년에 안전 문제가 불거졌지만 예산 부족으로 방치된 사실이 2010년 소방방재청 점검 때 지적되기도 했다. 본부석 하단 지하 1층에 위치한 사무실들은 대부분 조명이 꺼져 있고, 일부 생활체육단체가 입주한 곳을 제외하면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체육시설로의 활용도 미미하다. 지난해 잠실 주경기장의 대관일은 142일이었다. 이 중 체육행사로 쓰인 건 58일에 불과했다. 육상은 마라톤 대회가 대부분이었다. 트랙과 필드를 모두 사용하는 육상경기로 썼던 건 서울특별시장기 대회 정도다. 올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대한육상경기연맹에 공인도 받지 않았다. 육상경기연맹이 기록을 인정하는 공식 대회를 열 수 없다. 육상경기를 치르기 위한 각종 장비도 낙후됐다.



 축구도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친선경기 등이 열렸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빅매치는 없었다. 가장 큰 스포츠 행사가 연세대와 고려대의 정기전이었다.



 콘서트 무대로 대여된 날은 35일이었다. 지난해에는 레이디가가의 내한공연과 ‘SM타운 라이브월드 투어’ 콘서트가 열렸다. 지난 1일에도 이문세 콘서트에 5만 명이 들어찼다. 이 밖에 전국장로회총연합회 체육대회, 재경영광군향우회 체육대회,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 촬영 등 기타 행사로 활용된 날도 지난해 49일이나 됐다.



 6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격이 떨어지는 행사가 많고 체육시설 본연의 기능이 크게 저하돼 한국 체육의 성지라는 자존심에 금이 갔다. 이문세 콘서트를 관람한 이의령(41·회사원)씨는 “축구 경기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하고, 잠실은 이제 콘서트장으로 쓰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진재훈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운영과장은 “대회를 유치한다고 해도 주변 숙박시설이 부족해 선수 및 관계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시 재정 지원이 많지 않아 보수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사용이 뜸하니 지원이 부족하고, 그래서 관리가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활기찬 도쿄 국립경기장=지난 4월 10일 방문한 도쿄 국립경기장에서는 고교 육상 선수들이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재일동포 스포츠 평론가 신무광씨는 “경기장 인근 중·고 육상부는 실비 수준의 금액을 내고 예약하면 트랙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1일 열린 일왕배에서 가시와 레이솔이 우승을 차지했다. 도쿄 국립경기장에는 4만6480명이 모였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


 매년 굵직한 경기도 꾸준히 열린다. ‘국립에서 열리는 원단(元旦)의 결승전’이라는 말도 있다. 1969년 1월 1일 일왕배 축구 결승전이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이후 매년 1월 1일 일왕배 결승전을 이곳에서 여는 전통을 이르는 말이다. 1976년부터는 전국고교축구선수권도 치르고 있다. 고교 대회지만 결승전에는 4만 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찬다. 여자축구와 대학축구 결승전도 이곳에서 열린다. 일본 축구선수들에게 도쿄 국립경기장은 언젠가 꼭 한번 뛰고 싶은 꿈의 무대다.



 1980년부터 2001년까지 20년 넘게 도요타컵(유럽-남미 대륙 챔피언 클럽 간 경기)이 이곳에서 개최됐다. 2008년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2009년과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열렸다. 주요 국제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국제 기준에 맞춰 경기장이 관리된다.



 요즘도 도쿄 국립경기장은 활발하게 운영된다. 지난 4일 일본과 호주의 월드컵 최종예선은 사이타마에서 열렸지만 도쿄 국립경기장에도 1만5000여 명이 모여 단체 응원을 했다. 9일에는 J리그(일본 프로축구) 20주년을 기념해 일본과 이탈리아의 올드 스타가 맞붙는 레전드 올스타전을 치렀다.



 J리그 경기도 자주 열린다. 특정 구단의 홈구장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도쿄 인근의 팀은 물론 나고야, 시미즈 등 지방 구단이 이곳에서 정규 경기를 한다. 축구뿐 아니라 육상과 럭비의 주요 경기도 이곳에서 열린다. 2010년 154일 활용된 도쿄 국립경기장에는 연간 89만 명의 관중이 들어왔다. 유료 입장객도 62만 명에 이른다. 제1·2 체육관을 합치면 국립경기장을 방문한 연인원은 200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도쿄 국립경기장 운영은 일본스포츠진흥센터에서 한다. 이곳에는 국립경기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영업팀에 7명이 근무하고 있다. ‘건전한 행사는 무엇이든 유치한다’는 원칙 아래 마라톤 대회, 축구 경기, 초·중·고 육상 선수권을 유치한다. 브레이크댄스 대회, 모터쇼, 콘서트, 클래식 음악회, 종교 집회에도 문호를 개방한다. 하타노 마키코 일본스포츠진흥센터 관보실 담당자는 “경기장 대관을 원하는 단체가 의외로 많다. 이익을 내는 것보다 널리 활용되는 게 중요하므로 대여료를 적절한 수준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쿄 국립경기장은 흑자는 내지 못하지만 적자 폭은 잠실 종합운동장보다 훨씬 작다. 2011년에는 총수입이 한화로 환산해 87억6900만원, 총지출은 92억4700만원으로 적자 폭은 4억7800만원에 불과했다.



잠실 종합운동장은 최근 5년간 적자가 523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야구장 광고료 인상, 주차장 직영화 덕분에 적자 폭이 줄었지만 2012년에도 20억원의 손실을 봤다. 잠실 종합운동장 수익의 상당 부분이 야구장에서 나왔음을 감안하면 주경기장과 도쿄 국립경기장의 실질적인 활용도 차이는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엇갈리는 미래=지난 4월 ‘서울시가 잠실 종합운동장 일대를 중국 자본에 매각한다’는 설이 돌았다. 강남 한복판의 노른자위 땅이지만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제원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주경기장과 야구장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관광호텔이나 컨벤션센터를 지어야 한다는 용역 결과가 2003년부터 수 차례 나왔지만 체육계의 반대와 국민 정서 때문에 추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7월 20일 개막하는 동아시아연맹선수권 일부 경기를 잠실 주경기장에서 치르기로 했다. 7월 28일에는 JTBC가 생중계하는 한·일전이 이곳에서 열린다. 잠실 주경기장이 축구장으로서 기능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축구계의 염원이 담긴 결정이다.



 이용수(체육학과) 세종대 교수는 “잠실 주경기장 개발에는 몇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올림픽이 열린 장소라는 상징성이 훼손되면 안 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장소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열린 경기장을 개축한 베를린 올림픽슈타디온이었다. 잠실 주경기장을 지금처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적절한 개축과 개발을 통해 다양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잠실 주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서울 연고 프로축구단 창단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 국립경기장은 베를린 올림픽슈티디온과 비슷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오는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도쿄가 선정되면 도쿄 국립경기장을 개축해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하타노 관보실 담당자는 “개축을 대비한 설계도에는 경기장의 상업적 활용에 대한 내용도 담긴다. 경기장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문화·상업 시설로서의 활용 방안도 꼼꼼하게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송지훈, 오명철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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