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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원작 자체가 거대한 오페라였다

중앙일보 2013.06.18 00:36 종합 20면 지면보기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69). 전세계 1억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 작곡가다. 세기의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미스사이공’이 그의 손에 의해 빚어졌다. 두 작품 공히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문제작이지만,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선율이 있었기에 30년 가까이 장수할 수 있었다.


뮤지컬 작곡가 쇤베르그
소설 속에서 리듬감·화음 느껴
클래식·팝 경계없이 음악 즐겨
한국 공연 정성화 실력 뛰어나

 12일 영국 런던에 있는 ‘레미제라블’ 오리지널 제작사(CML) 사무실에서 쇤베르그를 만났다. 일흔을 눈앞에 둔 노령의 예술가는 부드럽지만 예리했다. 온화하면서도 또렷하게 자신의 견해를 전달했다. 그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앤드류 로이드 웨버(65)와 더불어 세계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힌다.



쇤베르그는 요즘 1997년 선보인 뮤지컬 ‘마틴 기어’의 리메이크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발레 작품도 구상중이다. 그는 “익숙한 것을 반복해선 안 된다. 모험심은 예술가의 덕목”이라고 했다. [사진작가 김신욱]
 -1985년 초연된 ‘레미제라블’이 지금까지 롱런 중이다.



 “런던에선 85년 처음 공연됐지만 난 78년에 이 작품을 썼고, 프랑스에선 80년에 초연됐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빅토르 위고 원작의 힘이다. 소설 자체가 무엇을 넣고 뺄 게 없이, 완벽함 그 자체였다. 책을 읽는 와중 그 갈피에서 난 리듬·화음·세기 등을 감지했고, 다 읽고 나선 마치 한편의 거대한 오페라를 본 듯한 감흥을 느꼈다. 어쩌면 난 소설에 숨어 있는 음악성을 그대로 악보로 옮겨 놓는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원작을 능가하는 가공은 없다.”



 -작품에 있는 ‘I Dreamed a Dream’ ‘On my Own’ 등은 노래 자체로 너무 애절하다.



 “아름다운 곡을 쓰기 위해 특별히 공을 들이진 않는다. 난 그저 대본에 충실했을 뿐이다. 노래가 듣기 좋았다면 그건 그 지점에, 그 상황에 적합한 선율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난 작곡이 잘 안 될 때면 대본을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섣불리 재주를 피워선 안 된다. 모든 것의 답은 기본에 있다. 기초가 튼실해야 변용이 가능하고 상상력이 발휘되며 창의성도 나온다.”



 -‘레미제라블’ 새 버전(version)이 2010년부터 공연되고 있다.



 “25주년에 맞춰 초창기 회전무대 대신 영상을 많이 활용한 새 공연이 탄생했다. 무대 예술도 박제화되면 안 된다. 근간은 유지한 채 세상의 변화와 관객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런 능동성이라면 ‘레미제라블’ 100주년 공연도 성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영화로도 크게 성공했다.



 “처음엔 그저 노래 한두 곡 삽입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 작업이 원작 뮤지컬을 그대로 재현하고, 음악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내 역할도 점점 더 커졌다. 꼬박 18개월을 매달렸다. 무엇보다 예술이란 ‘혼자’가 아닌 ‘여럿’에 의한 협력에 의해 완성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러셀 크로와 앤 헤서웨이와 같은 배우가 왜 스타인지도 알게 됐다.”



 헝가리 출신인 쇤베르그는 어린 시절 프랑스로 이민 왔다. 피아노 조율사였던 아버지 덕에 그는 일찍이 음악에 눈을 떴다. 다섯 살 때 오페라 전곡을 외울 만큼 재능도 뛰어났다. 대학에선 수학을 전공했는데, 록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오페라·발레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뮤지컬 작업을 해왔다.



 “그건 내게도 미스터리다.(웃음) 난 네 살 때부터 오페라 작곡가를 꿈꿨지만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에 탐닉하고, 스티브 원더와 레이 찰스를 들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내 음악에 가장 영향을 끼친 건 자크 오펜바흐(1800년대 활동한 프랑스 희극의 창시자)지만 난 지금도 레이디 가가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좋아한다.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두지 않았던 게 내 음악적 자양분이 아닐까 싶다.”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의 대본·가사는 모두 알랭 부브릴이 썼다.



“알랭 부브릴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어느새 45년이 됐다. 그를 만나면서 내 음악은 날개를 달게 됐다. 어떤 대본을 보며 상상하는 장면에서 그와 나는 정확히 일치하곤 했다. 우린 서로 말이 필요 없는 형제다. 이토록 통하는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레미제라블’ 한국 공연도 성공적이다.



 “얼마 전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레미제라블’이 많은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 들었다. 축하 공연 동영상도 보았는데, 정성화의 노래는 역시 뛰어났다. 오디션 때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던 것을 확인해 반가웠다.”



런던=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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