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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일본은 하나가 아니다

중앙일보 2013.06.18 00:33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윤호
논설위원
16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의 한 중학교 앞. 100여 명의 학생이 교문이 열릴 때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일본이 좋아서, 일본에서 뭔가 배우기 위해 일본유학시험(EJU)을 보려는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비해 수험생을 태우고 온 차량 행렬이 짧아 보였다.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시험장으로 향하는 인파도 눈에 띄게 줄었다. 교실마다 결시자도 제법 됐다고 한다. 매년 6, 11월 세계 15개국에서 치러지는 EJU는 일본의 대학에 유학하려는 외국인이 보는 시험이다. 국내 EJU 응시자는 2008년 6월 2000명을 넘었으나 2011년부터 내리막이다. 지난해 11월엔 1278명이 봤는데, 이 중 서울의 응시자가 954명이었다. 서울에서 EJU 응시자가 1000명에 미달한 것은 7년 만이다.



 유학생 감소 원인으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엔고가 흔히 꼽힌다. 요즘엔 여기에 하나가 더 보태졌다. 격렬함을 더해가는 우익단체들의 반한 시위가 그것이다. EJU가 치러지던 16일 도쿄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선 우익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반한 시위가 벌어졌다. 또 이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대항시위가 겹쳐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그 과정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재특회 회장이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자 우익단체 회원들은 ‘신주쿠경찰서 앞에 모여 항의하자’는 트위터를 연신 띄워댔다.



 재특회는 자신이 누려야 할 혜택을 외국인, 특히 재일 한국인들이 가로챘다고 믿는다. 그러나 재일동포들에게 물어보라. 일본에서 특권을 누려왔는지, 차별을 받아왔는지. 하기야 재특회가 논리를 추구하는 이론단체인가. 장기불황의 고통, 국제적으로 희미해진 존재감, 그리고 개인적인 불평불만들이 쌓이고 쌓여 정서적 변비에 걸린 이들이 떼로 모인 곳 아니겠나.



 그들의 거친 모습을 보고 누가 귀한 자식을 안심하고 일본에 유학 보내겠나. “조선인을 죽여라” 하는 그들의 언어 도발은 북한의 위협과 어깨를 겨룬다. 이대로라면 외국인 입장에서 일본은 더 이상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아무리 선진국이고, 아무리 배울 게 많아도 외국인에겐 늘 신변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다.



 다행스러운 건 일본 내에서 그들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란하게 목소리를 내진 않지만 양식 있는 일본인은 재특회에 큰 거부감을 보인다. 보름쯤 전 도쿄에서 만난 일본 언론인들은 한결같이 재특회의 과격한 헤이트 스피치(증오 연설)를 비판했다.



 일본어엔 이치마이이와(一枚岩)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하나의 큰 바위다. 단단히 결속돼 있는 조직이나 그런 상태를 가리킨다. 보수 정치인과 우익단체의 언행만 보면 일본은 마치 빈틈 없는 우익의 바위덩어리로 비칠 법하다. 하지만 그게 일본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일본도 다양성과 원심력이 작동하는 사회다. 그런 힘이 붙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또 일본인도 일본인 나름이다. 양심적인 일본인만큼 양심적인 사람도 없지만, 얍삽한 일본인보다 더 얍삽한 인간도 없을 것이다. 예의 바른 일본인보다 더 예의 바른 이도 없겠지만, 추악한 일본인만큼 추악한 인간 역시 없지 않나 싶다. 극단과 극단이 하나의 사회에 공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본은 어떻다, 일본인은 어떻다 하며 한마디로 말하는 건 위험할뿐더러 정확하지도 않다. 우리를 비롯해 모든 나라가 다 그렇지 않나.



 결국 거국적으로 끓어오른 반한과 반일이라는 것도 극단과 극단이 맞부딪쳐 일어난 마찰열로 양국 전체가 달아오른 현상 아닌가. 이를 본질로까지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젠 몸통이, 뿌리가 무게를 잡고 균형을 찾을 때가 됐다. 그래야 가장자리에서 찰랑거리는 잔가지가 몸통을 뒤흔들지 못한다. 그게 일본이 좋아서, 한국이 좋아서 서로를 오가는 젊은이들을 위해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



남윤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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