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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청와대 비서실에 에어컨을 허하라

중앙일보 2013.06.18 00:32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절약 습관은 아마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듯하다. 1979년 10·26 시해사건이 난 뒤 박정희 전 대통령 집무실을 정리하던 총무비서실 직원이 화장실 변기 물통 속에서 벽돌 두 장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당시의 청와대는 에어컨과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도 여름에 무더울 때는 집무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선풍기와 부채로 버텼다. 이따금 파리가 날아들면 손수 파리채를 휘둘렀다. 겨울에도 아주 추울 때만 난방을 가동했다. 비서들은 내복을 껴입고 수시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한기를 달랬다. 하다못해 연도가 인쇄된 대통령 전용 메모지도 다 떨어질 때까지 썼다. 김두영(73) 전 청와대 비서관은 “고(故) 박 대통령께서 ‘1974년’이라고 인쇄된 종이에 75년 말 메모해 주신 것을 지금도 가보 삼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청와대도 에어컨을 틀 분위기가 아니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워낙 솔선수범해서다. 한낮에 밖에 있다가 비서실 건물(위민관)에 들어서면 후끈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한다. 지은 지 40년 넘은 두 건물은 공조 기능이 약해 특히 더하다. 좁은 공간에 사람 밀도마저 높아서, 한 비서관은 “인체가 발열기(發熱機)라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여름 더위, 겨울 추위 중 어느 게 싫은지는 사람 따라 다를 것이다. 신영복 교수(성공회대)는 감옥만큼은 겨울 추위가 낫다는 쪽이다. 여름 감옥의 비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한다.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만든다. 옆사람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미워하고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그래서 어제 시작된 장마가 반갑다는 얘기가 청와대 비서들 사이에서 나온다. 열기가 다소 식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40년 전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는 건 왠지 마뜩하지 않다. 대통령 눈치 때문이든 전력난을 감안해서든, 그렇게 기계적으로만 굴 일인가 해서다. 청와대 비서진처럼 극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에어컨도 켜고 시원한 가운데 정신집중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상쾌한 머리로 고질적인 전력난 해소 방안이나 다른 국정현안을 고민하는 게 국가적으로 더 이익일 것이다.



 정부청사도 마찬가지다. 국무총리가 장·차관에게 부채를 돌리는 게 모양이야 나겠지만, 정작 국민이 바라는 것은 부채 아닌 에어컨을 돌려서라도 일 잘하고 더 커다란 예산을 절감하는 모습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변기에 벽돌을 넣은 것도 후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게 해주고 싶어서였지 않을까.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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