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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음악가 슈베르트' 만든 오스트리아 무상 교육

중앙일보 2013.06.14 03:40 11면


일반적으로 작곡가들의 작품번호는 Opus의 약어인 Op.를 쓰는데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경우 후대의 인물이 이를 연대순으로 정리해 대개는 자신의 이니셜과 함께 표기한다.



모차르트의 경우 쾨헬이 그의 작품을 총 626개로 정리해 번호를 매겼다. 볼프강 슈미더는 바흐의 작품번호를 BWV로, 안토니 판 호보켄은 하이든의 작품번호를 Hob로 붙였고 오토에리히 도이치에 의해 정리된 프란츠 슈베르트의 작품에는 D가 붙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슈베르트의 작품 수는 998개 즉 D. 998번까지 전해진다. 모차르트보다 300개 이상 많은 곡을 남긴 슈베르트가 일생을 통해 작곡으로 번 돈은 최근 환율로 환산해도 100만원 남짓했다 하니 그의 음악인생을 지탱해 준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797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14남매 중 13번째로 태어난 슈베르트. 남매 중 아홉이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곡 소리가 끊일 날 없었던 그의 가정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일찍이 교육에 뜻을 두고 초등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맡았던 아버지 프란츠 데오도르 슈베르트와 결혼 당시 가정부였던 어머니 엘리자베트는 정직하고 기품 있는 부모였고 저녁마다 가족들이 모여 합주를 즐겼는데 슈베르트는 바이올린 또는 비올라를 맡았다. 합주 도중, 가끔 소리가 엉키면 슈베르트는 늘 그것을 먼저 알아챘지만 누가 틀렸는지를 말하지는 않고 “아버지, 어디가 좀 이상한 것 같아요.”라고 조용히 얘기하는 예의 바른 어린이였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아버지와 자상한 형으로부터 기초교육을 받은 슈베르트는 지역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부터 오르간 연주법과 음악이론을 배운다. 그의 나이 15세가 되던 1808년에는 성당이나 궁정에서 합창을 할 아이들을 양성하는 빈 궁정소년합창단의 단원이 되어 장학금으로 평민을 위한 기숙학교인 슈타트콘빅트에서 공부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는 영화 아마데우스에도 등장하는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로부터 음악지도를 받는다. 바이올린 악장을 맡은 그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지휘자였던 루치츠카가 없을 때는 지휘봉을 잡았고 아무도 모르게 작곡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오선지가 없으면 잡기장과 헌 봉투에도 그의 음악을 써내려 갔다.



16세가 되자 변성기가 되어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없게 된 슈베르트는 사범학교로 옮겼고 1824년 가을에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음악 교육에 많은 돈이 필요한 우리의 현실과는 달리 실력과 가능성만을 믿고 입학을 허용하고 무상으로 학생을 가르쳤던 1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교육정책을 보면 오스트리아의 명성이 그냥 얻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훗날 슈만이 “그가 닿는 곳마다 음악이 흐른다.”고 격찬할 정도로 위대한 유산을 남긴 슈베르트. 가정과 성당, 그리고 학교에서 빈부에 차별을 두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접하고 배울 수 있게 해준 환경이야말로 슈베르트를 있게 만든 힘이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5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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