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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39> 강원도 양구 DMZ 펀치볼 둘레길

중앙일보 2013.06.14 03:30 Week& 6면 지면보기
1 양구군 해안면 동남쪽에 있는 먼맷재에 올라 바라본 펀치볼 전경. 1000m가 넘는 산에 둘러싸인 산악 분지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산세 가운데 옴폭 들어간 부분이 서희령이다. 서희령 뒤로 보이는 산은 북한 땅이다.



60년 전 지뢰밭의 아이러니 … 길 양옆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

강원도 양구에 있는 ‘펀치볼(Punch Bowl)’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전사자를 남긴 격전지다. 적군 1만여 명, 아군 2000여 명이 이 산악 분지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펀치볼이란 이름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한 외국인 종군기자가 붙인 이름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빙 둘러싸고 있는 지형이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리 부른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산악 분지지형 둘레를 걷는 길 이름이 DMZ 펀치볼 둘레길(dmztrail.kr)이다. 산림청이 2010년 조성을 시작해 지난해 마무리했다. 워낙 전방지대에 있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고, 악명 높은 전적지여서 길가에 얽힌 이야기도 허다하다.



양구 읍내에서 453번 지방도로를 타고 돌산령터널을 지나면 펀치볼이 시야에 들어온다. 펀치볼은 62.15㎢가 되는 산악 분지지형으로, 행정구역은 양구군 해안면에 속한다. 사방을 둘러싼 산줄기는 해발 1000m가 넘고 산에 둘러싸인 마을인 해안면도 고도가 400~500m가 된다. 이 해안면에 약 1300명이 모여 산다. 해안면은 민간인 통제구역이지만 별도의 신고 절차 없이 출입할 수 있다.



펀치볼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신기한 모양이었다. 배꼽처럼 움푹 들어간 곳에 밭과 마을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고 주변으로 짙푸른 산줄기가 둘러져 있었다. 주변 산세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쉽게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산줄기 몇 개가 서로 몸을 겹쳐 치밀하게 분지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데, 그 모습이 전혀 우락부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요한 산골 마을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펀치볼은 한국전쟁의 군사 요충지였다. 펀치볼을 적에게 내주면 춘천까지 위험하고 춘천을 빼앗기면 곧장 서울이 노출될 수 있어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양구군 안에서 큰 전투가 아홉 차례 있었는데 그중 네 번의 전투가 펀치볼에서 벌어졌다. 우리나라 해병이 ‘무적해병’ 별칭을 달게 된 ‘도솔산 전투’와 40일 동안 주인이 6번이나 바뀌었다는 ‘가칠봉 전투’의 무대가 바로 펀치볼이다. 지금도 펀치볼 주변에는 수많은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가칠봉(1240m)은 금강산 줄기에 붙은 봉우리로 이 산꼭대기에 수영장이 하나 있단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 우리 군이 북한 군인한테 보여주려고 산 정상에다 수영장을 지었어요. 그리고 저기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수영복 심사도 열었죠.” 산림청 양구국유림관리소 임윤혁(54) 실장의 설명이다. 허허벌판 산꼭대기에 수영복 차림을 한 젊은 여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해안면을 포함한 양구군은 광복 당시에는 북한 지역이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한 땅이 됐다. 1956년 정부는 폐허가 된 전방 마을에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이주민은 먹고살기 위해 지뢰가 가득한 산비탈까지 올라갔다. 말 그대로 ‘목숨 걸고’ 땅을 일궜다. 지금도 개간되지 않은 땅은 지뢰밭이거나 군사보호지역이다.



2 와우산에서는 자작나무 숲 구간을 걷는다.


길 잘못 들면 지뢰밭 … 안내인 동행 필수



DMZ 펀치볼 둘레길은 해안면 읍내에 있는 방문자센터를 기점으로 조성됐다. 코스는 평화의 숲길(14㎞), 오유밭길(14.6㎞), 만대벌판길(17.2㎞), 먼멧재길(16.2㎞)로 모두 4개다. 길은 해안면 주민으로 구성된 사단법인‘DMZ 펀치볼 둘레길’이 관리한다. 단 한 명의 탐방객이라도 사단법인 소속 숲길체험 지도사가 꼭 붙어 길을 안내해준다.



산림청은 펀치볼 일대의 자연경관을 즐기고 그 안에 담긴 안보관광의 의미를 살리고자 길을 만들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지뢰사고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사람이 우거진 풀숲에 들어갔다가 지뢰를 밟거나 등산하다가 변을 당했다. 펀치볼에 마을이 들어선 1956년부터 지금까지 30여 건의 지뢰사고가 터졌다. 정규 탐방로를 조성해 놓으면 샛길 통행이 급격히 준다.



산림청은 트레일을 조성하기에 앞서 지뢰탐지 조사부터 벌였다. 펀치볼 둘레길 조성 실무를 맡았던 임윤혁 실장은 “지뢰탐지 비용이 1㎡ 면적에 3000원이 든다”며 “다른 트레일보다 예산이 훨씬 많이 들었다”고 푸념했다. 지뢰탐지를 마쳐야만 군부대에서 통행 허가를 내줬다.



펀치볼 둘레길 4개 코스 중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평화의 숲길이다. 숲·마을·안보현장 등 볼거리가 적절하게 섞여 있다. 오유밭길은 펀치볼 서쪽 부근을 탐방하는 코스다. 읍내에서 시작한 길은 가칠봉 자락을 향해 이어진다. 만대벌판길은 해안면에서도 가장 면적이 넓은 만대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만대리는 북한에서 내려다보이는 지역이다. 1979년 우리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 마을에 기와집 90채를 지었는데, 아직도 몇 채가 남아 있다. 길 근처에는 1997년 국내 최초로 람사르 보호습지구역으로 지정된 대암산용늪이 있다.



인제군과 맞닿아 있는 동남쪽에는 멧돼지가 많이 산다고 하여 ‘먼멧재’라고 이름 지어진 고개가 있다. 여기를 중심으로 ‘먼멧재길’이 나있는데, 산림청이 조성하고 있는 백두대간 트레일(2165㎞)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인제군으로 가는 갈림길인 먼멧재 삼거리 부근은 지뢰지대다. 원시림에 가깝게 보존된 숲에는 그 양을 알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지뢰가 묻혀 있다고 한다.



3 녹슨 철모에 난 구멍을 비집고 풀이 자라 있다.
4 DMZ 펀치볼 둘레길 방문자센터 근처에 있는 양구전쟁기념관. 양구군 안에서 있었던 큰 전투 9개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다.
5 DMZ 펀치볼 둘레길을 걷다 보면 지뢰 경고판을 자주 마주친다. 철조망 안으로는 우거진 나무와 수풀이 우거졌다.


멀리서 나는 포 소리 … 종전 아닌 정전 실감



(사)DMZ 펀치볼 둘레길의 김종희(60) 사무국장과 함께 평화의 숲길을 걸었다. 김 국장은 다섯 살부터 해안면에서 살아온 펀치볼 토박이다. 길은 초입부터 곧장 숲으로 들어갔다. 잘 닦인 ‘교통호’가 눈에 들어왔다. 교통호는 시야가 확보되는 능선 끄트머리를 따라 1m 정도 땅을 파고 군데군데 진지를 만들어 놓은 군사시설이다.



갑자기 멀리서 ‘펑’하는 포 소리가 들려왔다. 김 국장이 “예전에는 포 소리뿐만 아니라 남한과 북한 방송소리가 다 들렸다”며 “마을에 커다란 라디오 두 개를 틀어 놓은 것 같아서 밭에서 일하고 있으면 그 소리 때문에 심심하지는 않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길은 꽃과 나무가 우거졌다. 소나무·참나무·아까시나무·자작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가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었고,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야생화도 흔히 피어있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멧돼지·너구리·고라니·꿩 등 산짐승이 왔다 간 흔적이 보였다. 30분 정도 걸어 숲을 빠져나오니 밭뙈기가 보였다. 곰취·곰달비·산마늘·눈개승마 등 서울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산나물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DMZ 접경지역이 왜 우리나라 최후의 생태관광 보고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해안면 중심부에서 시작한 길이 점점 외곽으로 이어졌다. 멀리 보이던 을지전망대가 가까워졌다. 길은 와우산(593m)으로 안내했다. 산에 오르기 전에 작은 개울을 건넜는데, 물속에 개구리 서너 마리가 보였다. 개구리는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가다가 팔짝 뛰어올라 땅에 착지하더니 다시 상류 쪽으로 가서 물에 뛰어들었다. 자유롭게 물놀이를 하고 있는 개구리라니, 잠깐 동안 눈을 의심했다.



2000년 산림청이 나무를 심기 전까지 와우산은 거의 민둥산이었다. “조림 한다고 땅을 팠는데 그때 주운 탄피가 두 가마니였어요.” 임윤혁 실장이 기억을 되살렸다. 13년의 세월 동안 몸을 키운 자작나무 숲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크고 작은 군사 벙커를 지나기도 했다. 감자밭 한가운데 아군 비행기가 선을 넘으면 무조건 발포해 격추한다는 표식인 ‘월북 방지판’도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에 눈이 휘둥그래져 어린아이처럼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해안면 한복판을 지른 길은 외곽에 있는 인삼밭, 잣나무 숲길을 지나고 읍내로 돌아와 끝이 났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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