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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숨 가쁘던 행군길 지금은 예쁜 탐방로

중앙일보 2013.06.14 03:30 Week& 1면 지면보기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 맞은편에 새우젓 고개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 경기도 연천과 파주의 새우젓 장수들이 넘나들던 고개라서 새우젓 고개다. 이 고개에 대전차 장벽이 서 있다. 전시에 장벽을 폭파해 적군 전차의 통행을 막는 군사시설이다. 분단의 흔적은 이렇게 여전히 남아 있다.


지도를 펼쳐 강원도 철원을 찾아봤습니다. 서울시청에서 90㎞ 정도 떨어져 있으니 충남 천안보다 더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철원 하면 왠지 멀었습니다. 아무래도 최전방이라는 인상 때문이겠지요.

정전 60주년, 역사의 현장을 가다



장돌뱅이처럼 1년 내내 전국을 돌아다니는 여행기자에게도 철원은 참으로 먼 땅입니다. 솔직히 철원을 취재차 간 적은 없었습니다. 여기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군 복무를 한 지역이 바로 철원이었거든요. 군대 갔다 온 남자끼리 하는 말 있지 않습니까. ‘제대하면 군생활 한 데로는 오줌도 안 눈다’고. 제가 바로 그 꼴이었습니다.



마침내 철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햇수를 세워보니 제대하고서 25년 만이었습니다. 완전 군장에 M16 소총을 메고 흙먼지 풀풀 날리며 꾸역꾸역 걷던 길을, 카메라 메고 취재수첩 들고 찬찬히 다시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철원은 기억 속에 있던 그 철원이 아니었습니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았고, 군용차량보다 관광버스가 더 많이 지나다니더군요. 예전엔 민통선 안에 있어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던 노동당사나 백마고지 전승비도 무시로 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자가용을 몰고 제2땅굴도 갔다 왔습니다. 휴전선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긴장감은 그리 들지 않더군요. 가끔 눈에 띄는 초소와 지뢰 간판만이 여기가 최전방이란 사실을 무심하게 알릴 뿐이었습니다.



올해는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휴전선이 그어진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week&은 정전 60주년을 앞두고 안보관광 특집지면 6개 면을 꾸렸습니다. 커버스토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안보관광지 철원을 여행하는 방법을 꼼꼼히 소개했고,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찾는 경기도 파주의 안보관광 명소도 짚었습니다.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라는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에 조성한 둘레길을 걸었고, 전국의 주요 병영 체험 캠프도 모았습니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고 한다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좋든 싫든 간에 세계적인 다크 투어리즘 국가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니까요. 세계에서 하나뿐인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수많은 외국인이 분단의 현장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지난해만 해도 임진각·판문점·제3땅굴 등 소위 안보관광 명소를 찾은 외국인은 150만 명이 넘습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세계적인 여행가이드 ‘론니 플래닛’의 창립자 토니 휠러에게도, 막춤을 추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맷 하딩에게도 판문점은 아주 특별한 여행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파주 임진각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했던 그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서랍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만의 아픈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요즘에는 군대 예능이 인기가 많지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여유를 찾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참혹한 역사가 남긴 상처이지만, 상처를 찾아서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우리 가슴에 새기면서 어루만져야 할 역사이니까요.



글=이석희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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