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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당 비서, 괴뢰 행정부 장관 따위 상대 아니다" 주장

중앙일보 2013.06.14 03:00 종합 3면 지면보기
북한이 13일 남북 당국회담(12~13일, 서울 예정) 무산과 관련해 거친 반응을 보였다. 우리 측을 예전처럼 ‘괴뢰패당’이라 부르며 북한 대표단장(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 서기국장)은 장관급에 해당하고 조평통은 공식기관이라 주장했다. 회담이 불발된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한 것이다. 하지만 북측 설명의 곳곳엔 허점이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즉각 “회담이 파국에 이르게 된 과정을 북측이 왜곡했다”(김형석 통일부 대변인 브리핑)고 반박했다.


조평통 대변인 "우린 공식기관"
북, 과거 장관급회담에 보낸 인물
차관급도 안 되는 서기국 부국장
김용순 비서는 1994년 회담 나와

2007년 6월 1일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왼쪽)과 권호웅 북한 내각 책임참사가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 후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고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북한은 13일 당시 권호웅이 우리의 장관과 급이 맞는 조평통 서기국 1부국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조평통 대변인은 담화에서 “조평통 서기국은 명실공히 북남관계를 주관하고 통일사업을 전담한 공식기관”이라고 했다. 또 “권능과 급(級)에 대해 남조선 통일부와 비긴다면 오히려 우리가 할 말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조평통을 북한 문헌들이 ‘사회단체’로 규정(본지 6월 13일자 1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반응이다.



 논란이 된 조평통 간부들의 격(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지난 시기 북남 상급(相級·장관급의 북한식 표현) 회담 단장으로 내각 책임참사의 명의를 가진 조평통 서기국 1부국장을 내보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강지영 서기국장을 단장으로 보내려 했던 건 “남측 당국의 체면을 세워주려 한 것”이란 말도 했다. 실제로 2000년 7월 서울 1차 회담부터 7년간 열린 21차례의 장관급 회담에 나온 북한 단장은 전금진(일명 전금철)·김영성·권호웅 세 사람으로, 모두 내각 책임참사 직함이었다. 이들이 실은 이번에 문제가 된 강지영 서기국장보다 아랫급의 인물이었다는 게 북측 설명으로 확인된 것이다.



 북한 대남통 인물들의 경우 조평통 서기국장을 지낸 지 10년 가까이 지나 통일전선부 부부장에 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정부가 차관급으로 간주하는 통전부 부부장보다 서기국장이 아래 서열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임참사는 차관급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간 김대중·노무현정부는 “장관급으로 볼 수 있다”며 회담에 응해왔다. 회담 성사에 집착해 이들을 상대해준 게 이번 ‘격 논란’의 불씨가 된 셈이다.



 조평통은 담화에서 우리 정부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당 비서 겸임)을 북측 단장으로 요구한 데 대해 “통일부 장관의 상대가 북의 통일전선부장이란 주장은 우리 체제에 대한 무식과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당 중앙위 비서는 한갓 괴뢰 행정부처 장관 따위와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북남대화 역사상 당 비서가 공식 당국대화에 단장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했다. 김영삼정부 때인 1994년 6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 준비회담에 김용순 당시 대남비서가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 직함으로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상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조평통은 또한 “남측이 통일장관을 내보낼 것이라 확약했다”는 주장을 했으나 통일부는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통일부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회담에 나온 조평통이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자 협상 내용을 부풀리거나 왜곡한 담화를 내놓은 것으로 봤다. 우리 측과 동시에 평양에도 해명성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얘기다.



 조평통은 담화에서 ‘핫바지’(솜을 넣어 누빈 바지로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란 표현도 사용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한 조찬포럼에서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우리를 핫바지로 본다”고 언급하면서 화제가 됐던 표현이다. 조평통은 지난 6일 남북대화를 수용하는 담화에선 “우린 남측 당국을 핫바지로 본적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날 담화에선 태도를 바꿔 “통일부는 아무 권한도 없는 꼭두각시·핫바지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담화 말미에 “우리는 북남 당국회담에 털끝만 한 미련도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남조선 당국자들이 그 무슨 신뢰 프로세스를 떠들지만 이전 정권의 대결정책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쏟아냈다. 하지만 단정적으로 대화를 단절한다는 선언은 자제하는 등 회담 재개의 여지를 두려는 분위기도 행간에서 감지됐다. 조평통은 담화 말미에 “우리 군대와 인민이 더 이상 무뢰한들과 상종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는데, 통일부 일각에선 이 대목을 우리 정부에 자신들의 운신 폭을 넓혀달라는 역설적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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