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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비리 캐묻던 대정부질문 … 지금은 고함만 들린다

중앙일보 2013.06.14 01:52 종합 6면 지면보기
제헌국회부터 시작된 대정부질문 대한민국 첫 국회인 제헌국회부터 실시된 대정부질문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야권엔 저항의 장이 되기도 했다. 1966년 김두한 의원의 국회 오물투척 사건(맨 위쪽 사진), 95년 박계동 의원의 노태우 전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 폭로(아래 왼쪽 사진)가 모두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2013년 6월 국회의 대정부질문(아래 오른쪽 사진)엔 일방적 주장과 정쟁만 남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경빈 기자], [중앙포토]


1966년 김두한 의원의 국회 오물투척 사건과 1995년 박계동 의원의 노태우 전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 폭로 사건. 두 사건은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 같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대가 국회 대정부질문이었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격 떨어져 … 대안 없나
의원들 '대정부웅변' … 자기 주장만
장관들 알맹이 없는 무성의 답변
미, 청문회로 대체 … 일본 서면질문



 제헌국회부터 실시된 대정부질문 제도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엔 야당의 유효한 투쟁의 장이었다. 언로가 막혀 있고 정권의 감시가 심했던 시절 정권의 비리, 인권유린 등에 대한 폭로가 이뤄졌다. 언론과 정치인에 대한 감시와 검열이 다반사로 이뤄지던 81년 당시 민한당 초선 의원이던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는 대정부질문에서 ▶김대중 선생 석방 ▶대통령 직선제 ▶언론자유 보장 등 5개 항을 요구하는 기습적인 대정부질문을 했다. 이날 석간신문엔 관련 내용은 삭제된 채 “한 의원이 정치현안에 대해 질의했다”고 짤막하게 보도됐지만 발언 내용은 입소문을 타고 국민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민주화가 성숙되면서 오히려 대정부질문의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곡을 찌르는 질의나 핵심을 파고드는 폭로는 보기 어렵고 고성과 반말, 양 진영으로 갈려 벌이는 패싸움 같은 정치공세가 되풀이되고 있어서다. 6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 마지막 날인 13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6억원 사회환원’ 문제를 질문했지만 정치공세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안 의원=“전두환씨 장인 이름이 뭔지 아세요?”



 ▶정 총리=“잘 모르겠습니다.”



 ▶안 의원=“도대체 아는 게 뭐예요? 준비 안 하세요?”



 ▶정 총리=“…·”



 ▶안 의원=“당시 6억원은 물가상승률 기준으로 33억원인데, 박 대통령이 전 재산(신고가액 26억원)을 통틀어도 못 갚을 빚을 갚겠다는 게 가능합니까?”



 ▶정 총리=“그렇게 일방적으로 가치를 환산해서 주장하시면 제가 어떻게 답을 합니까. 정치적인 공세를 하는 건 적절치 못합니다.”



 (새누리당 의원들 “맞습니다!”)



 (민주당 의원들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안 의원=“아니, (평소) 총리답지 않게 왜 이렇게 역정을 내세요?”



 그동안 본회의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18대 국회에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김윤옥 여사가 대기업에서 1000달러짜리 수표다발을 받았다”고 폭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총리나 장관의 답변을 듣기보다 의원들이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역설하는 건 공통점이다. 그래서 대정부질문이 아니라 ‘대정부 웅변’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지난 10~13일 열린 대정부질문은 모두 오후 5시 이전에 종료됐다. 의원들의 발언시간(15분)에 비해 국무위원들의 답변이 너무 짧은 게 원인이었다. 12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 ‘장관 나오시라’는 말에서부터 ‘들어가시죠’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답변한 시간은 1분도 되지 않았다.



 엉뚱한 질문도 허다하다. 실무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구체적인 수치를 총리나 장관에게 묻고, 대답하지 못하면 “도대체 아는 게 뭐냐” “뭐 하러 나왔느냐”고 질타하는 풍경도 고질적이다. 13일 무소속 현영희 의원은 윤성규 환경부 장관에게 “파뿌리와 녹차껍데기가 음식물 쓰레기냐, 아니냐”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은 11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전면전이 발발되면 북한의 제1위원장(김정은)이 원점타격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장관은 “작전계획을 어떻게 말하느냐”고 곤혹스러워했다.



 총리나 장관의 답변이 짧다는 얘기는 뒤집으면, 답변에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장관들의 무성의한 태도도 대정부질문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대정부질문이란 제도가 아예 없다. 상임위에서 정부 관계자들을 출석시켜 답변을 듣는 청문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대정부질문과 비슷한 대표질의 제도를 실시하지만, 서면질문과 긴급질문 위주다.



 동국대 김준석(정치학) 교수는 “국회가 상임위 중심으로 운영되는 오늘날, 대정부질문은 총리와 장관을 부른다는 상징적 의미 외에 큰 의미를 얻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오는 9월 정기국회부터 대정부질문 일정을 축소하거나 개최 시기를 조정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1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정부질문이 상임위에 앞서 열리다 보니 정작 각 상임위에서 법안들을 검토하고 논의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대정부질문 일정을 나흘에서 이틀로, 의원 질문시간을 15분에서 12분 정도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지지하는 의견이 많다. 4선의 민주당 김성곤 의원은 “충실한 답변을 위해선 적어도 사흘 전엔 총리나 장관에게 질문지를 보내줘야 한다”며 “대정부질문 때마다 그날의 뉴스 주인공이 되기 위해 ‘오버’하는 의원들의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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